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첫 번째 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2장에 대한 리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주에 미리 말씀드렸던 대로 이번 장은 2회로 나눠서 올려드리겠습니다.
밀이 제시하고 있는 2장의 표제어는 ‘사상과 토론의 자유’입니다. 여기서 ‘사상의 자유’는 지난 1장에서 밀이 제시한 자유liberty의 세 가지 영역들 중 첫 번째 영역에 해당되는 것이었지요. 이 세 영역 모두 매우 중요하지만, 2장에서 밀이 특히 방점을 두고 다루고 있는 것은 바로 첫 번째 영역에 속하는 자유입니다. 그리고 이 자유를 인류의 진보에 맞춰 항구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부수적인 자유가 바로 ‘토론의 자유’라고 밀은 강조하고 있지요.
그가 이를 얼마나 중요한 문제로 여겼는지는 2장에서 이 논제와 관련해서 그가 할애하는 분량을 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2장을 읽다 보면, 오늘날의 민주적 정체를 가진 사회에서는 ‘사상과 토론의 자유’가 상식처럼 여겨지지만, 실은 겉으로만 그러할 뿐, 그 이면을 보면 여전히 그 목적과 괴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밀이 『자유론』을 쓴 이유도, 그리고 이 책이 여전히 유의미한 까닭도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이겠지요.
그럼, 바로 시작해보도록 할까요?
제2장 사상과 토론의 자유
이번 장을 시작하면서 밀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침묵하게 만드는 것은 해악이다.’ 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다음의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경우 모두에서 이에 대한 근거를 제시합니다. 그것도 매우 면밀하게 말이지요.
a. (개인의) 그 의견이 옳은 것일 경우: 인류는 오류를 진리로 대체할 중요한 기회를 빼앗기게 됨.
b. (개인의) 그 의견이 틀린 것일 경우: 인류는 오류와의 충돌을 통해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유익한 기회를 놓쳐버리게 됨.
⇨ 밀은(그리고 그의 글을 읽고 있는 우리는) 지금 공리주의의 관점에서 리버티를 살펴보고 있으므로, 이 역시 공리주의적인 관점에서 풀어볼까요? 일단 결론부터 말해서, a와 b의 경우, 개인의 의견을 침묵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적으로 아무런 효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효용이 마이너스, 즉 ‘해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는 위에 이미 밀이 간단명료하게 잘 설명해주고 있지요. 그럼에도 여러분들을 위해 제가 좀 더 부연을 달자면, a.의 경우는 지난주에 예를 들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일화를 떠올려보시면 될 겁니다. 이 경우가 바로 정치적 권력자(당시에는 ‘로마 가톨릭 교회’) 갈릴레오라는 개인의 입을 막아버린 대표적인 사례이지요. 당시까지 헤게모니를 잡고 있었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론, 즉 ‘천동설’은 그 당시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와 잘 부합했기에, ‘진리’로 ‘합의 혹은 승인’이 된 반면, 갈릴레오의 ‘지동설’은 그 이데올로기의 권위를 의심하게 만들 수도 있는 어떤 가능성의 기미(幾微)가 보인다는 이유로, ‘이단’이라는 최악의 프레임이 씌워졌지요.
오늘날의 상식에서 보면, 이는 무식하기 짝이 없는 권위주의의 횡포로 보이겠지만, 이게 가능한 것은, 진리를 판별하는 기준으로서의 헤게모니가 종교에서 과학으로 전이된 세상에서 우리가 태어나서 살고 있기 때문이지, 결코 우리가 진리를 온전히 제대로 알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저런 어이없는 횡포와 개인의 리버티에 대한 억압은 오늘날의 세계에서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으니까요. 21세기 현재에도 여전히 전체주의적인 국가들은 있고, 또 그들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또한 전체주의적인 국가가 아니더라도, ‘선호’라는 도그마적 정서에 크게 좌지우지되는 여론이 지배하는 대다수의 사회 역시 이런 면에서 자유롭다고 보기는 힘들지요. 왜냐하면 밀의 말대로 이는 인간의 타고난 경향성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으니까요. 즉, 본능적으로 집단들 이루려고 하고, ‘다름’을 싫어하며, 이를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 말입니다.
아무튼, 저 당시 갈릴레오의 입이 완전히 틀어 막혀서 그가 연구한 결과물들이 동시대와 후대의 과학자들에게 공유되고, 전달되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진보는 훨씬 더디게 이루어졌을 겁니다. 어쩌면, 이제 와서야 하늘에 인공위성을 쏘기 시작하고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실제로 역사의 발전이 이렇게 이루어졌다면, 분명히 이는 효용이 매우 적거나, 해악일 수도 있는 것일 겁니다.
<종교재판정에 선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모습>
그러면 이제 b의 경우를 볼까요? 저는 이 b의 경우에 대한 밀의 의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능력에는 편차도 크고, 또한 한계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인간은 진리를 깨달을 가능성보다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이 오류를 끊임없이 고쳐나가는 것이지요.
또한 공리주의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인류의 지식은 경험론적인 것입니다. 즉, 불완전함을 그 디폴트값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불완전하다고 해서 완전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처음부터 완전하다고 믿어버리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이 오류에 대한 인식과 인정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은 어떤 의견이든 그것이 자유롭게 표명되는 것을 막지 않는 것, 그것 아닐까요?
대중적으로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사회철학 저서로 더 유명한 과학철학자 칼 포퍼가 제시한 유명한 과학철학 이론은 바로 ‘반증가능성 원리’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저 책은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포퍼가 제시한 이 과학적 방법론은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다루고 있는 밀의 의견에 대한 적절한 근거가 될 것 같아요. 이 이론의 아이디어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가설이 과학적 진술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 가설이 반증(反證) 가능한지 여부이다. 즉 어떤 가설이 반증 가능하다면 그 가설은 과학적 진술로 볼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이 글은 지금 밀의 『자유론』에 관한 것이니 이 ‘반증주의falsificationism’에 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반증주의’는 과거의 유행이었던 이론이지요.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론을 반증(反證)하는 사례들을 통해, 사실상 폐기된 이론이기도 하지만, 이는 다 차치하고 지금의 리뷰와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점인 것 같아요. 즉, ‘오류 가능성’에서 ‘진리에의 가능성’을 찾는 것, 바로 이 점 말입니다. 즉, ‘오류와의 충돌은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유익한 기회’라는 밀의 의견을 과학적으로 패러프레이징(paraphrasing)한 경우, 즉 과학적인 맥락으로 바꾸어 표현한 경우라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볼까요?
아인슈타인은 이미 물리학계의 거두가 된 뒤에도 엉뚱한 질문을 잘 던지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아무리 유치해보이고 심지어는 이상해 보이는 질문일지라도 그것을 던지고 또 듣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하지요. 한 학회에서 청년시절의 리처드 파인만이 엉뚱한 질문을 던지자, 디렉이었나? 파울리었나? 아무튼 어떤 천재 한 명이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는 식으로 비꼬자, 이제 물리학계의 가장 큰 어른이 된 노년의 아인슈타인이 그 천재를 향해서 “Oh~ No~!” 라면서 고개를 가로졌다고 하는 일화도 있지요. 이를 두고 파인만은 자신이 평생 들어본 “No” 중 최고의 ‘No’였다고 한 유명한 말도 있습니다.
<리처드 파인만>
하지만 보통은 아인슈타인과는 다르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류를 두려워합니다. 그렇다면 왜 두려워할까요? 바로 ‘남들과 다르게 말하면 비난받을까 봐, 혹은 자신이 바보처럼 보일까 봐 그래서 조금이라도 체면에 손상을 입을까 봐’ 그런 것이지요. 즉,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될까 봐 두려운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
인간들의 이런 태도 역시 ‘선호’의 정서에 대한 밀의 통찰로 풀어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는 일단 차치하고, 아인슈타인이 던지는 엉뚱한 질문들, 그의 과학적 상상들이 자유롭게 표현되지 못하게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면, 인류는 여전히 달에 가보지 못했을 겁니다. 또한 NASA도 없었을 것이며, 양자역학도 없었을 거예요. 그러면 반도체도 없고, 컴퓨터, 스마트폰도 없고, AI도 없고.......... 즉, 인류가 진보하는 속도는 지금보다 한참 뒤처져 있을 겁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로마 시대가 끝나고 중세 천 년이 이어지는 동안, 유럽의 문명은 선진 문명에서 후진 문명으로 후퇴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자명합니다. 바로 ‘진리’라고 합의된 ‘정답’이 이미 정해져 있었고, 이와 다른 소리를 낸 경우 감내해야 할 사회적 억압이 너무도 강력했기 때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