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온기
학교에서 받아온 '진라면 순한 맛' 한 봉지 때문에 첫째 아이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친구에게 선뜻 건네주었다가 금세 마음이 바뀌어 다시 달라고 했지만, 이미 주인 바뀐 라면은 돌아오지 않았다. 눈가까지 발갛게 달아오른 아이를 보며 나는 "한번 준 걸 다시 뺏는 건 아니야, 엄마가 사줄게"라며 다독였다.
그저 마트에서 흔히 파는 라면일 뿐인데, 아이에게는 '내가 학교에서 받은 특별한 보물'이었나 보다. 이제 마음이 한 뼘 더 자란 아이를 위해 가스레인지 불을 켠다.
아이는 오늘 친구와의 나눔과 소유의 갈등이라는 작은 사회를 배웠고, 나는 그런 아이를 보며 잊고 지냈던 나의 뜨거운 성장기를 복기한다.
아이의 어리광 섞인 뒷모습 위로 나의 이십 대 시절, 어느 김밥천국 주방의 풍경이 겹쳐 흐른다. 그 시절의 나는 참 치열했다. 앳된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며 체인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 점심시간마다 사장님은 내게 "뭐 먹을래?" 하고 물으셨다. 수많은 메뉴가 있었지만 나의 대답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저는 치즈라면요!"
뜨거운 국물 위에서 노란 체다 치즈가 사르르 녹아내려 국물 색이 영롱한 주황빛으로 변할 때, 그 고소한 풍미는 고된 노동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유일한 위로였다.
잘 익은 깍두기 한 점을 면발 위에 '척' 하고 올려 한 입 가득 넣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행복이 입안에 퍼졌다. 그 주황색 국물은 어린 나에게 세상을 버텨낼 힘을 주는 따뜻한 응원이었다.
비록 아이가 먹는 것은 순한 맛이고, 내가 기억하는 것은 치즈의 고소함이지만 라면 한 그릇이 전하는 온기는 세대를 건너 우리를 이어준다.
오늘 밤, 주방 가득 퍼지는 라면 냄새는 아이에게는 엄마가 지켜주는 든든한 사랑으로, 나에게는 땀 흘려 일하고 치즈라면 하나에 웃던 그리운 청춘의 맛으로 기억될 것이다. 아이의 눈물도, 나의 땀방울도 모두 라면 국물의 온기 속에 따뜻하게 녹아든다.
온기 가득한 치즈 녹인 국물 속으로
나의 이십 대 시절이 사르르 녹아든다
작지만 꽉 들어찬 의자와 탁자들
사이사이 바삐 지나다녔던
그 좁고도 넓었던 시간들
땀방울이 맺히고 경험이 쌓여가며
하루라는 이름의 계절이 지나갈 때
사장님의 배려는 어둠 속
반짝이는 한 줄기 빛이었다
팔팔 끓여 내주시던
정성 어린 냄비 속 라면
노란 치즈는 수줍게
주황빛으로 번져가고
고단했던 청춘도
그 따스함에 몸을 녹인다
김이 모락모락 나던
그때의 풍경이 아이가 가져온
라면 한 봉지 끝에서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