#“I wish Ted happy”
그녀를 사랑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어쩌면 그녀에게 사랑받기 위한 최선이었을지 모른다. 가진 것도 잘난것도 없는 내가 사랑하나 만큼은 열정적으로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나는 그녀와 연인이 되기 위해 최선과 집착을 오갔다.
돌이켜보면 당시 나를 가장 괴롭히는 건 나 자신이었다. 30살 무렵의 학생 신분, 낭비했다 여긴 호주에서의 시간,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녀. 이 모든 것이 납득할만한 이유는 되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아니었다. 결국 저런 갖가지 핑계로 나는 나를 괴롭혔다.
누구나 그러듯 힘든 시기는 심심치 않게 우리 삶을 찾아온다. 우리의 일상에 노크를 하고, 잠식해 간다. 나에게도 몇 번 그런 시기가 있었지만, 그녀를 사랑했던 나날이 제일 힘든 시기였다. 그 당시 내 자존감은 끝없이 추락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데 내 자존감은 그렇지 않았다. 절실함이 애절함이 되었다. 사랑이 원망으로 변질될 때쯤 나는 나를 고문하고 있었다.
그녀와 연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날 놀이터에서 작별 인사를 한 후 뒤돌아 가던 때의 감정은 생생하다.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생각보다 가벼웠다. 정말 이제는 끝이라 생각된 순간, 슬픔보다는 기쁨이 내 안을 채웠다. 아픔보다는 상쾌한 감정이 차올랐다. 처음엔 내 안에서 일렁이는 감정이 낯설었다. 아쉬움과 미련이 전혀 남지 않은 감정이 되레 낯설어 내가 정말 그녀를 사랑했었나?’라는 의심을 잠시 했다. 홀가분하다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결혼 실패 경력과 아이가 둘 딸린 동남아 여자. 친구들의 시선은 달갑지 않았고, 세상은 나를 철부지 취급했다. 나의 감정에 타인의 생각이 무슨 상관이겠냐 만은 내 사랑이 부정당하는 것 같을 때면 무척이나 외로웠다.
당시는 힘들고, 괴로웠지만 후회와 미련은 없다. 되려 최선을 다해 사랑한 그 시절의 나에게 감사하다. 남들에겐 철없는 고집불통으로 보였을 것이다. 고집 일지 오기 일지 아니면 아집 일지 몰랐을 감정을 부렸다. 실컷 고집을 피우고 나니 민망함과 약간의 후회는 들었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지금이야 ‘그 시간에 책이나 한자 더 볼걸’, ‘운동이나 할걸’ 등을 생각할 테지만 그런 집착과 좌절의 시간이 있었기에 조금 더 단단해진 나를 만들었다.
그녀를 사랑한 일은 내 인생 최고(最高, 가장 좋은)의 실패였다. 힘들고, 아프고, 괴로웠지만 그 시기가 소중하다. 그 시기를 견디고 지나 내가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나란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을 가능케 하고, 어떤 아픔까지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덕분에 나를 알게 됐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누군가를 다시 사랑한다면 똑같이 후회를 남기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사랑하겠다 생각하면서 나 자신을 상처 입히지 않겠다 다짐했다. 타인을 사랑함과 동시에 나를 사랑하고 아낄 줄 알게 됐다.
몇 년 뒤 그 친구가 한국에 찾아왔다. 이번엔 그 친구의 아들, 딸, 여동생, 친구와 함께였다. 그 친구는 어느덧 국제학교에서 인정받는 외국인 영어강사가 됐고,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자녀들과 이제는 함께 살고 있었다. 우리는 예전처럼 같이 맛있는 음식도 먹고, 예쁜 것도 구경하고, 쇼핑도 했다. 지난번과 다른 점은 그 누구도 아파하지 않았다. 그 친구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과거에 더 이상의 후회, 미련, 원망 등의 감정은 없었다.
미국 드라마나 시트콤을 보면서 이상하게 여긴 점이 있었다. 헤어진 연인끼리 도리어 친한 친구가 되는 모습이 조금 이해가 안 됐다. 이혼 후에도 서로를 친구로서 아끼는 모습이 한국인으로서 정서상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우리는 내가 이상하게 생각했던 그런 관계가 됐다. 지금은 친구로서 서로를 더욱 응원하고 격려한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아낀다.
세월이 지나 그 친구가 예전에 소원나무에 적은 내용을 알 수 있었다.
“I wish Ted hap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