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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은 May 14. 2022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


 전시 마지막 날이라길래 부랴부랴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달려갔다. 나의 첫 전시는 살바도르 달리전이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짜증났을 뿐더러 그림을 보고 느끼는 바가 없었다. 워낙 미술에 조예가 없어 집에서 노트북으로 보는 거랑 뭐가 다르냐는 생각만 했다. 미술은 나에게 어렵다. 많은 종류의 예술을 즐기지만 늘 미술은 예외였다. 아무리 봐도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작가,  작품의 배경에 대해 공부를 해도 그냥 음 그렇군. 하고 지나가는...

 그래서 디자인을 하는 친구에게 전시에서 어떤 것을 보냐고 물어봤다. 그림의 질감을 보는 사람도 있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보는 사람도 있고. 작품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고 했다. 이 친구의 추천으로 아이 웨이웨이 전시를 보러 갔다. 

새롭게 전시를 보자는 마음으로 갔는데 일단 너무 짜증이 났다. 인스타에 올릴 사진 찍으려고 오는 건지 전시를 보러 오는 건지 다들 사진만 찰칵찰칵 찍었다. 내가 비키면 사진을 찍을 듯한 태세던데 난 비킬 생각이 없었다. 전시봐야 하는데...쓱 보고 지나칠거라 생각했던 듯하다. 

 가만히 그림 앞에 서서 생각했다. 어떤 이야기를 담은 건지는 오디오 도슨트를 통해 간략하게 알 수 있었다. 도슨트 외에도 이 작품엔 어떤 의도가 담겼을까. 그 의도를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려 한 걸까. 그러다보니 시간이 훅 갔다. 

 도슨트가 없어서 당황스러운 작품이 있었다. 레고로 표현된 동물 작품이었다. 빠르게 검색을 하려 했는데 옆 사람이 말하는 걸 엿들었다(...) 십이지신을 표현한 작품이라는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 웨이웨이는 전통과 현대의 파격적 결합, 전통의 파괴를 표현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전통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이제껏 쌓아 온 발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옛 도자기를 깨뜨리는 행위를 레고로 표현하지만, 동시에 전통 도자기에 난민의 모습을 묘사하기도 한다. 소셜 미디어, 씨씨티비를 묘사한 작품은 척 보기에는 화려한 샹들리에처럼 보이지만 언제든 개인의 행위가 감시되는 사회를 표현한다. 화려함의 이면에는 억압의 구조가 존재한다. 판옵티콘과 1984의 빅 브라더가 연상되었다. 결국 디스토피아란 현존하는 억압이 강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니.

 인간을 옥죄는 것은 추악한 과거와 현재이다. 중국처럼 국가의 억압이 극심한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든 건지 그 배경이 궁금해졌다. 그의 작품은 중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 각지의 난민이 직면하는 현실을 그리며 탈국가적 시선을 보인다. 피억압자의 상황은 국가, 민족적 시선에 입각한 채 바라볼 수 없는 것이다. 

 뒤에 선약이 있어 모든 전시를 다 세세히 보진 못해 아쉬웠다. 아무튼 이 전시를 시작으로 전시를 열심히 보러 다니려고 한다. 다양한 예술을 접하며 식견을 넓히고 싶고, 무엇보다도 디자인 공부를 시작하는 입장에서 미술작품 감상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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