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연 번역 및 해설
이번 시간에도 지난주에 이어 에드거 앨런 포의 <더 레이븐>에 대한 번역 및 해석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 번역과 해석으로 들어가도록 할게요.
<전개 2 – 5연>
Deep into that darkness peering,
그 어둠 속을 깊이 응시하면서,
long I stood there wondering, fearing,
나는 오랫동안 그곳에 서 있었다. 궁금해하고, 두려워하고,
Doubting, dreaming dreams no mortals ever dared to dream before;
의심을 하면서. 죽음의 숙명을 타고난 존재들 중 지금껏 그 어떤 이도 감히 꿈꿔 본 적이 없는 꿈들을 꿈꾸면서.
But the silence was unbroken, and the stillness gave no token,
하지만 그 침묵은 깨지지 않았다. 그 고요함 속에서는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And the only word there spoken was the whispered word,
거기서 들리던 유일한 말은 이 속삭임뿐이었다.
“Lenore?”
“리어노어?”
This I whispered, and an echo murmured back the word,
(하지만) 이 말은 내가 속삭인 것일 뿐이었고, 메아리가 다시 그 말을 속살거렸다.
“Lenore!”
“리어노어!”라고.
Merely this and nothing more.
단지 이것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Back into the chamber turning, all my soul within me burning,
방 안으로 되돌아올 때, 내 안의 영혼이 전부 불처럼 타오르고 있었을 때
Soon again I heard a tapping something louder than before.
이내 다시 조금 전보다 더 크게 무언가가 톡톡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Surely,” said I “Surely that is something at my window lattice;
“분명히,” 나는 말하였다. “분명히 저 소리는 내 격자 창문에서 나는 것이다.”라고.
Let me see, then what threat is and this mystery explore-
“그렇다면 어디 한번 살펴보자. 저게 어떤 위협인지를. 그리고 이 미스터리를 한번 파헤쳐보자”
Let my heart be still a moment and this mystery explore;-
“내 심장을 잠시 가라앉혀 보자. 그리고 이 미스터리를 파헤쳐보자.”
‘Tis the wind and nothing more.”
“저건 바람소리일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야.”라고.
5 연부터는 상황이 이전까지와 비교했을 때 분명 바뀌어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뀌어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시적화자가 자신의 방문을 열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은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을 열었다는 것, 그것은 그가 지금 꾸고 있는 이 꿈 양상을 바꿔버리는 결정적인 계기입니다.
4연까지의 전반적인 내용, 즉 정서는 죽음에 대한 원시적인 공포보다는 죽어버린 옛 연인인 리어노어에 대한 그리움이 주를 이루고 있지요. 그리고 이 감정을 배경으로 ‘죽음’ 역시 다소 아름답고, 로맨틱하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즉, ‘죽음’이라는 게 그와 리어노어의 사랑 이야기를 비극적으로 만들고 있지만, 오히려 그것이 비극적이기에 그들의 사랑은 더욱 아름다운 것으로 ‘정화’됩니다. 이게 바로 『시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비극의 효과이지요.
그런데 이 시는 narrative poem, 즉 서사가 있는 시이지요. 서사적 플롯 구조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에는 ‘복선(伏線)’이라는 게 있습니다. 즉, 아직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으나, 앞으로 일어날 인과적 결과에 대해 미리 암시를 하는 실마리들이지요. 4연까지는 이런 실마리가 그가 계속해서(거의 편집증적일 정도로) 반복해서 말하는 시어들, 즉 ‘내 방문(my chamber door)’, ‘무언가를 두드려대는 소리들(tapping and rapping sounds)’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어들을 통해 짐작되는 그의 정서는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이지요. 이는 모순형용과 같은 감정입니다. 김영랑의 유명한 시구절인 ‘찬란한 슬픔의 봄을’과 같이 말이에요. 시적화자가 가지고 있는 기대, 즉 죽은 리어노어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는 그 두려움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감정으로 느껴지고 그를 고양시킵니다. 하지만 자각몽이니만큼 그는 여전히 의식적으로 이러한 감정에 사로잡혀 광란으로 치달을 듯한 자신을 자계(自戒), 즉 경계하고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 근거 역시 시어를 통해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nothing more,”라는 혼잣말의 주문 같은 반복, 즉 “단지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뿐이야.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어.”라는 말의 반복이지요.
하지만 5연에 이르러 기어이 문을 연 그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두 번째~세 번째 행의 “wondering, fearing, doubting, dreaming dreams no mortals ever dared to dream before(숙명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 중 그 누구도 감히 꿔본 적 없는 꿈을 궁금해하고, 두려워하며, 의심하고 또 그것을 꿈꾸면서)”라는 말이지요. 이 말 역시 꿈속의 대사치고는 매우 의식적이고 분명합니다. 반면, 보통 꿈속의 대화는 은유적이니까요.
그래서 전 이 구절을 4연까지 비교적 일관되기 이어졌던 시적화자의 정서가 질적으로 다소 변화를 한 기점으로 읽어볼까 합니다. 즉, 기존에는 리어노어와의 재회에 대한 기대감이 주된 정서였다면, 이 구절 이후에 적어도 9연까지 그가 보이는 주된 정서는 바로 ‘호기심’입니다. 물론 이 호기심은 죽음에 대한 것이지요. 또한 물론 리어노어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두려움이 수반되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호기심 역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한편, 이 5연에는 4연까지와는 다른 양상의 복선이 하나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비교적 단순하게 똑같은 시어를 반복하는 식으로 제시되었던 4연까지와는 달리, 하나의 장면으로서 제시되고 있지요. 그것은 바로 7행~12행에서 묘사되고 있는 장면, 즉
the only word there spoken was the whispered word,
거기서 들리던 유일한 말은 이 속삭임뿐이었다.
“Lenore?”
“리어노어?”
This I whispered, and an echo murmured back the word,
이것은 나의 속삭임이었고, 메아리가 다시 그 말을 속살거렸다.
“Lenore!”
“리어노어!”라고.
Merely this and nothing more.
단지 이것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장면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Lenore?”, “Lenore!”라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두 구절입니다. 첫 번째 구절을 보면, 분명히 조심스럽게 확인하듯이 죽은 연인의 이름을 부르는 시적화자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반면, 두 번째 구절은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연인을 향한 애절한 외침처럼 들리지요. 그리고 첫 번째 구절은 시적화자가 직접 발화한 것인 반면, 두 번째 구절은 시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그가 발화한 저 첫 번째 구절의 메아리입니다. 이 말인 즉, 두 구절 다 시적화자가 발화한 것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당연히 발화되는 분절 음운들은 분명 완전히 똑같습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맨 끝에 물음표와 느낌표 등의 구두법(句讀法) 기호로 표기된 비분절 음운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 결과 분명 한 사람이 발화한 하나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의미가 되어 버리고 있지요.
도대체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포는 세심한 건축가처럼 말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결코 아무 의미 없이 저렇게 표현했을 리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상상해 봤습니다. 저 장면은 자각몽을 꾸고 있는 시적화자의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첫 대면을 하는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상상 말입니다. 그는 분명 자신의 방문을 열었습니다. 즉, 열어서는 안 될 어떤 것을 열어버렸다는 것이지요. 인간의 무의식 저 깊은 속에 가려진 채 잠겨 있는 어떤 문을 말이에요.
이 장면의 마지막에서 그는, 리어노어에 대해 설명을 하는 2연을 제외한 1,3, 4연의 마지막 행에서 똑같이 반복했던 말을 합니다. 바로 ‘nothing more’라는 말을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의 사용에는 이전까지와는 다른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나의 연에서 이 말이 두 번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5연을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바로 위에 인용한 중간쯤의 행에서 한번 쓰인 후, 마지막 행에서 다시 한번 쓰이고 있지요. 그리고 이 두 번의 사용 사이에는 ‘mystery’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즉, “this mystery explore-”라는 똑같은 구절이 연달아 두 번 반복되고 있어요. 그리고 시의 기호학적 구도를 보면, 이 ‘미스터리’는 ‘두드리는 소리(tapping, rapping)’에서부터 시작해서 ‘죽음의 숙명을 타고난 자 중 그 누구도 꿈꿔 본 적 없는 꿈(dreams no mortals ever dared to dream before)’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이 시어들이 사용된 상황들을 보면 알 수 있다시피, 처음에는 그저 막연한 낌새 정도로만 인식되었던 이 미스터리가 점차 구체적으로 의식되어 가고 있지요.
이는 ‘문’이라는 메타포 역시 그러합니다. 4연까지는 안에서 밖을 확인할 길은 소리 밖에 없는 시야가 막힌 방문이었던 것이, 5연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투명한 격자 창문으로 바뀌어져 있지요. 그리고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쉬운 것처럼, 이미 문을 한번 활짝 열어젖힌 그는 이후 문 너머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4 연까지 보다는 적어진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이후 살펴볼 6연의 첫 구절을 보면, 이전까지와는 달리, 매우 거칠게 그 창문을 말 그대로 밀어젖혀서 열어버립니다.
이런 식의 태도 변화는 ‘nothing more’를 사용하는 뉘앙스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4연까지는 매우 잠정적이고 조심스럽게 맨 마지막에 덧붙이던 그 말을, 5연에 이르러서는 비교적 건조한 태도로 두 번 반복을 합니다. 그리고 4연에는 이 말속에 어떤 기대가 담겨 있었다면, 5연에서는 이런 기대가 많이 사라져 있지요. 이 근거는 5연의 마지막 행의 구절에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즉,
“Tis the wind and nothing more.”
이전까지는 “only this and nothing more.”; “This it is and nothing more.”; “Merely this and nothing more” 등의 식으로 막연하게 대명사로만 처리했던 것을, 이번에는 ‘the wind’라고 매우 명확하게 지칭해버리고 있습니다.
이 5연을 마지막으로 ‘nothing more’라는 말은 사실상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6연 중간에 까마귀의 태도를 묘사하기 위한 수사어구로써 한 번 더 쓰일 뿐입니다). 그 대신 그보다 정서적으로나 의미적으로 훨씬 집약된 말이, 이 시가 끝날 때까지 매 연마다, 약간의 변주와 함께 반복의 반복을 거듭해서 쓰입니다. 그것은 바로 “Nevermore”이지요. 이 말과 ‘nothing more’의 사용 상 차이가 무엇인지 시각적으로 보이시나요? 네, 바로 하나는 대문자로 시작하는데, 다른 하나는 소문자로 시작하고 있지요. 영어에서 대문자로 시작한다는 건, 그 뜻을 매우 강조하고 ‘고유화’시킨다는 뜻입니다.
‘nevermore’라는 말은, ‘두 번 다시는 결코, 이미 죽은, 돌이킬 수 없는’ 등의 뜻입니다. ‘nothing more’가 양적인 의미. ‘하나도 없는, 더 이상 없는’ 정도의 의미를 가진 말이라면, ‘nevermore’는 질적인 의미, 즉 ‘이미 없는, 이미 없고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정도의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그리고 이 둘 중에서 이 시에도 사용된 단어인 mortals, 즉 죽음의 숙명을 타고난 존재(인간)를 설명할 때 더 적절한 말은 당연 ‘Nevermore’ 일 겁니다. 왜냐하면 한번 죽음의 강을 넘은 존재는 다시 그 강을 가로질러 돌아올 수 없으니까요.
<전개 2 – 6연>
Open here I flung the shutter, when, with many a flirt and flutter,
내 방에서 창문을 열려던 내가 덧문을 거칠게 열어젖혔을 때, 그 특유의 몸짓으로 날개와 꼬리를 퍼덕거리면서,
In there stepped a stately Raven of the saintly days of yore.
성스러운 옛 시절의 위엄을 간직한 큰까마귀 한 마리가 창문 안으로 발을 디뎠다.
Not the least obeisance made he; not a minute stopped or stayed he,
그 새는 조금도 고개를 숙여 인사하지 않았다. 그 새는 단 한순간도 멈춰 있거나 머물러 있지 않았다.
But, with mien of lord or lady, perched above my chamber door-
그리고는 귀족과 같은 태도로, 내 방문 위에 걸터앉았다.
Perched upon a bust of Pallas just above my chamber door-
내 방문 위에 놓인 아테나 여신의 흉상 위에 걸터앉았다.
Perched, and sat, and nothing more.
올라가 그 끝에 자리를 잡더니, 그 위에 앉았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Then the ebony bird beguiling my sad fancy into smiling,
그러더니 그 흑단과 같이 새까만 새는 교활하게도 나를 기만하기 시작했다. 이 속임수에
걸려든 나는 잠시 슬픈 공상에서 벗어나 쾌활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By the grave and stern decorum of the countenance it wore,
그것이 짓고 있던 그 근엄하고 엄격한 예의를 갖춘 표정에 나는 재미있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Though the crest be shorn and shaven, thou,”
“비록 볏은 깎여 없지만, 당신은”
I said, “art sure no craven,
나는 말했다. “당신은 분명,”
Ghastly grim and ancient Raven wandering
“섬뜩할 정도로 엄숙한 태곳적의 그 큰까마귀,”
from the Nightly shore-
“저 밤의 기슭으로부터 날아온 그 큰까마귀가 분명합니다.”
Tell me what thy lordly name is on the Night’s Plutonian shore!”
“말해주세요. 저 하데스가 지배하는 밤의 영토에서 당신은 어떤 위엄 넘치는 이름으로 불리는지를!”
Quoth the Raven, “Nevermore.”
그 까마귀는 말하였다. “네버모어”라고.
6연에 이르러 드디어 ‘까마귀’가 등장합니다. 그렇고 그런 까마귀(a raven)가 아니라, 바로 그 까마귀 (the Raven)이지요. 시의 원문을 보시면, 포는 이 까마귀를 지칭할 때, 언제나 정관사 the를 쓸 뿐만 아니라. 반드시 대문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즉, 세상에 유일한 ‘까마귀’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런 까마귀란 대체 어떤 까마귀일까요?
이번 연에서는 이 매우 특별한 까마귀의 외양에 대해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일단 우선 묘사되고 있는 것은 그것의 ‘태도와 표정’이지요. 그는 그 새가 보이는 위풍당당한(“stately”) 태도를 보고, 지나간 성스러운 옛 시절(“the saintly days of yore”)의 위엄을 상기시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다소 거만한 태도를 보입니다. 즉, 그를 보고 몸을 움츠리기는커녕, 고개를 더 빳빳이 들고(“not the least obeisance made he”), 천천히 위엄 있게(“stately”), 귀족과 같은 표정(“the mien of lord or lady”)을 유지한 채, 아마도 그 방에서 가장 높은 곳일 장소로 날아올라가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그 장소란 바로 그의 방문 위(“above my chamber door”)이지요.
여기서 또 이 단어, 즉 내 방문(“my chamber door”)라는 말이 등장했습니다. 이 말이 이렇게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건, 분명 그것이 매우 의미심장한 대상이라는 걸 뜻하겠지요. 앞에서 이 방문을 여는 행위는 보통은 인식해서는 안 될 무의식의 심연 깊은 곳에 가려 있는 ‘어떤 것’을 알게 되는 걸 의미하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었지요. 그리고 그것은 바로 ‘죽음’이라는, 인간에게 가장 즉물적이고, 가장 실존적이면서, 그 무엇보다 필연적인 것임에도 가장 쉽사리 의식이 되지 않는 ‘미스터리(“mystery”)한 대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도 말씀드렸습니다. 이 새가 등장하기 전, 5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Let me see, then what threat is and this mystery explore(그럼, 이 위협의 정체에 대해 알아보자. 이 미스터리를 파헤쳐보자)”
여기서 기호학적으로 한번 의미를 연결해 볼까요? 이 구절에서 문맥상 위협(“threat”)과 미스터리(“mystery”)는 분명 서로 같은 것을 지칭하는 동의어입니다. 그리고 시적화자가 이 말을 던진 이후로, 그 새, 그 까마귀(the Raven)가 등장하지요. 그러므로 이 세 단어들, 즉, threat, mystery, 그리고 the Raven은 모두 비슷한 것을 지칭하는, 혹은 의미론적으로 서로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유의어(類義語)들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렇다면 이 새는 곧 ‘죽음’하고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이 죽음과 관련된 새가 그의 방문 위에 올라가 앉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그의 방문 위에 달린 “a bust of Pallas” 위에 앉습니다. 이 말을 직역하면, “팔라스의 흉상”인데, 여기서 ‘팔라스Pallas’란, 흔히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 아테나를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아테나 여신의 흉상이 그의 방문 위에 달려 있었고, 그 위에 그 새가 날아와 앉았다는 말이 되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부분 의아해하실 겁니다. 우선 ‘뜬금없이 웬 아테나 여신상이 나오는 거지?’라고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이 그가 지금 분명 꿈을 꾸고 있다는 걸 방증하는 것이지요. 보통 집에, 그것도 방문 위에 이런 걸 둘 리가 없으니까요.
그러므로 이 부분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왜 저런 게 저기에 달려 있냐? 그게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있냐?라는 문제가 아니라. 왜 그의 꿈 안에서는 그 방문 위에 아테나 여신상이 놓여 있으며, 왜 또 하필이면 그 새가 그곳에 자리를 잡고 올라가 꼼짝을 하지 않고 있느냐라는 것일 겁니다.
우선, 방문 앞, 즉 입구의 가장 높은 곳에 아테나 여신상이 놓여 있는 건, 추측컨대, ‘팔라디움palladium’, 즉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도시 입구에 놓인, 도시의 안전을 수호하는 것으로 믿어지는 아테나 여신을 새긴 목상(木像), 혹은 석상(石像)의 아날로지, 즉 유비(類比)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상징물은 어느 문화권에나 있습니다. 한국에는 삼한시대의 솟대 같은 것이 있고, 일본의 정령 신앙 체계에서는 곳곳에 있는 신사의 입구에 설치된 문짝은 없고 기둥만 있는 문, 즉 토리이(鳥居)도 이와 비슷한 것들일 겁니다. 이 한자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직역을 하면 ‘새(鳥)가 앉는(居る) 곳’이라는 뜻입니다. 한국의 솟대도 그 장대 끝에는 항상 새 모양의 조각물이 달려 있지요.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새’는 이승과 천상 사이에 있는 특별한 존재, 메신저, 혹은 단테 식으로 풀어보자면, 지옥과 천국 사이에 있는 연옥과 같은 중간계에 있는 존재로 상징됩니다. 그렇기에, 영국 전설의 왕, 아더왕 같은 경우, 죽고 나서 저 세상인 아발론으로 가기 전에 잠시 동안 까마귀인 채로 이승과 아발론 사이의 하늘에서 머물렀다고 하지요.
팔라디움(가운데 뱀이 휘감긴 기다란 것. 꼭대기 부분에 아테나 여신이 조각되어 있음.)
솟대
토리이(鳥居)
한편, 까마귀는 매우 지능이 높은 생물로 유명합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이솝우화에도 나올 정도니까요. 이 이야기는 분명 이솝이 직접 목격한 것을 바탕으로 쓴 것일 겁니다. 까마귀는 구관조나 앵무새처럼 사람의 말을 매우 정확하게 따라 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보기에는 분명 보통 새가 아닌 것이지요.
하지만 동시에 생리적으로 매우 역겹고 동시에 원시적인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새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시체를 파먹고 사는 새이기도 하니까요.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이 시 속에 등장하는 그 까마귀(‘The Raven’)가 점차 악마와 같은 존재로 묘사되고 있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악마가 어리석을 리는 없으니까요. 악마는 적어도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는 맞습니다. 동시에 매우 혐오스러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 혐오는 궁극적으로 ‘무시’가 아닌 ‘압도적인 공포’를 불러오는 것일 겁니다. 이 시의 화자도 처음에는 다소 오판을 해서 이 까마귀를 다소 경시합니다. 그러다가 점점 그 정체에 대해 의심을 하고, 두려움에 완전히 사로잡힌 채로 시가 끝이 나지요.
한편, ‘아테나 여신 흉상(“a bust of Pallas”)’과 같은 객관적 상관물이라든지, ‘지나간 성스러운 옛 시절(“the saintly days of yore”)’이나, ‘저승의 신 하데스가 지배하는 밤의 영토(“the Night’s Plutonian shore”)’와 같은 표현들이 쓰이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분명, (1연에 명시되어 있다시피) 시적화자가 ‘진기하고 기이한 옛이야기(“many a quaint and curious volume of forgotten lore”)’를 읽다가 잠들었기 때문일 겁니다.
또한 시를 잃어보면, 그는 ‘here’라는 말을 두 번 씁니다. 한 번은 2연에서 죽은 리어노어에 대해 설명을 할 때 쓰고, 또 한 번은 6연, 즉 지금 설명하고 있는 연의 맨 첫 행에서 쓰고 있어요. 그리고 여기서의 ‘here’는 자신이 있는 그 방안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here’의 반의어의 ‘there’ 즉 ‘그곳’이라는 말은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4연 마지막 행에서
“Darkness there and nothing more(그곳에는 어둠뿐이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라는 구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그가 방문을 연 후 방문 밖을 내다 보면서 하는 말이므로, 여기서 ‘there’는 곧 ‘방문 밖’을 의미하겠지요.
이것을 종합해 보면, 왜 아테나 여신상이 그의 방문 안쪽 입구에 놓여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즉, 고대의 팔란디움처럼 안전을 지키는 수호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즉, 생존을 위해서는 절대 열어봐서는 안 될 무의식 저변에 가려진 그곳을 통제하는 최후의 보루와 같은 것이겠지요. 동시에 이는 이곳을 절대 열어봐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나타내는 터부의 상징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연에서 시적화자는 아직 이 까마귀에게 압도당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첫 대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공작새나 하다못해 수탉처럼 머리 위에 관(冠) 비슷한 볏조차 달리지 않은 이 볼품없는 새가 마치 매우 고귀한 존재처럼 위엄 있게 구는 게 다소 웃기다는 듯이 대하고 있지요. 그래서 그는 다소 장난조로 이렇게 비아냥거리며, 그 새에게 말을 겁니다. 물론 그것이 대답을 할 것이라는 건 전혀 기대하지 않고 말입니다. 이때까지 그 새는 그에게 있어 그냥 수많은 까마귀 중 하나(one of many ravens) 일뿐입니다.
“Though the crest be shorn and shaven, thou,”
(“비록 볏은 깎여 없지만, 당신은”)
I said, “art sure no craven,
(나는 말했다. “당신은 분명,”)
Ghastly grim and ancient Raven wandering
(“섬뜩할 정도로 엄숙한 태곳적의 그 큰 까마귀,”)
from the Nightly shore-
(“저 밤의 기슭으로부터 날아온 그 큰 까마귀가 분명합니다.”)
Tell me what thy lordly name is on the Night’s Plutonian shore!”
(“말해주세요. 저 하데스가 지배하는 밤의 영토에서 당신은 어떤 위엄 넘치는 이름으로 불리는지를!”)
분명 그는 이 말을 별생각 없이 장난스럽게 던졌을 겁니다. 하지만 이후 그 새가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을 때,
Quoth the Raven, “Nevermore.”
(그 까마귀는 말하였다. “네버모어”라고.)
이 절묘하면서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심연(深淵)과 같은 대답을 했을 때, 그는 깜짝 놀라고 맙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이 당시 자신의 경솔함을 상기하며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the ebony bird beguiling my sad fancy into smiling,
(그 흑단과 같이 새까만 새는 교활하게도 나를 기만하기 시작했다. 이 속임수에
걸려든 나는 잠시 슬픈 공상에서 벗어나 쾌활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By the grave and stern decorum of the countenance it wore,
(그것이 짓고 있던 그 근엄하고 엄격한 예의를 갖춘 표정에 나는 재미있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이는 마치 ‘죽음’이라는 가장 즉물적인 실존을 리어노어와 같은 매개를 통해 로맨틱하게 기만적으로 인식하고, 또한 살아 있는 동안은 그것을 생생히 경험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경시하거나 그것에 무관심한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는 촌철살인적인 구절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도록 할게요. 원래 예정은 전개 부분을 다 끝낼 예정이었으나, 시를 해석하다 보니 글이 너무너무 길어지고 있습니다.ㅠㅠ 깊은 양해 부탁드려요. 남은 전개 부분(7,8,9연)은 다음 시간에 이어가도록 할게요. 그럼 전 다음 시간에 찾아오겠습니다. 다음 주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