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chapter 5-7 요약 설명 part 2
1. 『정의란 무엇인가』 chapter 5-7 요약 설명 part 2
1) 임마누엘 칸트와 존 롤스
이번 회 차는 지난 회 차에 예고해 드렸던 대로 ‘자유주의’ 중 존 롤스의 정의론에 관한 설명입니다. 존 롤스는 현대에 활동한 철학자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서 그의 저작 『정의론』은 이미 거의 고전 급의 대우를 받고 있다고 여겨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만큼 이 책은 단지 윤리학의 범주에만 머물지 않고, 통섭적으로 가능한 주변의 모든 학문들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그는 영미권 철학자입니다. 이 말인 즉, 그 논리가 매우 형식적이라는 말입니다. 흔히 ‘윤리학’이라고 하면, ‘공자 왈, 맹자 왈’ 정도의 잠언이나 교언 등을 어떤 스승 격의 인물이 던지고,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준칙으로 삼아 이를 실천하는 학문 정도로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것 역시 윤리학적 실천의 방식 중 하나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철학적 맥락에서의 윤리학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좀 더 정밀하고 형식적이지요. 이런 경향이 특히 강한 곳이 영미권입니다. 그래서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논리학적 소양을 어느 정도는 갖춰야 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대학의 철학과 학부 과정의 전공 필수 과목 중에는 논리학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윤리학을 두고 흔히 ‘메타-윤리학’이라고 부릅니다.
‘윤리학’이라고 하면, 그냥 ‘착하게 살라는 것 아니야?’ 하고 쉽게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메타-윤리학’은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존 롤스의 『정의론』 역시 쉽지 않은 책입니다. 어려울 뿐만 아니라, 칸트의 비판서들만큼이나 분량도 방대한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샌델은, 존 롤스에 관한 내용을 매우 간략하고 다이제스티브 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서인 만큼 웬만하면 다루지 않고 싶었겠지만, 그럼에도 안 다룰 수는 없기에 최대한 쉽고 간략하게 설명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렇기에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는 롤스가 『정의론』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 예를 들어 ‘차등의 원리 the difference principle’이라든가, ‘최소극대 정책 minimax policy’이라든가 하는 특수 용어들의 사용은 거의 배제하고, 이 용어들이 뜻하는 내용을 이 책의 소주제들과 관련해서 풀어 설명하는 식으로 내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역시 최대한 샌델의 방침을 그대로 따라서 요약·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글이 리뷰를 하는 대상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이지, 『정의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궁금해하실 일부 분들을 위해, 샌델이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 『정의론』에서 말하고 있는 무엇에 해당하는지 정도는 언급해 드리겠습니다. 이를 참조하셔서 좀 더 심도 있게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은 한 번 『정의론』을 찾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존 롤스
(2) 존 롤스
⓵ 무지의 장막 the veil of ignorance
먼저 샌델은 딱히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으나, 롤스의 정의론을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이라고 여겨지는 예비적인 사항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롤스의 정의론은 구체적으로 말해서 ‘분배의 정의’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롤스가 말하는 정의란, 그 필수 배경적 조건으로서 ‘사회적 협동’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정의론』에서 롤스가 직접 밝힌, 그가 가진 직관적인 아이디어는 ‘모든 사람들의 복지가 의존하는 것은 협동의 체제이고, 이 협동의 체제 없이는 그 누구도 만족할 만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회적 협동’이 필수적인 것이라면, 이로부터 당연히 따라 나오는 정의의 문제는 분배에 관한 내용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정의에 부합하는 사회적 협동과 자원의 분배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이를 위해 롤스는 하나의 가정적인 상황을 제시합니다. 『정의론』에서 그는 그것을 ‘원초적 상황 the original situation’이라는 이름을 부르며,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서 “무지의 장막”이라는 가정적 조건을 제시합니다. 이와 관련한 샌델의 설명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롤스가 생각한 사회 계약의 개념은 원초적으로 평등한 위치에서 이루어지는 가상의 합의이다. 그런데 이러한 원초적 상황을 위해서 필요한 조건이 곧 계약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포함한 계약 당사자들 모두가 어떤 계층, 인종, 성별, 민족, 정치적 성향, 종교적 신념 등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몰라야 한다는 것이다.’
즉, 모두가 똑같이 무엇이 유리하고, 불리한 것인지, 또한 자신이 이 양자 중에서 어느 쪽에 서 있거나, 더 가까운지 전혀 모르는 것만큼 평등한 상황은 없고, 이 상황 내에서 합의된 계약의 내용만이 그것의 공정성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롤스에 의해 이 가상적 합의 상황이 제시된 이유입니다.
⓶ 계약의 도덕적 한계
그렇다면 롤스는 왜 ‘무지의 장막’과 같은 가상적 합의의 상황만이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한 계약을 위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일까요? 이와 관련해서 샌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A. 자율과 호혜의 원칙
이 두 가지는 (무지의 장막이라는 가상적 상황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계약의 도덕적 실현을 위해 필요하다고 여겨져 온 최소한의 이상적 조건들입니다.
B. 현실 상황
하지만 A의 두 가지 조건들은 대개 현실 속에서 불완전하게 실현됩니다.
먼저 첫 번째 예를 들자면,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들고 있는, 과도한 수리비를 청구해서 사기죄로 기소된 실제 배란공의 사례처럼, 분명히 수리 청구인과 배관공 사이에서 수리 시작 전에 합의된 거래 계약의 내용이 있고, 이 합의는 양자 모두 자발적으로, 즉 자율적으로 맺음 것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간에 혜택이 충분히, 혹은 공정하게 돌아가지 않은 경우, 즉 호혜가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역시나 샌델이 끌어와 들고 있는 실제의 사례, 즉 1980-90년대 뉴욕의 ‘고무롤러 맨’의 경우가 있습니다. 당시 뉴욕 거리에는 신호 대기 중인 차에 다가와서 아무런 사전 합의 없이 마음대로 차 앞 유리를 닦은 후, 비용을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경우는 애초에 차주와 고무롤러 맨 사이의 자발적인 합의가 없었으므로 전혀 자율적이지 않지만, 호혜의 원칙에 따라, 아무튼 차주는 자신의 차 앞 유리가 깨끗해졌다는 혜택을 (억지로라도) 받았으므로, 그 역시 이 혜택을 준 고무롤러 맨에게 일정액의 돈을 줌으로써 혜택을 나눠줘야 했습니다.
이처럼 무지의 장막이 가정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정의의 원리, ‘자율과 호혜’에는 여러 맹점들이 있습니다. 이는 엄격히 말해서 정의의 모습을 한 부정의 이지요. 그리고 롤스는 아마도 이런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이론적 시도로서 ‘무지의 베일’과 같은 가상적 상황을 제시한 것일 겁니다.
⓷ ‘무지의 장막’ 하에서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이 문제와 관련해서 샌델이 정리한 롤즈의 생각을 요약해 드리기 전에, 우선 롤스의 『정의론』에서 다루고 있는 해당 내용을 그대로 옮겨 드리겠습니다. 아래에 기재되어 있는 볼드체 인용문을 참고해 주세요(넘버링은 해당 내용들을 풀어 설명해 드릴 목적으로 제가 임의적으로 단 것입니다.).
원초적 입장에서 사람들은 무엇에 합의를 할 것인가?
❶ 원초적 상황에서 사람들은 다음의 두 원리들을 선택할 것이다.
첫째, 기본적 권리와 의무들의 배당에 있어 ‘평등’을 요청할 것이다.
둘째, 사회 경제적 불평등성, 예를 들면, 부와 권능에서의 ‘불평등성’은 오직 이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특히 사회에서 가장 불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결과적으로 보상적 이익을 줄 수 있을 때, 오직 그 경우에만 정당하다.
❷ 이 원리들은, 일부 사람들이 겪는 고난이 사회 전체로 보았을 때는 보다 큰 이익에 의해 상쇄된다는 근거에서 제도들을 정당화하는 행위를 배제한다. 이런 정당화는 편리할지는 모르나, 다른 사람들이 번성하기 위해 일부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은 불의(不義)하다.
❸ 소수가 보다 큰 이익을 얻어, 이에 의해 그다지 다행한 처지에 있지 않은 사람들의 처지가 향상된다면, 그 소수의 보다 큰 이익은 불의(不義)하다고 말할 수 없다.
➪ ❶ 과 ❸은 롤스가 제시한 그 유명한 원리, “차등의 원리”의 내용입니다. 롤즈는 무지의 장막 하에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협박이나 폭력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언제나 서로 공평한 분배를 선택할 것이지만, 이것에 의해 각 개인에게 할당되는 자원의 양이 반드시 만족스러울 것이라고는 보장할 수 없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일종의 필요악으로서 ‘불평등’이 요구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비록 각자에게 배분되는 자원의 몫의 양에 차이는 있을지라도, 가장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 있는 집단들에게조차도 가장 완전히 평등하게 배분될 때보다는 훨씬 많은 양의 몫이 할당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매우 사실적인 근거가 있는 주장입니다. 공산주의 혁명이 1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결국에는 실패로 귀결된 이유도 바로 이런 점 때문이라는 걸 상기하시면 될 겁니다.
➪ ❷는 말 그대로 공리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롤즈는, 차등의 원리를 근거로, 원초적 상황에서의 사람들은 결코 공리주의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서 먼저 유념을 해야 할 것은, 공리주의가 일종의 ‘양날의 칼’과 같은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것은 분명 자본주의가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는 사회 전체 복지 증대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매우 전체주의적인 성격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사회주의적인 폐해,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자본을 가지고 있는 소수의 집단이 희생함으로써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집단의 복지가 증대되면, 결과적으로 양적으로 보았을 때는 사회 전체의 복지가 증대된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도덕적이고, 정의롭다고 볼 수 있을까요? 롤스는 분명 그렇지 않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래에 정리된 내용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샌델이 롤스의 생각을 이 책에서 다루는 소주제들에 따라 자기 나름대로 해석·설명하고 있는 내용에 대한 요약입니다.
첫째, 공리주의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개인으로서 자신의 기본권을 존중받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적인 복지의 증대를 위해 개인의 기본권을 희생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에 따라, ‘차등의 원리’ 즉, 사회에서 가장 약자에 속하는 집단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경우, 바로 그 경우에만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인정될 수 있다.
둘째, 자유지상주의를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 하지만 롤스는 일단 정의의 방점을 자유에 두고 있고, 불평등 역시 결과적으로 더 나은 분배를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샌델에 따르면 다음과 같습니다.
‘공정한 능력주의’가 요구될 것이다. 제도적으로 기회의 균등과 자유시장을 보장하는 자유지상주의 이 방식은 분배의 정의 실현에 있어 실제적인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그 이상의 조치들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 대상 교육 지원 프로그램과 같이 가난한 학생도 부유한 학생과 똑같은 기반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등이 있을 수 있다.
➪ 이는 일종의 한계생산이론에 근거해서 제안된 해결 방안입니다. 즉, 앞에서 예비적 사항들로서 언급해 드렸듯이, 롤스는 정의론은 그 전제로서 ‘사회적 협동’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반면, 노직과 같은 자유지상주의자들은 그렇지 않지요. 그들은 분배의 정의를 위해 반드시 협동이 필요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이는 정의를 위해 정의를 작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시장이 온전하다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람들의 개입 없이도 합리적인 분배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계생산이론은 자유 시장 메커니즘에 사회적 협동을 적용시킨 이론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장이 잘 돌아가서 분배되는 자원의 양이 늘어남과 동시에, 그 분배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야 할 것입니다. ‘한계생산’이라는 말 자체가 ‘생산 요소가 한 단위 증가할 때마다 더 늘어나는 생산량’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면, 사회 전체의 소득도 늘어나고, 개인들에게 할당되는 자원의 양도 많아질 것이라는 게 이 이론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위에서 샌델이 예로 들고 있는 것과 같은 ‘저소득층 교육 지원 프로그램’은 효율적이고 능력 있는 생산 요소를 늘리고자 하는 시도로도 볼 수 있을 겁니다. 또한 결과적으로 좀 더 공정한 배분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시도로도 설명될 수 있겠지요.
셋째. 능력주의도 선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능력주의 역시 임의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타고난 지능, 신체적 능력, 외모 등등 노력만으로는 상쇄되지 않는 선천적인 차이가 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대책으로서 정의의 원칙에 대한 ‘사회적 협동’의 조건을 정하고 이를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⓸ 롤스의 결론: 도덕적 자격은 분배의 정의의 기초가 될 수 없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분배의 정의는 미덕이나 도덕적 포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게임의 규칙이 정해지고 난 후, 합법적인 기대를 충족시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일단 정의의 원칙이 사회적 협동의 조건을 정하면, 사람들에게는 그 규칙에 따라 벌어들인 이익을 가질 권리가 생긴다. 하지만 조세 제도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한다며 그 소득의 일부를 내놓으라고 요구한다면, 자신이 도덕적으로 마땅히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을 빼앗긴다고 불평할 수 없다.
“서로 운명을 공유하며,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각자에게 우연히 주어진 선천적 여건을 공동체를 위해 이용하자.”
이번 회 차는 여기까지입니다. 롤스의 결론에 대해 얼마나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지 궁금합니다. 이런 주장은 늘 언제나 매우 쟁점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늘 분배의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운 것이겠지요.
『정의란 무엇인가』 리뷰 시리즈는 다음 회 차를 마지막으로 마무리가 될 것 같습니다. 다음 회 차에서 다룰 내용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가 방점을 두는 정의의 모습은 바로 ‘미덕’이지요. 이는 샌델 자신이 주장하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럼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일주일 뒤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