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기

by 구육오

받아들인다는 것이 꼭 나쁜 건 아니다. 현실과 타협한다는 느낌 때문에, 혹은 "난 더 할 수 있는데, 그냥 내가 약해서 포기하는 건가?" 하는 마음이 들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자기 최면을 걸어 포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땐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지고, 의지가 부족하고 약한 사람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정말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나쁜 걸까?


몇 년 전 회사 형에게 요즘 체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 전에는 새벽까지 깨어있거나 놀아도 멀쩡했는데, 요즘은 금방금방 졸리고 힘들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형은 나에게 "새벽까지 깨어있고, 놀면 당연히 피곤한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맞다. 늦게까지 깨어있으면 피곤한 게 당연하다. 그전까지 내가 한 행동이 오히려 무리였던 것이다. 나는 그전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아하면서 며칠을 그렇게 새벽에 잤다. 당연히 피로가 몸에 쌓일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상태가 사실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내 주변에는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서도 만족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서 보기엔 이미 충분히 대단하게 살고 있는데, 그 사람들 눈에는 더 대단한 사람, 더 멋진 사람들, 아니 어쩌면 더 미친(?) 사람들이 많이 있나 보다. 서로를 보면서 서로 대단하다, 멋있다, 어떻게 그렇게 사냐고 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내가 볼 땐 둘 다 제정신으로 사는 게 아닌 것처럼 보인다.

내 주변에는 인생에서 정말 밝게 빛났던 적이 있는 사람이 꽤 많다. 그들은 자신의 최선을 다해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낸 경험을 한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은 아쉬움을 느낀다.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봤고, 그 한계를 뛰어넘어본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최선과 노력에 만족하지 못할 때가 있다. 과거의 자신은 더 대단하게, 더 열심히, 더 밝게, 더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은 이미 한계를 넘어서 본 사람들이기 때문에, 지금도 이미 과거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느꼈던 그 시절의 감정은 훨씬 더 대단한 것처럼 느껴진다. 온전히 어떤 것에 몰두했고, 다른 많은 것들을 포기하기도 했고, 말 그대로 피, 땀, 눈물을 흘려가며 얻은 감정이기에 그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마치 마약처럼 그 감정을 경험하고 난 뒤부터는, 그들이 노력하며 얻게 되는 감정들을 그에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노력한 것으로 칠 수 없다는 자신만의 기준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의 그 감정을 다시 느끼기란 쉽지 않다. 이미 자신의 한계치는 올라가 버렸고, 과거의 그 시절처럼 많은 것들을 포기할 수 없는 현실이 펼쳐져버렸다. 삶을 통해 시야는 넓어지고, 점점 더 대단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치열한 삶은 사람을 빛나게 한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는 증거로 그 사람은 지쳐갈 수 있고, 그들의 도전의 결과는 당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바탕 열심히 무언가를 할 때는 빛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끝나고 나면 몰려오는 허탈함이 있을 수 있다. "최선의 결과가 겨우 이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높이 가려다 보면 기초가 넓어진다. 수많은 1단계를 지나야 한다. 그 과정에 행복이 있다고, 그리고 그 결과에 행복이 있다고 나는 말할 수 없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그 대단함을 유지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든 일이고, 지칠만한 일이다. 지쳐있는 상태로 걷는 사람은 넘어지기도, 다치기도 한다. 자신을 상하게 할 수 있다. 나는 정말 그것이 좋은 것인지 회의감이 들었을 뿐이다. 그들의 노력과 도전을 응원하며, 꼭 다시 한번 그들이 빛났으면 좋겠고,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성공했으면 좋겠다.


성인이 되면서 내 곁에는 피하고 싶은 미래를 보여주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저렇게는 살기 싫다."라고 느낄만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은 많아도, 당장 내가 보고 배울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단순히 보고 배울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단지 어떻게 저렇게 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 사람의 삶을 베끼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싶고, 다시 한번 몰두해서 성공해 내고 싶다. 그러나 나는 정말 그러한 삶이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는 것조차도 도전이 되어버린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희미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나는 어찌 보면 그 도전에서 실패해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확실한 도전의 무게를 줄이고, 욕심을 버림으로써 나를 보호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경쟁에서 이탈한 사람에게는 어떠한 상도 주어지지 않지만 허탈함과 약간의 괴로움을 견딜 수 있다면, 더 많은 시간과 선택지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물론 그 선택지는 한정적 일지 모른다. 경쟁에서 이탈한 대가이다. 나는 최선을 다할 에너지를 더 얕고 길게 가져가는 선택은 어떨지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도 어쩌면 그냥 최선을 다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타협한 결과를 좋은 말로 포장한 것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내 삶의 목표는 행복이다. 행복을 위한 선택과 방법은 정해져 있지 않다. 적당히 사는 사람에겐 매력이 없을지 모르지만,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행복한 사람 곁에만 있어도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앞에서는 포장에 싸인 타협이라고 말했지만, 어쨌든 나는 내 최선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것을 해보고 싶고,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고, 많이 배우고 싶다. 따라서 나는 아직은 한 가지에 몰두할 수 없다. 나에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더 멀리 더 높이 가기에 너무 많은 시간이 들더라도, 아니 갈 수 없다고 해도 그것이 나의 행복이라면 그렇게 하겠다.


다양한 길을 이리저리 가다 보면 가끔은 제자리로 돌아올 때가 있다. 지금의 나는 얼마나 성장했는지, 얼마나 더 멀리 다녀온 지는 몰라도 크게 멋있어진 것 같지는 않다. 19살, 20살쯤의 나의 꿈은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의 '저 사람'을 여러 명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 많은 보고 배울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꿈을 말한 지 10년 가까이 되었음에도 그런 사람이 되기엔 한참 모자라다. 물론 그런 사람이 되는 것 자체가 오래 걸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 정도는, 적어도 한 발짝 정도는 가까이 왔으리라 생각했는데 아직은 너무 모자란 것 같다.


다중 전공을 하면서 혹시 이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언가 새로운 길이 열리지는 않을까 고민하고 돈도 많이 벌고 싶다는 나름의 기대도 했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한 가지 나에게 너무나 행복한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 가지 찾았다는 것이다. 돈을 벌 수는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2년 동안 철학과에서 배운 것을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누구의 어떤 철학을 배웠다기보다는 그냥 내 삶의 어딘가가 조금 달라졌다. 재미있는 취미가 생겼고,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흥미로운 주제를 꺼낼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다른 어떤 부분들은 나도 모르게 버리고, 내가 어딘가 변하였을 수 있지만,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나 발견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했다.

어떤 과목 특성상 교수님, 학우들과 함께 식사를 할 자리가 생겼는데, 교수님께서 나에게 철학과 관련된 질문을 하셨고,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면서도 나불나불 떠들고 있었다. 그때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너 진짜 철학 좋아하나 보다. 계속 웃으면서 얘기하네?"라고 이야기했다. 몰랐다. 내가 웃으면서 이야기하고 있는지, 내 눈이 변했는지. 전혀 몰랐다. 그때 알았다. 내가 철학이라는 학문에 한쪽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이 잘 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신기하고 감사했다. 내가 아직 이렇게 무언가에 가슴 뛰면서 행복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앞길은 막막하고, 걱정은 쌓여간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한다니. 너무 감사했다. 내가 이걸 좋아하는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이 너무 감사했다. 처음으로 돈이 안 되는 학문을 공부하면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그전에도 그런 감정을 느끼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 한순간으로 나는 그 2년의 시간을 확실히 후회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순간이 나에겐 행복인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이리저리 다녀보다가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또다시 고민에 빠질 타이밍이었다. 그런데 내가 그 길을 돌아다니며 구경한 풍경들과 '어느 길은 어떤 것이 참 좋았지'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그 고민을 잊게 만들어 주었다. 물론 그 고민들이 없어지진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행복했다.


돈을 많이 벌고,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을 때가 많다. 그냥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하는 것뿐이다. 조금만 내려놓으면 더 많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욕심 없고 야망 없는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누구나 알고 있듯 그 사람들이 나의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려 하는 것도 분명 멋진 일이고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지금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이미 누구나 알고 있듯, 행복은 내 안에도 충분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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