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리뷰 시리즈 (1)

예비적 사항들

by Juncus

예비적 사항들


영재 교육


이번 시간부터는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대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대한 리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밀은 철학에 대해 문외한이신 분들이라도 그 이름쯤은 한번 들어보셨을 겁니다. 왜냐하면 중·고등학교 <도덕>이나 <윤리> 교과서에 반드시 언급되는 철학자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제 기억을 더듬어보면, ‘존 스튜어트 밀-공리주의-“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편이 더 낫다.”’라는 식으로 매우 도식적으로만 설명되었던 것 같은데, 요즘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무튼 밀은 이렇게 교과서에도 나올 만큼 매우 유명한 철학자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그의 사상보다는 그의 아버지의 혹독한 스파르타식 교육법과 이를 소화해 낸 밀의 천재성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요. 밀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요즘 식으로 치면, 암기 위주의 주입식이 아닌 ‘자기주도적인 영재 교육’을 받았습니다. 일례로, 밀의 아버지는 밀이 아주 어렸을 적부터 매일 읽어야 할 책의 종류와 할당량을 숙제처럼 부과했다고 하는데, 이 책들의 내용의 난이도와 양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상당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밀은 꿋꿋이 이를 다 소화해 냈다고 해요.


그 책들 중에는 고전이 없었을 리가 없지요. 그런데 밀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이 고전들을 원어로 된 판본 그대로 읽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는 세 살 때 이미 그리스어를 마스터했고, 여덟 살에는 라틴어도 완전히 익혔다고 해요. 이 모든 건 아버지가 직접 가르쳤습니다. 제 추측이지만, 밀이 너무도 뛰어나다 보니, 그를 제대로 가르칠 가정교사가 딱히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부전자전이라고 역시나 뛰어난 능력자인 제임스 밀, 즉 밀의 아버지가 아들 교육을 직접 담당한 게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뭐, 헤겔과 같은 경우는 한 번 읽은 내용은 그 철자 하나까지 다 기억할 정도로 뛰어났다고 하고, 파스칼 같은 경우는 2-3살 때 그림 낙서 같은 걸 하며 놀면서 이미 유클리드 기하학을 스스로 이해하고 있는 걸 그의 아버지가 발견하고 놀랐다는 에피소드도 있고, 러셀 경과 같은 경우는 다섯 살이 되기도 전에 모든 걸 이해해 버려서 5세 때 이미 권태를 견디기 힘들어 자살을 고려했다고 하니까........^^; 밀의 이런 에피소드들은 별로 놀라울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지 간에 이런 먼치킨급의 천재들에게는 늘 이런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어떤 식으로든 따라붙는 것 같습니다.



제레미 벤담


밀을 언급하자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또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제레미 벤담’이지요. ‘파놉티콘’이라는, 재소자들 서로가 서로를 24시간 감시할 수밖에 없는 감옥을 설계하여, 이들을 관리하기 위한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아이디어를 낸, 영국이 낳은 또 다른 천재 철학자 중 한 사람입니다. 벤담이 한 말 역시 너무도 유명하지요. 바로 누구나 다 아는 “최대 다수, 최대 행복”이 바로 벤담이 한 말입니다.


벤담은 밀보다는 한 세대 위로, 밀의 아버지와 가까운 지인 사이였다고 해요. 그래서 밀은 벤담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실상 그의 제자라고 할 수 있지요. 왜냐하면 벤담이 창시한 공리주의를 이어받아서 그것의 외연을 더욱 넓히고, 내용 역시 더욱 깊이 있게 만든 것이 바로 존 스튜어트 밀이니까요. 사자성어로 치면 벤담에게 있어 밀은 일종의 청출어람(靑出於藍)과 같은 존재입니다. 즉 ‘스승보다 더 뛰어난 제자’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 스승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밀 역시 없었을 겁니다.


공리주의


밀은 벤담과 함께 공리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공리주의의 요(要)는 비교적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선(善)의 판단 기준을 효용(utility)에 두는 것입니다. 이 말인 즉, 행위의 동기가 아니라 결과에 더 방점을 둔다는 뜻이지요.


예를 들어, 어떤 매우 욕심 많고, 부지런한 사업가가 있다고 해봅시다. 그는 잘만 키우면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꽃을 가지고 돈을 벌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그 꽃을 조금 심어서 잘 키워본 후 시장에 내놓으니, 사람들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이때 그는 자신의 감이 맞았다고 확신을 했고, 이후 그 꽃을 찾는 주문 역시 계속 들어오지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발생했습니다. 그건 바로 이 꽃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물이 많이 필요했어요. 그런데 그가 살고 있는 지역은 강수량이 적어서 늘 물이 부족한 건조한 기후 지역이었지요.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해서든 물을 확보하기 위해 지하수맥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온갖 고생 끝에 암벽 밑에서 흐르는 수맥을 찾아냈고, 그의 사업은 말 그대로 대박을 칩니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마르지 않는 샘 덕분에 그가 살던 마을의 사람들도 더는 물 걱정을 하지 않고 살 수 있게 되지요.


이는 제가 영화 <마농의 샘>에서 나온 상황을 약간 바꿔서 표현해 본 것입니다. 이 사업가는 결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수맥을 찾아낸 게 아니에요. 오직 자신의 꽃을 위해, 그리고 그 꽃이 벌어다 줄 엄청난 돈을 위해 그 고생을 마다하지 않은 것이지요. 즉, 애초에 그의 동기는 이기적인 것이었던 거지요. 하지만 그의 이 노력 덕분에 결과적으로 그 마을 사람들 전부가 혜택을 보았습니다. 즉, 매우 큰 효용이 뒤따르게 된 것이지요.


도덕적 판단에서 행위의 동기를 중시 여기는 입장에서는 이 사업가의 행동을 선한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저 우연에 의해 효용이 발생한 것이라고 볼 뿐이에요. 하지만 공리주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사업가는 분명 선한 행위를 한 것입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입장 차


동기와 결과 사이에서 무엇에 방점을 두고 도덕적 판단을 내리느냐 하는 문제는, 이보다 철학적으로는 훨씬 이전부터 논의된 테제들, 즉 인간 본성에 대한 입장 차이와 인식론적인 문제, 즉 지식의 문제와 관련한 입장 차이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먼저 인간 본성에 대한 입장 차이에 대해 짤막하게 살펴보고 넘어갈까요? 여러분들도 한 번쯤은 다 들어봐서 아실 이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토마스 홉스’이지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말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홉스가 바로 이 말을 한 인물입니다. 그 역시 영국 사람으로, 『리바이어던』이라는 책을 통해 ‘사회계약론’이라는 개념을 이론화한 사상가입니다. 자연 상태의 인간에 대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한 말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홉스는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악하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자연법’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홉스는 자연 상태에 있는 개인들에게 적용되는 자연법이란, 바로 ‘한 개인은 자연의 모든 것에 대해 권리를 가진다.’라고 말 합니다.


예를 들어, 여기 한 탐스러운 과실수가 있다고 칩시다. 홉스에 따르면, 자연법의 지배를 받는 자연 상태의 개인들 각자는 그 나무를 자기 것으로 삼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될까요? 서로 이 권리를 보전하기 위해 피 터지게 싸우겠지요. 말 그대로 난장이 벌어질 겁니다. 그리고 이 혼란이 계속되면, 애초에 이 자연권을 지키고자 한 노력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리겠지요. 왜냐하면 서로 다 같이 손해만 볼 뿐이니까요. 그렇게 해서 탄생하게 되는 게 ‘국가’입니다. 즉, 이 불필요하고 끝이 없는 손해를 막기 위해 자연 상태의 이기적인 개인들이 이기적인 이유에서 자연법적 권리를 국가(왕)에게 양도하는 것, 그리고 그 대가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인한 피해로부터 보호와 구제를 받는 것이 국가가 탄생하게 된 까닭이라는 것이지요.


홉스의 이런 자연법에 근거한 사회계약의 아이디어는 이후 존 로크에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는 여전히 매우 유효합니다. 홉스와 로크가 없었다면, 롤즈의 『정의론』은 나올 수 없었을 겁니다. 또한 그렇다면 노직의 이론도 나올 수 없었겠지요.


토마스 홉스


반면, ‘사회계약론’을 오직 홉스나 로크만 주장했을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유럽은 큰 맥락에서는 문예부흥운동이었던 르네상스와 맞물려 시작되어 이후 수백 년간 전 유럽을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종교개혁이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이었습니다. 이를 배경으로 많은 사상의 교환이 일어났겠지요. 대표적으로 프랑스(과거에 비해 지금은 많이 기울었지만, 샤를마뉴 대제 사후 이후로 유럽의 대표적인 패권국 중 하나였으며, 기후적·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대대로 부유했고, 그런 만큼 유럽의 문화와 사상의 중심지였기도 했습니다)에서도 ‘사회계약론’은 제기되었습니다. 몽테스키외나 장 자크 루소 등이 그 대표적인 사상가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을 보면, 그 도입부에서 홉스와는 완전히 모순되는 관점에서 자연 상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게 명시적으로 나와 있습니다. 즉, 홉스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야만 그 자체로 맹목적으로 공격적이고 악하다고 보는 반면, 몽테스키외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겁쟁이들로, 자연이라는 상태 자체가 너무도 예측 불가능하기에 일단 몸을 사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다가 이 불안의 상태가 너무 힘들어서 구성원들끼리 사회적 합의에 이르게 되고, 그 결과 국가가 생기는데, 오히려 인간의 악한 행위는 바로 이 안전지대가 완전히 마련된 후, 더 이상 불안에 떨 일이 없을 때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지요. 흥미롭지요? 같은 대상을 이렇게 완전히 다르게, 그것도 각각이 매우 설득적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 말입니다.


루소의 주장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 놓여 있습니다. 그가 한 유명한 말(이 말 역시 <도덕> 교과서에서 들어보셨을 겁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 의 의미는 이 몽테스키외의 사회계약론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즉, 이들은 영국 쪽의 사회계약론과는 달리, 인간의 본성을 선하다고 보는 쪽에 방점이 기울어져 있는 것이지요.


인식론적 입장 차


그럼 이제 인식론적인 입장 차이를 한번 정리해 볼까요? 전통적으로 이를 구분하는 용어는 분명합니다. 바로 ‘합리주의와 경험주의’가 바로 그것이지요. 여기서 합리주의는 인간의 지식의 근원을 인간 이성, 혹은 본유관념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즉,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지식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것’이라고 믿는 입장이지요. 그렇기에 합리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지식의 확실성은 믿을 만합니다. 왜냐하면 (스피노자 식의 표현을 따른다면) 인간은 신(神)의 변용(變容, affectio)의 일종이며, 전지함(全知,omniscience)은 신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식은 신만큼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것의 변용인 수준은 된다는 뜻입니다.


반면, 경험주의는 이와 상당히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게 데이비드 흄이라는, 영국이 낳은 또 한 명의 천재 철학자가 제기한 ‘자연의 일양성(一樣性)’ 문제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런 겁니다. 우리는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에서 지는 것을 의문의 여지가 없는 ‘진리’ 즉 ‘완전한 지식’이라고 알고 있지요. 그렇기에 영어에서도 ‘The Sun rises in the east and sets in the west.’라고 반드시 늘 현재형으로만 표현합니다. 하지만 흄은 되묻습니다. 이 믿음이 언제나 참인 지식이라는 걸 담보할 만한 근거가 도대체 어디 있느냐 라고 말이지요. 그럼 사람들은 십중팔구는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실제로 그러하고, 매일 같이 그러하고, 과거에도 늘 그러했으니까 라고 말이에요.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이게 곧 미래에도 반드시 그러할 것이라고 100%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요. 과거에서부터 늘 하얀 백조만 봐왔던 사람들이 백조는 말 그대로 白鳥, 즉 흰 새이고, 흰 것 밖에 없다고 믿었다가, 어느 날 흑조 한 마리를 보고 나서 이 믿음이 거짓인 지식인 것으로 한순간에 판명되었듯이 말이에요. 인간은 시간과 공간에 한정된 존재이므로 그 경험에는 한계라는 게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이 진리라고 믿고 있는 지식이 100% 참이라고 단정 지을 근거는 없다는 게 경험주의의 요지입니다. 즉, 인간의 관습적 경향성, 집단에 의해 학습된 수동적 암시 등이 아직 근거가 확실치 않은 믿음을 참인 지식으로 여기게 만들어 버린다는 뜻입니다. 영국에는 일찍이 이를 우화적으로 지적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종족의 우상’, ‘극장의 우상’이라는 네 가지 우상에 대한 비유로 이를 비판한 프랜시스 베이컨이지요.


영국만의 특이성


자, 이렇게 정리한 내용을 보면, 어떤 경향성이 보이시나요? 알기 쉽도록 키워드들을 한번 나열해 볼까요? 그것은 바로 이와 같을 것 같습니다.


영국 - 공리주의(벤담, 밀, 동기보다는 결과 중시, 사회적 효용 강조) - 성악설 혹은 백지설tabula rosa(홉스, 로크) - 경험주의(흄, 베이컨, 버클리 등, 지식의 근원은 경험이며 인간의 경험은 불완전하기에 그로부터 얻은 지식 역시 완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여기는 태도)



대륙 – 동기 강조 목적론(칸트) - 성선설 혹은 백지설tabula rosa(몽테스키외, 루소, 존 로크) - 합리주의(스피노자, 몽테스키외, 라이프니츠, 데카르트 등, 인간 지식의 원천은 경험보다는 타고난 이성의 능력이라고 믿음, 이러한 이유로 그 완전성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음)



여기서 바로 뭐가 보이시나요? 영국 쪽은 확실히 대륙 쪽에 비해 인간의 본성이나 지식의 확실성, 도덕 능력 등에 대해 회의적이고 잠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을 너무 이분법적인 도식으로 이해하시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유럽은 국경의 경계가 매우 모호했고, 사실 절대왕정에 의한 국민국가 개념이 생기기 전까지는 딱히 나는 프랑스인, 나는 독일인, 이런 식의 관념이 뚜렷하지도 않았습니다. 늘 영토 전쟁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나라의 국경선은 자주 바뀌었으니까요. 그래서 사상 교류가 활발했고, 그렇기에 여러 하이브리드 형태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니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위한 대략적인 지도 정도로만 이해해 주세요. 그다음 찾아가야 할 오솔길 등의 세부적인 길은 이 전체적인 것을 잘 살피면서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 점만큼은 그나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영국은 대륙에서 동떨어진 섬나라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발전해왔다는 걸 말이에요. 그리고 이런 과거의 기억은 여전히 그들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일례가 브렉시트Brexit와 같은 경우이지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젠틀맨 더 시리즈>를 보면, 벨기에 악당 놈이 주인공들인 호닝험 공작과 수지 글라스에게 ‘너희들은 유럽인이 아니야, 이 천박한 야만인들아!’라는 식으로 계속 은근히 조롱을 하는 게 나옵니다. 이게 바로 표면적으로는 브렉시트를 비꼰 것인데, 그 이면에는 영국인들의 이 개성, 대륙의 유럽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혼자 삐딱선 타는 성향을 비꼰 것이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서로 아무런 영향을 주고받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일례로 제가 위의 도식에서 대륙의 인간 본성 백지설에 넣은 ‘존 로크’는 엄연한 영국인입니다. 그리고 존 로크의 저항권 사상은 프랑스 대혁명의 합리적인 명분을 제시해주었지요. 반면, 전 유럽이 프랑스 대혁명의 광풍에 휩쓸려 갈 때 꿋꿋하게 이에 휘말리지 않은 나라가 또 영국입니다. 당시 영국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혁명에 관한 성찰』이라는 저서를 통해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늘 느끼지만 참으로 아이러니한 게 인간사인 것 같습니다.^^;;


한편, 그러면서도 국민 저항권에 대한 의식이 어느 나라보다 빨리 싹트고, 그게 제도적으로 가장 빨리 자리 잡은 나라도 영국입니다. 영국인들은 프랑스혁명이 있기 이미 한 140-50년 전에 젠트리 계급 출신의 올리버 크롬웰이 주도한 청교도 혁명으로 멀쩡한 국왕의 목을 잘라버린 나라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미 1200년대에 귀족과 기사 계급이 존 왕을 상대로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즉 대헌장을 선포해서, 입헌군주제의 초석을 다진 나라이기도 하지요. 이렇게 초기에 왕권을 견제할 법적 장치를 마련한 나라이면서도,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헨리 8세 이후로 국왕이 교회의 수장이기도 한 나라는 유럽에서 또 영국이 유일했지요. 영국의 성공회의 수장은 교황이 아니라, 영국 국왕이니까요. 또 21세기 현재까지 여전히 왕이 군림하는 나라, 하지만 ‘군림은 하되, 지배는 하지 않는 것’이 통하는 나라가 또 영국입니다. 즉, 매우 급진적이면서도 매우 보수적인 것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나라가 바로 영국인 것 같아요.


앞으로 밀의 『자유론』을 리뷰하다 보면, 지금 제가 예비적으로 설명드리고 있는 배경지식들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 나옵니다. 그때 내용이 좀 어려우시면, 이번 편을 다시 찾아서 읽어보시면 될 것 같아요.



『자유론』에서 다루는 ‘자유’의 의미


마지막으로 밀의 『자유론』에서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한정하는 것으로 이번 편을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자유론』 첫 장의 첫 단락에서 밀은 분명히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의지의 자유’, 즉 ‘자유의지’를 다루는 건 이 책이 목적하는 바가 아니다. 유감스러운 점은, 사람들이 ‘철학적 필연성’이라는 것을 숙명론 같은 것으로 오해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그들은 이 필연성을 자유의지와 상반되는 개념으로 여기고 만다. 하지만 이 책은 이와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시민의 자유 혹은 사회적 자유’를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다.”



여기서 제가 밑줄 친 부분들 중, 밀이 첫 번째와 두 번째 문장을 통해 의미하고 있는 건, 이 밀의 『자유론』 이전에, ‘자유’라는 개념을 가지고 오랜 세월 동안 지난하게 이어져 온 신학적·철학적 논쟁입니다. 이는 기독교적 원죄론과 신의 의지 내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와 관련되어 있지요. 헤겔도 원래는 신학자였고, 스피노자의 『에티카』 역시 이와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라이프니츠나 뉴턴 역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리뷰는 『자유론』에 관한 것이니, 이에 관한 언급은 더 이상 자세히 하지 않겠습니다. 『자유론』 리뷰를 진행하다 나오는 부분이 있으면, 그때 조금씩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밀이 『자유론』에서 논의를 시도해보고자 하는 ‘자유’의 의미, 즉 ‘시민적 자유’의 의미는 당시로서는 매우 신선한 시도였을 겁니다. 그래서 이 책이 이후 현대 철학자들, 특히 영미권 철학자들과 자유주의 사상가들에게 일종의 초석이자 바로미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공리주의, 합리주의 등도 넓게 보면 자유주의의 외연에 들어갑니다. 그만큼 자유주의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해서, ‘자유’라는 말이 이제는 너무도 일상적인 단어가 된 까닭에 말이 쉽게 느껴지는 것이지, 상당히 어려운 개념입니다. 하지만 밀은 이를 매우 구체적이고 사례적으로 검토해가며 그 실질적인 의미를 도출해가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종교적 맥락에서의 자유의지 문제는 거의 논하지 않습니다. 즉, 관심 밖의 것이 된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가 ‘자유’라는 말을 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밀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자유의 의미에 거의 가깝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책은 오늘날에도 공리적으로 효용이 크고, 신학적 의미의 자유와는 달리, 담화적으로도 그 유의미성을 아직 잃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철학서보다 이 책을 한번 읽어보시는 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실 듯 싶습니다.


그럼, 본격적인 리뷰는 다음 시간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주는 설연휴인 관계로 한 주 쉬도록 할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편안한 연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럼 2주 뒤에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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