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리뷰 첫 번째
2주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이번 시간부터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대한 본격적인 리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리뷰 시리즈가 완결될 때까지는 몇 주나 소요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자유론』은 총 5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매주 한 챕터씩 리뷰를 진행한다면 앞으로 총 5주가 걸리겠지만, 이는 불가능하고, 또한 이런 식으로 하면 굳이 리뷰를 하는 의미가 없습니다. 이 리뷰의 목적은 좋은 책, 하지만 쉽게 읽히지는 않는 책들을 풀어 설명해드리는 것에 있지요. 그러니 시간이 좀 걸려도, 천천히 풀어가는 게 이 목적에 부합할 것입니다. 그러니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진행하도록 할게요. 그럼, 이제 바로 시작을 해볼까요?
제1장 서론
1. 『자유론』에서 다루는 ‘자유’의 의미
일단 서론은 지난 예비적 사항들에 대한 소개의 마지막에서 언급 드렸던 것처럼,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자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히는, 용어 정의에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밀이 이 책에서 다루고자 하는 ‘자유’는 밀 이전의 기존 철학에서 주로 논하던 ‘자유의지’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이 책에서 ‘자유’라는 말을 통해 지칭하고 있는 것은 바로 ‘시민적 혹은 사회적 자유’로서, 이를 밀은 다음과 같이 풀어 정의내리고 있습니다.
“사회가 개인에 대해 합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의 본질과 그 한계에 관한 것”
이라고 말입니다.
2. ‘자유’와 ‘권력’ 사이의 갈등의 역사
이 책과 같이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글이라면, 보통 이처럼 맨 처음에는 이 글에서 사용되는 주된 용어들에 대한 의미를 재정의하는 것, 즉 ‘나는 앞으로 oo이라는 용어를 0000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겠다.’라는 식으로 키워드들에 대한 예비적 설명을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을 합니다. 그런 다음 이어지는 순서는 해당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통시적으로 정리를 해보는 것이지요. 즉, 그 주제와 관련된 역사적인 사례들을 살펴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의미가 담화적으로 어떻게 변화해왔고, 어떤 양상을 띠어 왔으며, 그 결과 현재는 어떠한 모습을 띠고 있는지를 좀 더 유기적이고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가 있으니까요.
밀 역시 이런 전형적인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론』에서 다루는 ‘자유’의 의미를 ‘시민적 자유’라고 분명히 한정한 이후에는, 곧이어 이런 의미에서의 자유, 즉 ‘시민적 혹은 사회적 자유’라는 것이 역사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 왔는지에 관해 언급합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밀이 이 책에서 정리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자유’와 ‘권력’ 사이의 갈등이라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로서 실제로 현상화된 경우는, ‘그리스’나 ‘로마’ 그리고 ‘영국’과 같이 ‘시민’이라는 개념과 그것과 관련된 ‘권리와 의무’에 대한 의식이 일찍이 눈을 뜬 문명국에 한정된다고 말입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는 ‘폴리스 시민’이라는 개념이 있었지요. 그것도 상당히 구체적으로 말입니다. 예를 들어, 아테네의 경우는 외국인이거나 노예, 여성이 아닌 성인 남성으로 직접 민주정에 참여할 자격과 의무가 있는 자들을 두고 ‘시민’이라고 불렀습니다.
로마 역시 ‘시민권’이라는 개념이 분명히 있었고, 그것은 단순한 명분이 아닌, 완전히 실재하는 매우 구체적인 권리여서 로마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마치 오늘날 미국의 시민권 획득이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자격의 상징이었습니다. 로마는 매우 실용적인 문화로 유명하지요. 그만큼 법이 매우 정교하게 발달해 있었는데, 로마의 시민권은 이런 법적인 기반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몽테스키외의 『로마인의 흥망성쇠 원인론』이라는 책을 보면, 이와 같은 로마인들의 시민 의식, 즉 ‘정치적 자유’가 어떻게 발달했고, 또 어떻게 상실되어 가는지가 매우 구체적으로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재미있는 책이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번 찾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선진적인 의식이 일찍이 발로 할 수 있었는지는 이 고대의 두 탁월한 문명국들의 정체(政體)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의 경우는 폴리스 별로, 민주정, 과두정, 귀족정, 참주정 등 체제가 조금씩은 달랐지만, 주변 소아시아의 페르시아와 같이 전제(專制) 정치가 이루어지는 폴리스는 없었지요. 그리고 그리스 문명의 전성기 시절에 이 세계 전체에서 사실상 왕으로 군림하는 폴리스는 바로 아테네였고, 아테네는 누구나 알다시피 직접 민주정이었습니다. 물론 페리클레스라는 선하고 현명한 독재자가 지배했던 행운의 긴 시기, 고대의 인류의 수명을 고려해 볼 때는 상당히 길게 느껴지는 그 시기 동안만 그 빛이 이상적으로 발했던 정체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로마의 경우는 초기에는 왕정이었지만, 시저가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오랜 기간 동안은 원로원이 결정적이고 최종적인 정치적 의사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는 공화정이었고, 시저 시해 이후, 그의 양자 아우구스투스가 제1대 황제로 등극하면서 비로소 제정(帝政)이 됩니다. 물론 제정이었다고 해도 원로원이 해체된 것은 아닙니다. 이는 영화 <글래디에이터>만 봐도 잘 알 수 있지요.
아무튼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두 고대의 제국들 모두 권력의 독점을 견제하는 정치적 기구와 법제가 고도로 발달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는 영국 역시 그러한 편입니다. 또한 무엇보다 다른 유럽의 국가들보다 이런 정치적 시스템이 훨씬 이른 시기부터 자리 잡기 시작했지요. 이 점은 지난번 예비적 사항들에 대한 소개에서 이미 언급해드렸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그 편을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로마 원로원의 모습
<Cicero denounces Catiline in the Roman Senate> by Cesare Maccari
2)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자유’와 ‘권력’ 사이의 갈등의 양상
밀은 이런 나라들의 역사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자유’와 ‘권력’ 사이의 갈등의 특질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① 과거의 경우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지금이 아니라 이 ‘과거’는 밀이 활동하던 시대, 즉 19세기 중·후반을 기준으로 생각하셔야 합니다)
밀에 따르면, 이때의 ‘자유’와 ‘권력’ 사이의 갈등은 신민(臣民) 혹은 신민 내 몇몇 계급과 정부 사이의 갈등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그렇다면 이 당시의 상황의 맥락에서 볼 때 이때의 ‘권력’과 ‘자유’의 담화적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이에 대해 밀은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a. 과거의 ‘권력’이란, 세습과 정복에 의해 획득되는 것이기에, 절대적이고 독점적인 특징을 가진다. 이 말인 즉, 피지배자들, 즉 신민의 이익에 대한 고려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입니다.
인류사가 어떻게 발전을 해왔는지를 떠올려보시면 이 말에는 거의 누구나 동의하실 겁니다. 이와 관련해서 지금 제 머릿속에서는 멜 깁슨이 주연한 영화 <브레이브 하트>가 떠오르는군요. 거기서 보면 잉글랜드 정복자들이 스코틀랜드 사람들을 대할 때 딱 이런 식으로 대하지요. 그리고 이에 대항해서 분기(憤起)한 스코틀랜드의 영웅 윌리엄 월레스(멜 깁슨 分)가 처형당하기 직전에 다음과 같이 외치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Freedom!!!!(자유를!!!!)”
그렇다면 월레스가 죽음과 맞바꾸면서까지 외치던 이 자유란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일단 영어 단어부터가 다릅니다. 즉, 밀이 이 『자유론(On Liberty)』에서 다루고 있는 ‘자유’ 즉 ‘리버티(liberty)’가 아니라 ‘프리덤(freedom)’이지요. 단어가 다르다는 건, 분명 같은 ‘자유’의 외연에 속한다고 할지라도 그 의미가 좀 다르다는 걸 뜻하지요. 그래서 밀은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b. 과거의 ‘자유’란, 정치적 지배자들의 폭정으로부터 보호를 받는 것, 즉 지배자가 신민 공동체에 대해 행사하는 권력에 제한을 두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이 ‘제한’이라는 것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두냐 라는 것일 겁니다. 월레스가 외치는 ‘freedom’은 이 제한에 대해 가장 소극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즉, ‘그냥 너랑 나 각자 살자.’라고 하면서 땅에 경계선을 쭉 긋는 것과 비슷한 겁니다. ‘여기는 넘어오지 마! 내 영역이야.’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에 말하는(또한 밀 역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자유(liberty)’의 의미는 이런 정도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권력을 가진 집단에게 공동체가 ‘너는 내 권리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어.’라고 적극적으로 요구를 하는 게 오늘날 자유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즉, 제가 이해한 바로는, freedom과 liberty의 차이는 다음과 같은 것 같습니다. 즉 ‘freedom’이 ‘부당한 외부의 힘에 의해 구속받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면, ‘liberty’ ‘이러한 상태를 정치적인 의견으로서 표명하고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더 쉽게 풀기 위해 다음과 같은 비유를 두어 볼게요. 공자가 사람의 본성은 인(仁)하다고 하면서, 그 근거로 든 게, 우물 안으로 빠지려고 하는 어린아이를 보면 누구나 안타까워하고 걱정한다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가 자신의 목숨을 위험에 노출시키면서까지 아이를 구하러 뛰어가지는 않습니다. 즉 이 인(仁)한 마음이 적극적인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 사이에 ‘용기’와 같은 다른 추가적인 조건이 더 필요합니다.
freedom과 liberty의 관계도 이와 유사하다고 봅니다. 즉, freedom을 위해, 이 덕목의 실현을 위해 ‘자율성’을 발휘하는 것, 그것이 바로 liverty의 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냥 제 의견일 뿐이니 참고만 해주세요.
② 유럽 자유주의의 역사: 지배자의 권력 행사에 제한을 두는 방식의 변천사
이렇게 정치적 지배자가 행사하는 권력에 제한을 두는 방식에는 어떤 것이 있어 왔을까요? 밀은 이 역시 역사적인 발전의 순서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밀은 이를 ‘유럽의 자유주의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지요. 아래의 순서는 순행적인 것으로, 밀에 따르면, 유럽의 자유주의는 아래에 정리된 것과 같은 순서로 발전해왔습니다.
첫 번째, 정치적 자유 또는 권리라고 불리는 영역을 정해 둠. 지배자가 그 영역을 침범한 경우 의무 위반으로 간주함으로써 저항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함.
⇨ 여기에서 일단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사회계약론’적인 관점입니다. 계약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행위적 조건이 있지요. 바로 ‘권리’와 ‘의무’입니다. 이 양자는 계약의 당사자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자, 모두에게 요구되는 것이지요. 계약 당사자들은 자신의 권리 보호를 위해 계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이 권리를 보호받기 위해서는 자신 역시 다른 계약자들의 권리를 보호해줘야 할 ‘의무’가 생기지요.
영국은 유럽에서도 상대적으로 매우 이른 시기에 이런 식의 사회계약론적인 관점의 싹이 튼 나라입니다. 프랑스를 위시한 대륙 쪽에서는 이게 18세기 계몽주의 시기에 이르러서야 담화적인 쟁점으로 부상하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사회계약론이라는 아이디어를 최초로 설득력이 있는 논리를 가지고 제시한 사람은, 지난 회 차의 예비적 사항들에 대한 설명에서도 언급했던 ‘토마스 홉스’입니다. 그는 영국인이고, 계몽주의 시기보다 2세기 정도 이전 시대의 사람입니다.
영국은 이미 1208년쯤인가에 존 왕을 상대로 귀족과 기사 계급이 마그나 가르타라는 대헌장을 선포했고, 존 왕은 이에 결국 합의를 했으며, 이렇게 입헌군주제의 최초의 기반이 성립되게 됩니다. ‘왕권은 있되, 그것의 권력은 헌법에 의해 제한받는다.’ 바로 이 점이 입헌군주제의 내용이지요. 이 첫 번째 단계에서, 밀이 말하고 있는 내용은 바로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들일 겁니다.
두 번째, 지배 권력이 행사하는 좀 더 중요한 행위들 중 일부에 대해서는 공동체(혹은 공동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의 동의를 얻어야 함을 헌법으로 규정함.
⇨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세 가지입니다. 먼저 하나는, ‘지배 권력이 행사하는 좀 더 중요한 행위들 중 일부’라는 게 무엇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피지배자의 자유와 밀접하게 관련된 것들이겠지요. 그게 과연 무엇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바로 ‘세금’이지요. 또한 정치적인 발언권과 관련된, 적극적인 자유 행위도 이에 포함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하나는 무엇일까요? 바로 ‘공동체(혹은 공동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공동체’라는 말은 현대적으로 풀자면, 아마도 ‘시민’ 일 것입니다. 하지만 영국은 계급사회였으니, 이 시민이라는 것에 모든 피지배자가 포함되는 것은 아니지요. 프랑스혁명도 그 주체는(즉, ‘시민’은) 부르주아들, 즉 성(城) 안, 다시 말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귀족은 아니지만, 상업 등으로 나름의 세습된 부와 특권을 가진 계층이었습니다. 영국의 경우는 소지주 계급, 즉 젠트리들 역시 이에 속했지요. 청교도혁명을 일으켜서 찰스 1세의 목을 쳐버린 올리버 크롬웰 역시 부유한 젠트리 출신이었습니다.
프랑스혁명이 촉발된 이유는 비교적 자명합니다. 바로 돈 때문이에요. 당시 프랑스는 절대왕정 시기로 전쟁 부담금 등의 명목으로 부르주아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부담시켰고, 그게 점차 임계점에 이를 때쯤, 사상적으로는 계몽주의가 유행했고, 그 결과 합리적 명분이 생기고 해서 결국 그와 같은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지요.
이보다 150년 전쯤 영국에서 일어난 청교도혁명이 발발하게 된 배경 역시 이와 비슷합니다. 당시는 스튜어트 왕조 시기로, 헨리 8세나 엘리자베스 1세와 같은 튜더 왕조의 잔재가 그대로 이어져서 절대왕정의 이데올로기가 아직 헤게모니를 잡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는 의회를 무시하고 왕권을 더욱 강화하려고 했겠지요. 그 결과, 영국의 성공회는 신교도들, 즉 청교도들을 탄압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단지 종교적인 신념의 탄압을 넘어, 이 신념으로 뭉쳐진 부유한 공동체, 즉 젠트리들과 상인 계급들의 정치적인 자유를 탄압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또한 역시나 마찬가지로 이들에게 세금을 과도하게 부과했지요. 그 결과 일어난 게 ‘청교도혁명’입니다. 이후 왕정복고가 되기까지 10여 년의 기간 동안 영국은 내전의 상태에 놓인 일종의 공화정 체제였습니다.
이후 왕정은 복고되었지만, 청교도혁명의 영향은 이제 대세가 되어 있었기에, 이후 명예혁명이라는 ‘무혈혁명’을 한 번 더 거치면서, 영국은 정치적 지배자에 권한에 대한 제한을 헌법적인 의무로서 확립시키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마지막 한 가지가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바로 ‘헌법’이지요. 그리고 영국 역사에서 등장한 그것의 구체적인 모습은 바로 ‘권리장전’입니다. 권리장전의 내용은, 시민의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이나, 세금에 관한 법률 등은 반드시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회’가 바로, 밀이 말하고 있는 ‘공동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이겠지요.
<찰스 1세의 관 앞에 선 크롬웰> by 폴 들라로슈
세 번째, 이해관계에 있어 지배자는 피지배자의 반대편에 있는 독립적인 권력이라는 것이 정서적으로 당연시 여겨지지 않게 됨.
⇨ 첫 번째에서 두 번째까지의 발전 과정에는 영국 역시 그 주축에 있었지만. 세 번째는 좀 다릅니다. 적어도 밀은 분명히 좀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일단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정치적 지배자의 권력이 독립적이라는 것에 대한 ‘정서적 동의’가 더 이상 없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이 무엇일까요? 단순하게 말해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믿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을 헌법적인 가치로 내세우고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 무엇일까요? 바로 ‘프랑스혁명’이지요. 프랑스혁명의 헌장을 보면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천부인권’, 즉 시민의 권리는 하늘이 부여한 본유적인 것이라고 말입니다.
오늘날에는 이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더 이상 신념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자명한 사실로서 여겨지지요. 그리고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정서 때문입니다.
하지만 밀을 포함한 당시의 많은 영국인들은 이에 정서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습니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지배자의 권력을 제한하는 법적 장치를 체계화시킨 나라이면서도, 지배자의 권력을 하나의 독립적인 실체로서 여전히 인정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모순 같지만, 이 역시 ‘정서’라는 맥락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성적으로는 의회가 왕권을 엄격하게 감시하고 제한하고자 했지만, 왕권 자체에 대한 심리적인 거부감은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게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일찍부터 왕권과 시민권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 오랜 기간에 걸쳐 체계화됨으로써 그것이 시민의 의식과 문화로 완전히 자리 잡게 되면, 아마도 왕을 무조건적인 지배자라기보다는 자신들의 권리의 상대자, 즉 사회계약의 당사자로 여기게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자신들, 즉 시민들의 권리가 왕권으로부터 독립된 영역의 것인 것처럼, 왕권 역시 시민권으로부터 독립된 영역의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세 번째 과정을 설명하는 데, 밀은 상당한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아마도 이게 밀이 활동했던 당시의 유럽의 상황이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밀은 우선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 세 번째 양상은 ‘유럽의 자유주의의 마지막 세대의 양상들 중 일반적인 것’이며, ‘특히 영국이 아닌, 대륙 쪽에서는 이미 헤게모니를 잡은 자유주의적 입장’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고 설명합니다. ‘국가의 고위 관리들은 시민의 대표로 선출된 자 혹은 시민의 종복으로 여겨지며,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존재로 인식된다’고 말입니다.
이 믿음이 도그마가 되고 극단으로 치닫게 된 실제의 사례가 있지요. 바로 프랑스혁명 이후 이어진 ‘공포정치’입니다. 이때는 왕이고 귀족이고, 부르주아이고 간에 자기편이 아니면 다 기요틴, 즉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지요. 프랑스혁명의 지도자로 볼 수 있는 로베스 피에르 본인도 결국엔 이 기요틴의 칼날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밀은 바로 이 세 번째 양상에서 자유주의의 한계 역시 발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설명을 위해 구체적인 사실들을 설득을 위한 사례로 들고 있지요.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밀은 그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정치 문필가 에드먼드 버크 등과 같이 프랑스혁명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보면, 밀은 프랑스혁명을 두고 ‘일탈’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에 대해 우려를 보이고 있는 점은, 이 사건이 불러오고 있고,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불러올 부정적인 파장과 동요를 사람들이 제대로 보려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밀의 이 입장은 분명 쟁점적인 것입니다. 즉,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고, 크게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이 글은 리뷰일 뿐이니, 이런 논의는 지양할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각자의 의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걸 이 『자유론』을 읽으며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 리뷰의 목적은 이에 작은 도움을 드리는 것입니다.
아무튼 밀은 다음과 같이 설명을 이어나갑니다. ‘자치’, ‘국민 자신을 지배하는 국민 자신의 권력’ 등의 문구들이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요. 이 말인 즉, ‘사과’라고 말을 하면서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사과가 아닌 배라는 것이지요. 밀이 이 세 번째 입장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이 속에서 자유주의의 한계를 발견하고 있는 이유 역시 바로 이 점에 있습니다. 즉, 사람들이 ‘자유’라고 외치고, 그 ‘자유’라는 것에 정서적으로 매우 매몰되어 있기는 한데, 막상 그 ‘자유’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고, 그 결과 올바르게 누리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바로 이 지나친 ‘정서’에 의한 매몰에서 찾고 있는 듯합니다.
이를 설득적으로 주장하기 위해, 밀은 당시 저명한 사상가인 토크빌Tocqueville의 유명한 말, 즉 ‘다수파의 폭정’이라는 말을 직접 인용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과거의 다른 폭정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결국은 공권력의 행사에 의한 폭정과 같은 맥락에 있다고 말입니다. 즉,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첫 번째 양상에서 설명한 과거의 정치적 지배자들의 행한 방식의 경우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단, 차이는 바로 그 두려움을 일으키는 수단입니다. 과거에는 말 그대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자르고 하는 즉물적인 폭력이었다면, 이제는 이와 같은 극단적인 형벌이 아닌, 바로 ‘지배적인 여론’이라는 것이지요.
3) 개인의 자유의 필요성
여기까지가 도입부의 핵심입니다. 즉 밀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정치적 혹은 사회적 자유’의 의미는 바로 ‘개인의 자유’로 축약됩니다. 밀은 말합니다. 위에서 설명한 유럽의 자유주의의 세 번째 양상이라는 현실을 고려해 볼 때, 단순한 공권력의 폭정을 막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자유주의의 이상이 획득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이제 더 중요한 한 가지는 바로 지배적인 여론이나 정서에 의한 폭정 역시 막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즉,
‘사회가 공적인 처벌 이외에 다른 수단들을 이용해서 다른 생각을 가진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념들과 실천들을 그들의 행위 규범으로 받아들이게 강요함으로써, 자신들의 방식과 부합하지 않는 개성(individuality)을 말살시키고자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는 점을 강조하고 설득하는 게 이 『자유론』의 내용이자 목적인 것입니다.
이번 시간은 이 정도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부연하자면, 이런 글은 무엇보다 도입부를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앞으로 항해해 나가야 할 목적지를 나타내는 표지이자, 그 목적지까지의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는 일종의 나침반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책을 읽어봤지만, 어렵게 느껴지신 분들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이 리뷰를 이용해서 도입부를 다시 한번 면밀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분명 도움은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다음 시간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