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에겐 꽤 큰 고민
조그만 사과 하나를 집어 들고 껍질이 끊이지 않게 길게 늘어뜨리며 깎아 본다.
"와, 엄마! 이것 좀 봐, 정말 길어요!"
아이들의 감탄사가 채 끝나기도 전, 돌돌 말리던 껍질이 툭 하고 끊어졌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깔깔거리는 웃음 섞인 사과를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무슨 생각이 이리도 많은 걸까.
사과를 볼 때면 자꾸만 그때가 생각난다.
열 살의 떨리던 마음과 지금의 웃음소리가 사과 향기에 섞여 맴돈다.
옛날 전원주택 집 현대식 화장실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곁에는 집안사람들을 지켜주듯 나지막한 담벼락이 둘러져 있었다. 대문에는 파란색 손바닥만 한 무섭지 않은 사자가 달려 있었는데, 그 입에 걸린 쇠고리는 드나들 때마다 철컹거리는 소리를 냈다.
어느 날 화장실을 다녀오다 우연히 담장 너머를 보았다. 담 뒤에서 집 쪽으로 쑥 들어와 있던 빨간 사과는 어린 내 눈에 대갈통만 했다. 기억 속 그 사과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압도적인 크기였다. 백설공주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하얀 피부를 가진 예쁜 아이는 아니었지만, 맛있어 보이는 빨간 사과를 보며 침을 꼴깍 삼키던 내 마음은 백설공주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주인 허락 없이 따버린 탓에, 사과를 손에 들고 한참을 후회했다. 자책감에 '경찰서에 가서 이실직고해야 하나' 수만 번을 고민했다. 어린 나에게 그 죄는 너무나 컸고, 마음은 마치 돌덩이가 든 것처럼 무거웠다. 한동안 먹지도 못한 채 사과를 뚫어지게 쳐다만 보았다.
그러자 탐스러운 사과가 "이왕 딴 김에 크게 한 입 베어 물어봐"라고 속삭이며 흔들리는 듯했다. 사실 사과가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흔들린 것이었다. 결국 유혹에 넘어가 크게 한 입을 베어 물었다. 사과 속에는 꿀이 가득했고, 이빨 자국 난 속살에는 노란 별이 박혀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건, 여름과 가을 사이의 날씨였음에도 사과가 무척 시원했다는 점이다. 노란 별에서는 사과즙이 뚝뚝 떨어졌다. 그 달콤함을 맛본 뒤로는 죄책감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허겁지겁 먹어 치운 탓에 그 컸던 사과는 어느새 씨만 덩그러니 남았다. 어린 마음에 '이렇게 많이 먹어도 되나' 싶어 걱정이 되기도 했다.
별일 아니기도, 또 큰일이기도 했던 어린 시절 이 기억이 가끔 떠오른다. 나중에 친구에게 "너희 집 뒤에 있는 사과나무에서 사과 하나 따 먹었어"라고 고백하니, 그 친구도 "나도 가끔 따 먹어"라며 웃었다. 그것도 모르고 사과를 든 채 심장이 철컹거릴 만큼 고민했던 그 시절. 나에게도 참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빨간 사과
열 살, 바알 간 사과 한 알에 인생이 흔들렸다.
먹고 싶은 갈증과 붙잡혀갈 것 같은 공포 사이,
가느다란 이성의 끈이 끊어지며 터진 아삭함.
달콤하면서도 썼던 그날의 고민은
사과 씨만 덩그러니 남긴 채 가슴에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