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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은 Mar 24. 2024

돌멩이

애정과 선망 사이 

1. 긴 인생을 기준으로 본다면 어린 나이. 그렇지만 적지 않은 나이. 젊지만 마냥 어리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 


2. 한창 브런치에 열을 올렸던 대학생 적엔 자신감과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뭐든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리니까,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니까. 지금은 다르다. 나름 좋아했던 것들을 경험해본 뒤 현실을 파악했고 현실에 순응했다. 

스스로를 호불호가 확실한 사람이라 생각해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늘 중심 없이 휩쓸리며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얇은 뿌리조차 내리지 못하고 늘 흔들렸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처럼 이리 갔다가 저리갔다가를 반복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 세월을 허송세월이라곤 하진 않겠다. 이를 통해 더 이상 환상조차 품지 않게 되었으니. 


인생의 대부분을 좋아하지 않는 것에 할애하며 살아야만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게 내 삶에 대한 불만은 커져만 간다. 여기서 추태가 시작된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 더 추한 것은 남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 

내 삶에 대한 불만족이 커지자 타인의 삶이 부러워진다. 여기서 문제. 내가 그 사람의 무엇을 안다고 부러워하는거지? 겉으로 보여지는 것 좀 훑어보고서는 이 사람의 삶이 불행하니 행복하니 판단하는 것 자체가 무례하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이 속담이 내가 말하는 상황에 그다지 적합하진 않지만, 대충 끼워맞추자. 이기적이고 나약한 사람이라 내 존재가 너무 가혹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지금이 딱 그때라서. 뭐든지 생각할수록 스스로를 더 몰아붙이고 있어서, 이건 그냥 머릿속에서 나오는 대로 휘갈기는 글이다. 어떠한 논리도 없다. 


3. 내가 좋아했던 것은? 책과 영화.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건지, 선망하는 건지 헷갈린다. 단순히 멋있어보여서 선망한 것을 애정으로 착각한 게 아닐까? 그토록 좋아했다면 지금 이럴 수가 있나? 허영심으로 가득 찬 선망이었으니까 쉽게 포기해버린거지. 시간도 기력도 넘칠 때 좋아하는 거랑 시간도 기력도 없지만 없는 것도 쥐어짜내 좋아하는 건 천지차이니까. 난 후자가 불가능하더라. 체력문제도 크긴 하다. 퇴근하면 넉다운이었고 주말에도 거의 잠만 잤으니. 근데 체력 문제가 해결된다 쳐도 여전히 난 애정과 선망을 혼동하며 정처없이 떠돌 것 같단 말이다. 알량한 마음은 금방 동이 나기 마련이다. 


4. 대학생 때는 무슨 기운이 그리 넘쳐났는지. 책도 만들어보고 영화현장에도 가보고 사람 만나러 이리저리 싸돌아다니고, 좋아하는 것+새로운 것 찾아 분주했다. 사람에 사건에 상처받아도 실패해도 반복 반복 또다시 반복.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너무너무지쳤어요 마음 속으로 백번 천번 외치며 이젠 넉다운. 가치 없는 경험은 없다며 모든 경험은 다 의미가 있다며 늘 오뚜기처럼 일어나 새로운 일을 벌이곤 했는데 이젠 희망도 기력도 없다. 스스로의 한계를 알아버린 탓이다.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토록 외면하던 초라한 자신을 마주한 뒤 느끼는 비참함. 다 내가 나약한 탓이지. 뿌리를 깊게 내린 거목이고 싶은데 현실은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자그마한 돌멩이니까.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현실을 제대로 사는 것도 아니다. 이것도 아니오, 저것도 아니오, 이게 돌멩이의 삶이다. 빨리 정신차려야 하는데. 낸들 스스로가 한심하지 않을리가. 


5. 또다시 자우림의 샤이닝을 되뇐다. 

풀리지 않는 의문들 정답이 없는 질문들 나를 채워줄 그 무엇이 있을까 

자우림 콘서트에서 샤이닝을 들으면 펑펑 운다. 진짜 첫 소절 듣자마자 눈물이 줄줄 흐른다. 작년 자우림 연말 콘서트에서도 샤이닝하고 피터의 노래를 들으며 서럽게 울었다. 샤이닝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어 그런 건지. 하늘은 아름답고 나는 바보처럼 눈물을 흘리며 서 있다. 끊임없이 가슴 속의 폭풍에 휩쓸리며 나를 받아줄 곳을 찾아다닌다. 영원히 이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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