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시간을 기다리며
'히요시(Hiyoshi)' 역에 다시 갔었다. 두 달 전인 지난 12월, 일본 도쿄 서남쪽 요코하마시 가나가와현에 있는 곳이다. 수년 전부터 도쿄를 1년에 한두 번씩 가고 있다. '히요시' 역 바로 앞에 둘째가 다니는 대학 캠퍼스 정문이 있다. 1, 2학년들은 여기 히요시 캠퍼스에서 교양과 기초교육을 공부한 후, 전공과정인 3, 4학년에는 도쿄타워 근처인 미나토구에 있는 미타(Mita) 캠퍼스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일본의 대학교들은 우리나라와 달리 보통 서너 개 또는 대여섯 개의 캠퍼스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의 명문대들은 100년 이상 존속한 경우가 많아, 설립 당시 한 캠퍼스로 시작해서 학부·연구소가 늘어날 때마다 인근 또는 외곽에 부지를 추가 확보하는 방식으로 확장되었다고 한다.
'히요시'역 동쪽 출구로 나와서, 바로 앞 횡단보도를 건너니 캠퍼스 입구가 바로 눈에 들어온다. 동시에 입구 안쪽 양 옆으로 서있는 은행나무들이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입구에서부터는 완만한 오르막길이 4~5백 미터 정도 길게 이어지고, 길 양옆으로는 높이가 20미터를 훌쩍 넘고 수령이 90년 이상되었다는 은행나무 약 100여 그루가 마치 로마의 경계병들처럼 일렬로 길 양옆에 늘어서 있다. 보는 이들의 시선을 압도하고 걸어 들어가는 이들에게 묘한 긴장감과 위엄을 느끼게 한다. 한국의 일반적인 대학의 정문 그리고 초입과는 매우 다른 풍경이다. 보이는 학생들은 한국학생들과 구분하기 힘든, 그래서 사람들만 보면 한국 같지만 다른 풍경들은 역시나 이국적이다.
이 길을 아들이 매일 다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아들인 듯 감정을 이입시켜보며 걸어보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참새들이 짹짹거리며 모여 놀듯 많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떠들면서 길을 오르고 있다. 무엇을 해도 예쁘고 아름다워 보이는 젊음이다. 엊그제 같은 나의 대학 캠퍼스 생활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며 이번 도쿄 여행은 다른 때와 달리 사뭇 기대를 가지게 된다. 아들의 교내 동호회인 '클래식기타회 정기연주회'를 보러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클래식기타 동호회 출신인 나에게는 특별하다. 아들이 아빠와 같은 취미의 동호회 활동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냥 연주자로서 동호회 생활을 했었지만 아들은 한 해의 가장 큰 연주회 행사인 가을 정기연주회의 지휘자로 무대에 선다. 연주회 곡을 선정하고 편곡하며, 올봄부터 60명가량의 연주회 참가 학생들을 이끌고 수개월간 같이 힘들게 연습하며 드디어 토요일(12월 20일)에 연주회를 하게 된 것이다. 연주회장인 대강당으로 가니 많은 손님들이 벌써 와있었고 꽉 차있다. 주로 친구들이 대부분인 것 같고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꽤 많이 보인다.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먼저 앞서 두 시간가량 이중주(Duet), 삼중주(Trio) 등의 중주팀들이 연주하였고, 그 사이 두 번의 Intermission(쉬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로 오늘 연주회의 꽃인 60여 명의 연주자들의 합주 순서가 이어졌다. 아들의 지휘이고 연주 시간이어서였는지 처음에는 긴장하면서 보았고 기대이상인 연주와 지휘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며 내가 무대 위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질 만큼 연주자와 관객이 하나가 된 매우 훌륭한 연주회였다. 모든 관객들의 휘파람과 환호의 박수가 오랫동안 이어졌다. 연주한 곡에 대한 감동도 있겠으나, 나는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한 이들의 고통과 협업의 '시간'에 갈채를 보냈다. 독주와 달리 중주와 합주는 타인과 타인이 하나의 곡을 함께 호흡하고 맞추는 작업이다. 쉽지 않다. 서로가 양보하고 조절하며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의 합이다.
한국에 오자마자 나는 기타 케이스를 열고 튜닝(조율)을 하였다. 나중에 아들과 연주해 볼 곡들을 찾아본다. 아들의 얼굴인 듯 악보들을 어루만져본다. 삶이 바빠서 또는 게을러서 놓치고 있던 나의 시간들을 다시 일깨우고 싶다. 아빠의 실력을 훌쩍 넘어선 아들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준비하려 한다.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