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불완전한 CHASER, 해결되지 않은 숙취(宿醉)

조지 손더스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리뷰: 두 번째

by Juncus

이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구성만 보면, 시라쿠스 대학의 수업 자료를 거의 날 것 그대로 편집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만큼 소박하면서도 동시에 작위적이지 않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처음에 이 책에 어떤 진정성을 기대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손더스는 이 책 속에서(아마도 그가 맡은 수업에서) 체홉과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그리고 고골의 단편들을 분석한다. 하지만 그 분석의 맥은 해당 문학 연구자나 평론가의 방식과는 좀 다르다. 이것 역시 매우 소박하다고 할 수 있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소설가라는 그의 개성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었다. 즉, 기본적으로 이성보다는 감성으로 수업을 전개하고 있음에도, 플롯과 관련된 부분, 그리고 그 플롯을 통해 의도된 인물의 성격을 구상해 가는 부분에 대한 통찰은 합리적이었고, 전문적인 정교함이 드러났다. 우리는 이와 같은 해석의 방식에 대해 붙이는 이름을 잘 알고 있다. 즉, 내재적 관점, 다른 말로 절대주의적 관점에 따른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와 같은 해석의 관점을 선호하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같은 해석은 순서적으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기본 틀이 잘 잡히면, 그 이후에 반영론이나 효용론, 표현론 등의 외재적 관점들이 정교하게 그 자리를 찾아 들어가고, 서로의 함수 관계가 잘 맞물렸을 때, 좋은 해석이 나온다고 믿고 있다. 그렇기에 손더스가 해당 작품들을 해석하는 기본적인 방향은 마음에 들었으며,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요즘에는 이런 내재적 해석에 충실한 비평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갈수록, 오히려 이 점이 이 책의 단점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체홉

손더스는 단편에 능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단편의 플롯만의 특유성을 직관적으로 매우 잘 가르쳐주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시 말해, 손더스는 굳이 장편하고의 비교를 통해 자신이 선별한 단편들의 플롯의 유기적인 특징이나 장단점을 언급하지 않는다. 즉, 장르적 비교라는 방식을 통해서는 전혀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필요한 설명은 다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이 장르의 베테랑이며 매우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그의 이런 강점은 특히 체호프의 「마차에서」나 톨스토이의 「주인과 하인」과 같이, 탈 것에 의한 ‘이동’이 플롯의 흐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작품에서 두드러졌다. 분석의 편의를 위해 이를 ‘동적인(dynamic) 흐름’이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그런데 동적인 것이 있다면, 정적인(static) 것도 있어야 균형이 맞다. 그리고 이런 균형은 대게 자연적으로 형성이 되기에 단편소설 속에서도 이런 정적인 요소는 반드시 있다. 그리고 저 두 작품의 경우, 이는 중심인물들이 탈 것에서 내렸을 때, 즉 마차나 썰매에서 잠시 내리고 찻집이나 어느 마을의 집과 같은 곳에 잠시 머물렀을 때 드러난다.

먼저, 동적인 흐름에 경우, 이는 단편의 플롯 상 시간의 흐름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단편 속 시간은 압축적으로 제시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단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압축은 바로 인물의 심리 변화를 통해 효과적으로 제시되는데, 손더스는 이를 직관적으로 면밀히 읽어내고 또 알기 쉽게 풀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선생님이었다. 이는 특히 체호프의 <마차에서> 관한 강의에서 더욱 돋보였다. 이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주인공인 외지인 출신의 가난한 마을 학교 여선생인 마리야 바실리예브나의 다소 고단하고, 희망을 가질 가능성이 거의 없는, 단조롭지만 힘든 삶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단편이므로, 그녀의 인생 전반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체호프는 그녀의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어느 하루 중 일정 시간을 삽화처럼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삽화 속에 그녀의 인생 전반이 담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매우 밀도 있게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체호프는 이를 위해 마차라는 탈 것의 이동을 통해 일어나는 몇 가지 일들과 이에 대한 그녀의 반응과 심리의 흐름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이 소설이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전략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마리야에게 반복되는 어떤 힘든 하루의 흐름을 경험한다. 즉, 소설 속 시간을 경험했다는 말이다. 이 시간은 길어야 반나절 정도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반나절의 시간 동안 그녀가 그때까지 살아온 인생의 전반 역시 경험하게 된다. 압축적인 시간의 예술이다.

손더스는 단편 소설의 거장인 체호프의 이런 탁월함의 진면목을 매우 쉽게 잘 가르쳐준다. 그가 가르쳐주는 내용 중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리야가 탄 마차와 하노프라는 부유한 지주이자 선량한 한량이 탄 마차가 서로 교차하는 거리에 따라 보이는 그녀의 심리를 설명한 부분이다. 손더스는 하노프의 마차가 그녀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거리에 따라, 즉, 하노프라는 남자가 그녀의 눈앞에 보이고, 또 사라지는 것에 따라, 그에 대한 그녀의 심리적 거리의 양상을 우리에게 매우 직관적으로 가르쳐 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 남자는 그녀에게 있어 일종의 유희적 환상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한편, 그녀의 이런 태도를 통해 그 남자의 성격 – 부유하고 착하지만 허술하고 믿음직스럽지 못한 - 역시 짐작하게 해 준다. 물론 이런 고도의 기술은 일차적으로는 체호프에게 귀속된 것이지만, 손더스는 유능한 단편소설 작가답게 남들은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이런 미묘한 요소들을 정확하게 캐치해서 직관적으로 매우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한편, 마리야의 성격은 ‘정적인 흐름’을 통해 좀 더 분명하게 제시되는데, 이는 그녀가 탄 마차가 도중에 들리는 허름한 찻집에서 그녀를 대하는 마을 농부들의 태도와 이에 대한 그녀의 반응을 통해 일차적으로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이 소설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마차가 웅덩이를 지나쳐가다 그 속에 빠져서 그녀가 산 설탕들이 엉망이 되어버리는 순간 이후 좌절한 그녀가 목적지 기차역에서 그동안 무의미한 것으로 잊고 있었던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는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장소를 통해 드러나는 그녀의 성격은 대조적이다.

처음의 장소에서 드러난 그녀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 그녀는 그 마을 사람들에게 다소 천대를 받고 있거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존중을 받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별로 불쾌해하지 않는다. 이 말인 즉, 그녀는 이 상황에 익숙해져 있으며, 지긋지긋해하면서도 이를 벗어나야겠다는 의지는 별로 없다. 그저 그녀가 바라는 것은 학교 선생으로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일들 – 버릇없는 아이들, 수위와 관련된 갈등 등- 이 빨리 해결되는 것뿐이다.

반면, 그녀가 탄 마차의 마부인 세묜의 고집으로 웅덩이를 지나가다 그것이 생각보다 깊었던 탓에, 그녀의 신발과 치맛자락은 물론, 그녀가 산 설탕이 물에 젖어 엉망이 되고 만다. 그리고 정작 그녀가 크게 분노하는 것은 마을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것이 아닌, 설탕이 엉망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독자로서 우리는 이 지점에서 그녀의 성격에 대해 품었던 기대감이 좌절될 것 같은 불안이 든다. 그리고 손더스 역시 이를 매우 효과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단편의 대가로서의 체호프의 역량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이 매우 짧은 소설 속에서도 우리는 인물 성격의 골짜기와 마루를 플롯의 동적인 흐름과 맞물려서 관찰하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마차는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 목적지의 기차역에 정차된 어떤 기차 안 여인의 모습을 우연히 본 마리야는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와 무척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동안 그녀의 삶 속에서 완전히 잊혀 있었던 이 기억에 대한 상기(想起)는 새삼 그녀로 하여금 과거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추억은 밀가루나 설탕과 같은 것에 매몰되어 천대받는 현실의 비참함에는 무감각해져 버린, 어느 불쌍한 러시아 여인의 분위기를 한 순간이나마 좀 더 고귀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하지만 추억은 허상이고 현실이 진실인 법이기에, 기차의 목적지 – 즉, 그녀의 마차가 도착해야 할 목적지-를 알리는 기차 역장의 목소리가 그녀를 다시 무감각의 상태로 불러들이면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작품은 플롯의 동적인 흐름과 정적인 흐름이 절묘하게 배합되어, 그 속에서 소설 속 시간과 인물들의 성격, 심지어 장면화되지 못한 그들의 과거까지 모두 담아내고 있는, 매우 잘 쓰인 작품이다. 그리고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에서 손더스가 다루고 있는 총 7개의 단편들 중에서 가장 강의가 잘 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손더스의 설명은 이 작품에 대한 매우 훌륭한 해설과도 같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 역시 손더스에게 배운 것을 학습해서 해당 작품을 다시 읽어본 후 정리한 것이다. 물론 이 작품만이 아니라,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 속에 수록된 「귀여운 여인」이나 「구스베리」와 같은 다른 체호프의 작품들에 대한 그의 설명 역시 대체적으로 매우 효과적이었고, 유용했으며, 또한 설득적이었다. 하지만 그 외 작품들, 더 정확히 말해, 다른 작가들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아쉬움이 좀 더 남았다.

러시아의 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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