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집 너의 집

집은…

by 해그해그


세 아들과 복작이며 저녁을 먹고, 아이들의 통통하고 귀여운 볼을 만지며 오늘의 작은 행복을 만끽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휩쓸고 간 거실의 어지러운 풍경을 치우다 보면, 문득 시선 끝에 나의 어린 시절 좁았던 단칸방이 겹쳐지곤 한다


조금은 어두컴컴한 형광등 아래 숨을 내쉬면 하얀 입김이 천장으로 올라갔다

방안에서는 두 사람분의 이불을 전기장판 위에 깔았다

양말은 두 겹 두꺼운 패딩 잠바와 목도리를 두르고 장갑을 끼었다 둔한 움직임으로 이불을 덮으며 누웠다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은 코털과 인중 쪽에 물방울이 맺히게 하였다 손등으로 코끝을 닦아보며 잠을 청해 보려 했다

양말과 장갑을 신고 끼었지만 발끝과 손끝에 전해지는 차가움은 등줄기까지 냉하게 만들었다 등줄기의 추위는 온몸을 덜덜 떨게 하였다

동생과 나는 서로를 꼭 껴안고 전기장판의 온기를 느꼈다 전기장판을 세게 틀어도 방안의 차가움은 없앨 수가 없었다 얼굴 끝까지 이불을 올려 덮으면 그나마 코끝과 볼은 따뜻했다


아이가 배속에 있듯 옆으로 누워 새우잠을 청해보았지만 잠은 오지 않았고 티브이가 있었을 서랍장 받침대 다리 쪽에 동그란 틈 사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다 눈이 조금씩 감기기 시작했다

동생은 잠이 들었는지 뒤척임도 없었다

그때였다

검고 조그마한 코가 쓱 하고 내비치더니 엄지손가락만 한 쥐 한 마리가 숨도 안 쉬듯 조용히 나왔다 회색의 어두운 색을 한 쥐는 잠시 뒤를 보며 손짓을 하는 듯 보였다 멈추어 냄새도 맡는 듯 코를 찡긋거리며 숨을 빠르게 쉬고 있었다 그 몇 초 사이에 나는 심장이 크게 쿵쾅거렸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고 잡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첫 번째 쥐가 나오고 난 뒤 새끼손가락만 한 쥐들 네 마리가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줄지어 걸어갔다 어찌 저리 천천히 가는지 …

'너희들도 살기 힘든 집이었구나 이사 가니?'

새끼들과 살기 위한 이사 행렬인듯했다 소리도 없이 사람들 모르게 지나가려면 심장이 얼마나 뛰었을까? 새끼들한테 교육하고 소리 내면 안 된다 알리고 갔었을 텐데 엄마 쥐의 교육은 박수 칠만 했다 살아남기 위해 이사를 가야 했고 사람들이 있어도 가야 했던 이유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엄마 쥐의 결단력과 철저한 교육은 높이 평가한다

손으로 칠 수도 있었고 책으로 내려찍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던 나는 쥐의 행렬을 귀엽다는 듯 바라봤다 마지막 새끼 쥐의 조그마한 꼬리가 안 보일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숨죽여 바라봤다 새끼 쥐의 꼬리가 사라질 때쯤 엄마 쥐였는지 모르지만 찍하며 한 번의 소리가 들리고 굉장히 빠르게 뛰어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고요해졌다 그 뒤에 나는 조금은 따뜻해진 옆구리에 장갑 낀 손을 집어넣고 잠이 들었다

움직이면 이불속에 들어오는 냉기가 싫어서 보내준 사실은 나만의 비밀로 한 체…

쥐들의 이사는 우리 집 방바닥 밑에 구렁이 한 마리가 들어와 알을 낳았던 것이다 그들과 같이 지냈었던 것을 나중에 알았다는 것에 심장을 슬어 내리며 안도했다

경험한 것에 고마움이 남을 때가 있다

지금의 나에게 저런 일이 또 일어날 수 있을까? 하며

피식 웃어 버린다

과거는 추억이 되니 참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나의 집 너의 집


​무너져 내리던 지붕 아래

여름엔 비가 새고 겨울엔 눈이 쌓였다.

그 눈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틈 하나 내어준 적 없건만, 지붕은 넘쳐흐르는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조금씩 틈을 내주었다.

그 틈으로 조용히 스며들어 능글맞게 자리 잡은 더부살이 손님,

능구렁이 어미 한 마리.

여름 비와 겨울 눈이 들이쳐 사람은 살기 힘들었어도, 너에게는 꽤 아늑한 처소였으리라.

겹겹이 양말을 신고 패딩 점퍼를 입어도 입김이 가득한 집.

그 모진 추위를 함께 견뎌주어 고맙다 해야 할까,

도둑살이한 네게 괘씸죄를 물어야 할까.

알을 낳느라 애썼을 네 처지를 생각하며 그저 한숨 섞인 웃음으로 너를 넘겨 보낸다.

들리는 소문에 새끼들은 팔려 가고 너는 술로 담겼단다.

겨울엔 발가락 동상을, 여름엔 일사병을 걱정해야 했던 집. 쥐 가족들조차 이사가 잦았던 그곳을 회상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쓰린 이유는, 고이 모셔둔 종이 꾸러미들 때문이다.

수십 년의 세월과 감정이 담긴 글귀들.

비에 젖어 번져버린 그 글자들이 못내 서럽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써 내려간 그 글들을 똑같이 소중히 그 자리에 두었겠지.

비록 비바람에 훼손될지언정, 어쨌든 그곳은 나의 집이었으니까.



​지금 거실의 소란함 속에선 상상도 못 할 풍경들. 그 섬뜩했던 능구렁이와 쥐 가족의 소리조차 지나온 시간 속에서는 조그마한 추억이 되었다.


그것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만든 문장들로 내 가슴 깊이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