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부터 4연 번역 및 해설
이번 시간부터는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에드거 앨런 포의 <더 레이븐>의 원문을 그대로 인용한 후, 그것을 차근차근 최대한 직역에 가깝게 번역을 하면서 리뷰를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이 시의 구조를 간략하게 설명을 드릴게요. 이 시는 총 14개의 연으로 구성된 서정시입니다. 또한 서정시 내 그 하위범주로 따져본다면, 지난주에 예비적 사항으로서 미리 언급해 드렸던 대로, narrative poem, 즉 어느 정도 서사적인 구조를 가진 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좀 더 재미있게 이 시를 즐기고, 또한 좀 더 이해하시기 쉽도록, 이 시가 전개되는 구조를, 소설의 플롯 구조에서 차용해서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식으로 나뉘어서 설명해 드리는 방식으로 할게요. 이 구분에 연에 따라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리뷰를 위해 저는 이 시를 크게 ‘발단-전개 1-전개 2-전개 3-위기-절정-결말’로 구분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구분은 제가 자의적으로 한 것이니, 그냥 시를 쉽게 이해하고 좀 더 가볍게 즐기기 위한 도구 정도로만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은 일단 발단과 전개 1까지 번역하고 시적 의미를 해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연으로 따진다면 총 4연으로, 1연과 2연을 발단에, 3연과 4연을 전개 1에 할당했습니다. 그리고 번역은 최대한 시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축자적(逐字的)으로, 즉 글자 그대로 따라가면서 할 수 있으면 최대한 그렇게 하는 방향으로 했습니다. 굳이 이렇게 한 이유는 영어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의 경우, 영어 단어와 한국어 단어를 최대한 쉽게 매칭해서 읽으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니, 이런 식의 번역이 마음에 안 드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요?
<발단-1연>
Once upon a midnight dreary, while I pondered, weak and weary,
예전 어느 음울했던 자정의 밤에, 내가 몹시 지치고 지친 채로 골몰하고 있던 와중에
Over many a quaint and curious volume of forgotten lore-
이미 오래전에 잊힌 진기하고 기이한 옛이야기에 골몰하고 있던 와중에
While I nodded, nearly napping, suddenly there came a tapping,
(그러다) 꾸벅꾸벅 졸던 내가 거의 잠이 들려는 와중에, 갑자기 어떤 톡톡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As of some one gently rapping, rapping at my chamber door.
마치 어느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두드려대는, 내 방문을 두드려대는 것 같은 소리가.
“T’is some visiter,” I muttered, “tapping at my chamber door-
나는 중얼거렸다. “저건 어떤 손님이구나,” 하고, “어떤 손님이 내 방의 문을 두드려대고 있구나.” 하고,
Only this and nothing more.”
“그냥 그것일 뿐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하고.
지난주에 예비적 사항들을 언급하면서, 제가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상상하는 이 시의 시적화자가 처한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드렸었지요. 저는 이 시 속의 남자가 자각몽의 상태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렸었어요. 그러면 이제부터 이 시에 대한 해석 및 설명은 이러한 시적 상황에 대한 가정 하에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이 1연에서는 이 남자가 아직 잠에 본격적으로 빠져 들기 이전의 상황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통해 이 시의 ‘시적 사실’ 몇 가지를 추론할 수 있지요.
첫째. 저 남자가 그 공포스러운 자각몽에 빠져들 즈음의 시각은 한밤중, 정확하게는 자정 무렵입니다. 그리고 그가 있는 공간은 바로 자신의 방 안입니다.
둘째, 저 남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심신이 매우 지쳐있어요.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남자는 매우 깊은 생각에 골몰을 하고 있지요.
우선, 이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실들에서 이 남자의 성격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즉, 그는 매우 예민하고, 편집증적인 성격을 가진 남성이라는 걸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지금 끔찍할 정도로 피곤한(weary)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생각에 집착을 하느라 자정이 넘어가는 시간까지 잠이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신경줄을 이렇게 조이고 있는 그 생각들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이것 역시 이 1연 속에 어느 정도는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네 번째 사실입니다.
그가 잠도 못 자고 사로잡혀 있던 생각은 바로 “이미 오래전에 잊힌 진기하고 기이한 옛이야기(many a quaint and curious volume of forgotten lore)”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서 ‘이미 잊힌(forgotten)’은 제가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던 ‘망각’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를 시도해 보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즉, 사람들은 보통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음이라는 것을 타자화하는 방식의 일종으로 그것을 평소에는 ‘잊고’ 삽니다. 그래서 주변 누군가의, 아니면 유명인 누군가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면, 이를 애도를 하면서도, 나와는 상관이 깊지 않은 일로 간주합니다. 그리고는 베르테르 증후군과 같이 자신이 선망했던 사람이 죽었을 때 이를 모방해서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자살하는, 암시에 취약한 특수 상황이 아니면, 대부분 평상시와 다름없이 일상을 살아갑니다. 즉 일종의 ‘방어기제’입니다. 그리고 이는 분명 생존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죽음’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요. 그 누구도, 세상의 모든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조차도 감히 그러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의 회피가 용인되지 않는 이 상황을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극복을 하려고 할까요? 그것은 바로 그것을 미학적 차원으로 의식하기를 시도하는 것입니다. 즉, 일종의 좀 더 고상한 방식의 타자화, 즉 거리 두기인 것이지요. 이와 관련해서는 절도 있고 엄숙한 장례식 같은 것을 한번 상상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장례식을 보면 어느 문화든지 일정한 코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검은색의 단정한 복장이라든지 이런 것 말이에요. 이런 식의 미적 법도, 즉 데코럼decorum은 죽음을 미적 대상으로 승화시킵니다. 하지만 분명 이는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은폐’이지요.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을 원작으로 한 프랑코 제피렐리의 영화 <햄릿>을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이 시의 화자처럼 지나치게 예민한 지성과 감성을 지닌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그의 아버지인 선대 왕을 남몰래 시해하고 덴마크의 새로운 왕이 된 친삼촌, 클로디우스에 대한 복수를 망설이면서, 성 지하의 납골당으로 내려가 번민을 하는 장면이 나와요. 그 납골당 안에는 선대 왕족들의 유해가, 그들이 죽은 모습 그대로 양각으로 조각된 돌로 만들어진 무거운 관 안에 영원히 잠들어 있지요. 배경이 중세이니만큼 그 관의 형태는 모두 기사(knight)가 자신의 칼을 가슴에 올린 채 엄숙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을 그대로 조각한 것입니다. 쉽게 마모되지 않고, 썩지도 않은 돌 위에 조각된 그 모습들은 말 그대로 엄숙하기 짝이 없지만, 그 돌 밑에는 분명 전혀 그렇지 못한 모습의 유해가 ‘감춰져’ 있지요. 이 중 어느 것이 죽음의 진짜 모습일까요? 질문을 좀 바꿔보겠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죽음의 모습은 이 중 어느 것일까요? 아마도 둘 다일 겁니다. 하지만 이 중 진짜로 피할 수 없는 건 그 양각으로 조각된 관 속에 담긴 모습이지요. 이건 바로 즉물적인 죽음의 모습입니다.
즉물적인 죽음이 주는 두려움은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것은 웬만해서는 미적인 대상이 될 수는 없지요. 하지만 저 근엄하게 양각으로 조각되어 표현된 죽음이 주는 두려움은 분명 아름답습니다. 인간이 죽음에 대해 어떤 ‘옛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죽음에 대해 하는 것일 겁니다. 이런 죽음이 주는 두려움은 숭고함에 대한 감정으로 연결됩니다. 하지만 이 숭고함은 불완전한 숭고함이지요.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시를 해석해 가면서 차차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인간의 실존은 이런 죽음을 통해, 즉, 즉물적인 모습이 은폐된 미학적 죽음을 통해 그가 살아 있을 때보다 더욱 육중한 무게감을 갖게 됩니다. 이 시속의 화자가 그리워하는 연인, ‘리어노어’ 역시 그러합니다. 앞으로 살펴보시면 알게 되시겠지만, 이 시의 시적화자는 자신의 이 옛 연인을 세라핌과 같은 ‘치품천사’, 즉 매우 위계가 높은 천사에 비유하고 있지요. 하지만 생전의 그녀는 그저 평범한 소녀였을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시의 화자가 골몰하고 있던 이미 잊힌 지 오래된 진기한 옛이야기들은 분명 아름다운 이야기들이었을 겁니다. 아마도 ‘죽음’에 관해 아름답게 은폐된 이야기들이었겠지요. 하지만 은폐란 ‘가리어 있다’는 뜻이므로, 이 이야기들 속에도 역시 비밀이 감춰져 있습니다. 이 비밀은 보통 ‘기호code’로 표현되고 있지요. 이 기호들을 찾아. 작품 속에서 그 통사적 구조, 즉 배열 문법을 파악하고, 그 의미를 도출해내는 것을 ‘기호학’이라고 합니다. 지금 제가 시도하고 있는 방식도 이와 비슷한 일종입니다.
이 시의 화자는 무척 예민한 사람이므로 아마도 분명 그가 골몰하고 있던 그 진기한 옛이야기들 속에 감춰진 이 기호들을 인지하기 시작했을 겁니다. 그가 그렇게 끔찍할 정도로 피곤함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골몰하고 있었던 대상도 바로 이 은폐와 관련된 상징들일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렇게 깊은 생각 속에 침잠하다가, 결국 피곤함을 못 이기고 그는 그 상태로 꾸벅꾸벅 졸게 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똑똑하고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지요. 이후 시의 내용을 보면, 이때 이미 그는 꿈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반쯤 깨어 있는 상태로 꿈을 꾸기 시작하는 것, 이 경험은 누구나 흔히 해보는 것일 겁니다. 이런 것을 두고 자각몽이라고 하지는 않지요. 그리고 대개 이 경우는 금방 잠에서 깨버립니다. 왜냐하면 전두엽의 전액골 피질이 그것의 스위치를 좀체 끄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즉, 의식은 계속 활동하고 있으니까, 뇌는 깨어 있는 상태가 정상이라고 판단을 하고, 그래서 우리는 잠에서 깨버립니다.
하지만 그 상태로, 즉 의식을 관장하는 전액골 피질의 스위치가 꺼지지 않은 채로 계속 잠에 빠져들고 꿈을 꾸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경우 대개 그 꿈은 자각몽이 되고는 하지요. 저는 상상을 합니다. 이 시의 화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말이에요.
그는 분명 꿈을 꾸고 있습니다. 즉, 무의식의 영역에 점점 발을 들이고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의 의식 역시 계속 깨어 있기에, 그는 외부에는 들려오는 소리와 같은 자극들 역시 계속 감지하고 있습니다. 시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특히 그는 ‘소리’에 상당히 예민한 사람이라는 게 드러납니다. 하지만 시의 시간적 배경을 보면 매우 적막한 한밤중이므로 이런 소리가 그렇게 계속해서 들릴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그래서 또 상상을 해보건대, 그가 듣고 있던 그 규칙적인 박자의 소리들, 즉 tapping과 rapping (둘 다 무언가를 연속해서 두드리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rap이 tap보다 더 세고 빠르게 치는 것을 의미합니다.)의 소리들은 아마도 그의 심장 박동 소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동성 이명’이라고 분명 이런 질병이 실제로 있기도 하고, 그 원인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극심한 스트레스라고 하니, 뭐, 말이 안 되는 상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어쩌면 에드거 앨런 포 자신이 이런 질병을 경험해보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단편들 중 「말하는 심장」이라는 게 있는데 이것을 읽어보면, 그가 자신의 심장 소리를 매우 예민하게 감지하는 사람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또한 『NeuroLogic』이라는 교양서를 보면, 이 책의 저자인 신경학자 일라이저 스텐버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꿈을 꿀 때, 설령 의식을 관장하는 전두엽의 피질이 정상적으로 비활성 상태에 빠져 있더라도, 외부의 자극들이 완전히 차단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잠을 자고 있는 사람에게 물을 뿌리는 실험을 해보면, 이 자극이 그 사람이 꾸고 있는 꿈에 바로 영향을 주는 경우가 거의 40% 정도 된다고 해요. 그리고 이 경우 자고 있는 데 물을 맞은 사람들은 비를 맞는 꿈과 같이 물과 관련된 꿈을 꾼다고 합니다.
다시 시로 돌아가서 보면, 처음에 그 소리는 ‘tapping’ 정도로 들렸다가 점점 ‘rapping’으로 발전합니다. 즉 더욱 세지고 빨라진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가 그 소리를 ‘tapping’ 정도로 들었을 때는 그는 ‘내 방문을(at my chamber door)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다음 연에서 그 소리가 ’rapping’으로 발전했을 때는 분명히 저 말을 덧붙이고 있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상상합니다.
그는 잠을 자면서 살짝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건 실제로 외부에서 들린 소리일 수도 있고, 그 자신의 심장 소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 소리를 인식한 순간, 그의 꿈속에 갑자기 그가 자고 있는 방의 방문(chamber door)의 이미지가 나타납니다. 그리고는 이제 그 소리는 좀 더 세고 빨라져서 ‘rapping’하는 소리로 들리기 시작합니다. 이 말인 즉, 이는 그의 어떤 의식적 판단이 이 사이에 개입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판단이란, 아마도 그의 간절한 소망에서 발로된 것이 아닐까요? 바로 자신의 죽은 연인인 ‘리어노어’를 다시 한번이라도 만나보고 싶은 소망 말입니다. 또한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인해 그 소리가 점차 ‘tapping’에서 ‘rapping’으로 발전한 게 아닐까요? 즉, 그의 심장이 흥분해서 점차 세게 뛰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말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이것입니다.
“As of some one gently rapping, rapping at my chamber door(마치 어떤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두드려대는, 내 방문을 두드려대는 것 같은 소리가).”
왜 포는 저 두 단어를 굳이 두 개로 나누었을까요? ‘someone’ 즉, ‘누군가’라는 말을 써도 표면적인 의미의 차이는 거의 없는데도 말입니다.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였을까요? 아니면 그것보다는 어떤 뉘앙스적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건 아니었을까요?
‘some’이라는 단어는 기본적으로 불특정 한정사나 대명사로만 쓰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형용사로서 ‘상당한, 대단한’이라는 뉘앙스를 표현하는 데도 사용되지요. ‘one’ 역시 이와 비슷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불특정 대명사 또는 한정사, 수사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유일한, 가장 중요한 하나’라는 뉘앙스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추측컨대, 이 시의 화자는 ‘someone’이라는 단어를 쓰면서도 이를 내심 ‘some’과 ‘one’으로 구분함으로써, 지금 자신의 방문을 두드리고 있는 어떤 누군가(someone)가 실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내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그는 자신의 꿈속으로 완전히 빠져듭니다. 그가 자각몽을 꾸고 있었다면, 이것은 아마도 그의 의지가 어느 정도 개입이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희망과 기대를 품은 의지 말이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성격대로 여전히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혹은 그의 전두엽 피질은 아직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즉, 그것이 해야 할 일 중 하나인 사실 검증을 망각하고 있지 않지요.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중얼거립니다.
“Only this and nothing more (그냥 그것일 뿐이야,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입니다.
<발단 – 2연>
Ah, distinctly I remember it was in the bleak December,
아, 분명히 기억컨대, 그날은 그 음산한 12월의 어느 날이었고,
And each separate dying ember wrought its ghost upon the floor.
하나하나 식어 꺼져가는 잉걸불들이 방바닥 위에 그 원혼을 내뱉고 있던 날이었다.
Eagerly I wished the morrow;-vainly I had sought to borrow
나는 내일이 오기를 간절히 바랐다. 잠시라도 비애를 잠재우려는 헛된 노력으로
From my books surcease of sorrow –sorrow for the lost Lenore-
책 읽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이제는 되찾을 수 없는 리어노어를 향한 슬픔을 잠재우기 위해.
For the rare and radiant maiden whom the angels name Lenore-
천사들이 리어노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그 비할 데가 없이 보기 드물고 따스하게 빛이 나던 순결한 소녀를 위해.
Nameless here for evermore.
이제는 더 이상 여기서는 부를 수 없는 그 이름을 위해.
2연은 1연에서 제시된 시적 사실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부연 설명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즉, 시적화자가 직접 그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요.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첫째. 그날은 정확히 12월의 어느 날이었는데, 특히나 매우 음울한 날(the bleak December)이었다고 말입니다. 이 분위기와 자정의 시간은 그의 예민한 신경을 그 어느 때보다 곤두서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둘째. 자신은 책을 읽고 있었고, 그랬던 이유는 바로 죽어버린 리어노어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라도 잊어보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의 내용이 바로, “이미 오래전에 잊힌 진기하고 기이한 어떤 옛이야기(many a quaint and curious volume of forgotten lore)”였던 것이고, 오히려 이 안타까운 노력 때문에 그의 예민한 신경은 더욱 각성이 되고 말지요.
셋째, 처음으로 ‘리어노어’라는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는 그녀를 영영 잃어버렸다고(the lost Lenore) 말함으로써 그녀의 죽음을 암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암시(暗示)’는 다음에 이어진 연들을 통해 ‘명시(明示)’로 발전하는데, 그것은 완전한 대조를 통해 드러납니다. 즉,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maiden whom the angels name Lenore(천사들이 리어노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소녀)/nameless here fore evermore(이곳에서는 더 이상 부를 수 없는 그 이름)”
첫 번째 인용 구절의 ‘name’은 분명 현재시제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시에서 발화되는 전체적인 시제는 모두 ‘과거형’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인용 구절의 ’nameless‘는 형용사로서 그 뒤에 붙은 부사 here로 인해, 현재의 상태를 의미하고 있다는 게 분명해지지요. 그리고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리어노어가 현재 여기에 없고, 즉,’ 리어노어‘라는 이름을 부를 지시체, 즉 그 밝고 따뜻한 소녀는 더 이상 이 세상(here)에 없고, 그녀는 현재 천사들과 함께 있다. 즉, 천상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리어노어는 이미 죽고 없는 존재라는 게 시적화자의 입을 통해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전개 1- 3연>
And the silken sad uncertain rustling of each purple curtain
그러다가 그 비단결처럼 바스락거리는 자줏빛 휘장 소리에, 그 슬프지만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 소리에
Thrilled me-filled me with fantastic terrors never felt before;
나는 전율을 했다. 내 마음은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환상적인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So that now, to still the beating of my heart, I stood repeating
그래서 나는 고동치는 나의 심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가만히 선 채로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Tis some visiter entreating entrance at my chamber door-
“저건 어떤 손님이 내 방문 앞에서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거다.
Some late visiter entreating entrance at my chamber door;
어떤 늦게 찾아온 손님이 내 방문 앞에서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거야.
This it is and nothing more.”
그래 그거야. 단지 그것일 뿐이야.”라고.
3연에서는 시적화자의 감정이 어떤 기대감으로 점차 고조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은 바로 죽은 리어노어를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희망이지요. 애초에 이 기대감은 ‘tapping’ 거리는 소리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점차 방문을 두드리는 ‘rapping’으로 발전하더니, 이 3연에 이르러서는 훨씬 더 구체적인 양상으로 표현됩니다. 즉, 이제 그는 그 소리를 단지 막연히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라. ‘비단결처럼 바스락거리는 자줏빛 휘장 소리’라고 표현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소리에 어떻게 색깔이 있을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그게 왜 하필이면 ‘자줏빛(purple)’이라는 상당히 구체적인 색상일까요?
추측컨대, 이 지점에서 다시 한번 지금 그가 자각몽을 꾸고 있다는 게 확인되는 것 같습니다. 즉, 그는 그 소리들을 통해 죽은 리어노어가 자신을 찾아왔다고 믿고 싶어 한다는 건 여러분들도 이제 눈치채셨을 겁니다. 이것도 물론 꿈치고는 매우 의식적인 행위이기는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의 지식이 가미됩니다. 즉, 자주색(purple)은 보통 추기경과 같은 고위 성직자나 왕후·귀족들이 입는 옷의 색상이지요. 2연에서 그는 죽은 리어노어가 천상, 즉 헤븐heaven’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그녀가 자신을 찾아온다면, 이런 고귀한 신분을 상징하는 휘장에 둘러싸여 찾아올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이런 지식, 즉 자주색의 문화적, 역사적 상징에 대한 지식에 기반한 추측이 개입되었다는 것, 이 점 역시 지금 그가 자각몽을 꾸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추측이라는 건 의식의 활동에 속하는 것이니까요.
한편, 지금 제가 굳이 ‘추측’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그 근거는 물론 시 속에 있습니다. 1행에서 시적화자는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the silken sad uncertain rustling of each purple curtain(그 비단결처럼 바스락거리는 자줏빛 휘장 소리에, 그 슬프지만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 소리에)”라고 말입니다.
이 의식의 추측과 그의 귀에 들리는 어떤 소리들(그 출처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리고 이 소리들을 구체적인 이미지들로 만들어내는 그의 무의식은 점차 하나의 내러티브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이를 보고 있는 각성된 그는 그 생생함에 전율을 하기에 이르지요. 그리고 이제는 1연에서보다 훨씬 분명히,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Tis some visiter entreating entrance at my chamber door(저건 어떤 손님이 내 방문 앞에서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거다).
Some late visiter entreating entrance at my chamber door(어떤 늦게 찾아온 손님이 내 방문 앞에서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하고 있는 거야).”
라고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some’과 ‘late’입니다. 여기서 ‘some’은 이미 1연에 대해 해석을 하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럼 이제 ‘late’의 뜻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볼까요? 이 단어는 중의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게 비교적 매우 분명해 보입니다. 첫째, 이 시의 시간적 배경이 자정 무렵의 늦은 밤이라는 걸 상기해 볼 때, ‘늦은’이라는 뜻을 의미하겠지요. 하지만 ‘late’는 다의어입니다. 흔히 이미 영면하신 분들의 이름 앞에 ‘고(故)’라는 표현을 덧붙이는데, 이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바로 ‘late’입니다. 그러므로 저 마지막 행에서 저 단어는 ‘죽음’을 지칭한다고도 볼 수 있겠지요.
참고적으로 덧붙이자면, “the silken sad rustling of each purple curtain”이라는 표현에서 ‘curtain’ 역시 죽음에 대한 은유로도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이렇게 이 시를 읽다 보면, 죽음을 상징하는 단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즉, 숨겨진 기호들인 것이지요.
<전개 1 – 4연>
Presently my soul grew stronger; hesitating then no longer,
이내 내 영혼은 좀 더 용감해졌고, 그래서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Sir,” said I, “or Madam, truly your forgiveness I implore;
“선생님,” 하고 나는 말하였다. “아니면 부인, 양해해 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But the fact is I was napping, and so gently you came rapping,
“하지만 사실은 제가 졸고 있었기에, 그리고 당신은 너무도 조심스럽게 문을 두들겼기에,
And so faintly you came tapping, tapping at my chamber door,
너무도 희미하게 똑똑하고 내 방의 문을 두드렸기에
That I scarce was sure I heard you”-here I opened wide the door-
나는 그 소리가 당신이 제 방문을 두들기시는 소리인지 거의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답니다.”라고.
그리고 나는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하지만-
Darkness there and nothing more.
방문 밖에는 캄캄한 어둠뿐이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4연에는 특별히 풀어볼 만한 표현이나 상징 등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단지, 리어노어가 찾아왔다고 확신한 시적화자가 점점 기대감에 흥분을 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그에 귀에 들리는 그 소리들을 향해 말을 걸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급기야 그가 자신의 방문을 열기에 이르렀다는 점입니다.
이 방문을 연 행위는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우선 그가 방문을 열지 않았더라면, 이 내러티브는 더 이상 지속이 안 되었을 겁니다. 이 말인 즉, 그는 그대로 잠에서 깨어났을 겁니다. 그러면 결국에는 이 시의 가장 중요한 소재이자 상징인 그 ‘레이븐’ 즉 그 ‘큰까마귀’ 역시 등장하지 않았겠지요. 이 말인 즉, 그가 자신의 방문을 연 행위는 곧 자신의 무의식의 던전dungeon, 즉 깊고 깊은 곳에 ‘감추어진’ 영역의 문을 열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이 행위를 통해 그는 이제 죽음으로부터 비롯되는 완전한 숭고의 감정, 그 압도적인 두려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떠셨나요? 시적화자가 느끼는 긴장과 흥분, 불안 등이 잘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시를 조용히 읊으며 이 글을 읽으시면 좀 더 느낌이 살아나실 겁니다. 포는 유음(한국어 자음에서 체계에서는 ‘ㄹ, ㅁ, ㅇ’입니다)과 모음 같은 유성음으로 끝나는 단어들을 의성어나 주제를 상기하는 핵심어의 음운으로 포함시켜서 규칙적으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따라 읽다 보면, 그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점차 커지고, 세지며, 빨라지는 게 느껴집니다. 즉 그의 심장이 점차 흥분하는 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또한 죽음의 원시적인 공포 역시 점차 강도를 더해가며 느껴집니다. 그러니 좀 더 생생하게 이 시를 즐기고 싶으신 분들은 한번 시도해 보시길 바랍니다.
일단 이번 글은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아마도 전개 2와 3에 해당하는 부분을 쓰게 될 것 같아요. 연으로 따지다면, 5개의 연에 해당될 겁니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갈게요. 다음 시간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