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자라는 아이들

자존감을 키우는 코칭

by 최민기

사막에서 자라는 아이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일상의 빛'


“우리 아이는 칭찬을 너무 많이 받아서 문제예요.”


상담을 할 때면 가정에서 칭찬을 많이 하고있다고 말하는 부모님들이 종종 있다. 정말 아이는 칭찬을 ‘많이’ 받고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진실은 정반대다. 아이는 사막에서 자라고 있다. 칭찬이라는 단비를 간절히 기다리며, 메마른 땅에서 뿌리를 내리려 애쓰고 있다. 부모는 가끔 큰 비를 내려준다고 생각하지만, 아이에게는 몇 방울의 이슬에 불과하다.


우리는 착각하고 있다. 100점을 맞았을 때, 상을 받았을 때, 뭔가 ‘대단한’ 일을 해냈을 때 칭찬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이의 하루는 그런 거대한 성취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10년 후에 발견한 편지


몇 년 전, 한 어머니가 이사를 하면서 옛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때 아들의 오래된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낡은 공책 하나를 발견했다.


표지에는 초등학교 2학년이던 아들의 삐뚤삐뚤한 글씨로 ‘엄마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궁금해서 펼쳐본 그 공책에는 아이가 매일 쓴 짧은 일기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오늘 혼자서 구구단 외웠어요. 엄마가 칭찬해주면 좋겠어요.”

“친구가 넘어졌는데 제가 일으켜 줬어요. 착한 일 한 것 같아요.”

“오늘은 야채도 다 먹었어요. 브로콜리도요.”

“수학 문제 틀렸지만 끝까지 혼자 했어요. 포기 안 했어요.”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어머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이가 얼마나 자신의 작은 성취들을 엄마가 알아봐 주기를 원했는지, 얼마나 간절히 인정받고 싶어했는지가 그 어린 글씨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 시절 그 어머니는 너무 바빴다. 일에 치여 살면서 아이의 100점짜리 시험지나 상장 같은 ‘큰 일’들만 눈에 들어왔다. 아이의 이런 작은 노력들은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엄마는 제가 상 받을 때만 기뻐해요. 저는 매일매일 열심히 하는데… 엄마가 제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어요. 엄마, 사랑해요.”


그 어머니는 그날 밤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이제 대학생이 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아, 미안해. 엄마가… 엄마가 너의 반짝반짝한 매일을 못 봐줘서 정말 미안해.”


전화기 너머로 아들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괜찮아요. 그때 그 일기 쓰면서 스스로 제 노력을 인정하는 법을 배웠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어머니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스스로를 인정하는 법을 배웠다고 해도, 그 시절 아이가 원했던 것은 엄마의 눈길이었고, 엄마의 따뜻한 말 한마디였다는 것을.

(어젠가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책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이들의 작은 노력도 봐주세요. 지금 당장은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아이에게는 온 세상만큼 소중한 일일 수도 있어요."



보이지 않는 노력들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을 하는 것,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는 것, 친구와 다툰 후 먼저 말을 거는 것, 어려운 숙제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한 줄이라도 더 써보는 것.


이런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사실은 아이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어른들은 이것을 ‘당연한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매일매일이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다.


마치 등산객이 정상에 도달했을 때만 박수를 받는 것과 같다. 하지만 정작 힘든 것은 정상이 아니라, 그곳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발걸음들이다. 미끄러지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디딘 돌들, 숨이 차도 계속 올라간 가파른 길, 포기하고 싶었지만 한 걸음 더 내디딘 순간들.



해바라기가 항상 태양을 바라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저 햇빛을 좋아해서일까?


아니다. 해바라기는 목이 마르다. 태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생존을 위해 빛을 찾고 있는 것이다.


칭찬에 목말라하는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인정을 갈구하는 것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 본능이다. 자신이 괜찮은 존재인지,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지 확인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목마름을 보지 못한다. 아니, 보고도 모른 척한다. “네가 스스로 만족하면 되지, 왜 남의 인정이 필요해?“라고 말하면서.



어떤 아이가 빈 그릇을 들고 부모 앞에 서 있다. 그 그릇에는 하루 종일 애써서 모은 작은 성취들이 담겨 있다.


“오늘 수학 문제 하나 더 풀었어요.”

“친구랑 싸웠는데 제가 먼저 미안하다고 했어요.”

“영어 단어 다섯 개 외웠어요.”


하지만 부모는 그 그릇을 보지 않는다.


처음부터 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5살, 6살 까지만 해도 아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관심과 사랑을 준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본격적으로 학업이 시작되면서 부터는 아이의 작은 성장은 잊혀지고 점점 더 큰 그릇, 더 대단한 내용물을 바라기 시작한다. 100점짜리 시험지나 상장 같은 것 말이다.


아이는 빈손으로 돌아간다. 자신이 애써 모은 것들이 아무 가치 없다고 느끼며. 그리고 점점 그릇을 들고 오지 않게 된다. 어차피 봐주지 않을 테니까.




물을 주는 정원사처럼 / 사금파리를 찾는 사람들처럼


정원사가 화단을 가꾸면서 꽃이 피는 시기에만 물을 준다면 어떻게 될까? “꽃이 피면 예쁘니까 그때 물을 줘야지. 평소에는 뭐 하러 물을 줘?”라고 생각한다면, 그 화단은 결코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없다.


하지만 현명한 정원사는 다르다.


그는 꽃이 피지 않는다고 해서 물을 주지 않는 법이 없다. 오히려 꽃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 더욱 세심하게 물을 주고, 영양분을 공급하며, 보이지 않는 뿌리가 튼튼하게 내릴 수 있도록 보살핀다.


그 노력 덕분에 식물은 겉으로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 충분히 자랄 수 있고, 마침내 때가 되면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다.


아이의 자존감도 마찬가지다. 큰 성취를 이룰 때만 칭찬받아서는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 평범한 일상의 작은 노력들이 인정받을 때, 비로소 진짜 자신감이라는 꽃을 피울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우리가 매일 아이의 작은 노력을 소중히 여기고 칭찬의 물을 준다면, 아이는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내리고 마침내 스스로 빛나는 존재로 성장할 것이다.



강에서 사금을 찾는 사람들은 작은 금조각 하나하나를 소중히 모은다. 모래알 같이 작은 것이라도 그것이 금이라면 버리지 않는다.


아이의 일상에도 이런 사금파리들이 널려 있다. 스스로 신발끈을 묶는 순간, 동생과 나눠 먹으려고 과자를 반으로 쪼개는 마음, 틀린 문제를 다시 한 번 풀어보는 끈기.


하지만 우리는 이런 사금파리들을 지나친다. 큰 금덩어리만 찾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아이의 보물들은 하나씩 사라져간다.


아이들은 칭찬 중독이 아니라 칭찬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거창한 찬사가 아니다. 자신의 작은 노력들이 보이고 있다는 신호,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인, 실수해도 여전히 사랑받는다는 안정감.


이제는 눈을 더 세심하게 떠야 할 때다.




오늘 건넬 한마디

아이의 자존감은 100점짜리 시험지나 화려한 상장이라는 한 송이 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작은 뿌리들, 실수하고 넘어지며 다시 일어서는 모든 순간에 부모가 건네는 믿음과 관심을 먹고 자라나는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아이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을 주게 된다. 바로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다’라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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