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을 읽고
다자의 오사무의 <인간 실격>은 주인공 오바 요조의 추락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조는 인간을 극도로 부정적으로 묘사하며, 세상을 두려워해 문제에 대해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모습들은 책의 제목에 걸맞은 행동으로 보이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독자는 요조의 뒤틀린 인간성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요조는 순수함을 추구한 인간이다. 그리스 신화의 이카로스는 밀랍의 날개를 달고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았기 때문에 날개가 녹아 추락한다. 요조도 이카로스와 같다. 모순이 가득한 세상에서 순수함만을 추구했기 때문에 파멸한 것이다. 어째서 그는 높이 날아오르려다 추락했을까?
저한테는 서로 속이면서 살아가는, 혹은 살아갈 자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이야말로 난해한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은 끝내 저한테 그 요령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것만 터득했더라면..... 인간의 삶과 대립되어 밤이면 밤마다 지옥 같은 괴로움을 맛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인간 실격>은 오바 요조의 수기로 진행된다. 요조는 극도로 순진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인간의 모순, 기만과 거짓 등 추악한 면을 용납하지 못한다. 어째서 인간은 앞에선 웃고 떠들면서 뒤에선 욕을 하는가? 어째서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을 말할 수 있는가? 그가 보기에 인간은 자신의 추악함을 묵인하면서 모순적이게도 타인의 결점은 용납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에게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두려운 존재이자, 난해한 존재이다.
요조는 인간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가면을 쓰기로 한다. 부모가 원하는 모습을 연기하고, 항상 주변을 웃기기 위해 노력한다. 익살이라는 가면은 그를 인간답게 살아가게 하는 무기이다. 세상은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만 한다면 그에게 아무런 해도 가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이를 먹고 요조의 본모습과 인간의 삶은 더욱 대립하게 된다.
겁쟁이는 행복마저도 두려워하는 법입니다. 솜방망이에도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행복에 상처를 입는 일도 있는 겁니다.
새벽녘에 여자 입에서 '죽음'이라는 단어가 처음 나왔습니다. 여자도 인간으로서 삶을 영위해 나가는데 완전히 지쳐 버린 것 같았습니다.
요조는 익살꾼인 채로 성인이 된다. 그리고 미술학교에서 호리키라는 또 다른 익살꾼을 만나게 된다. 요조는 호리키에게 훗날 자신을 파멸시킬 것들(술, 담배, 창녀, 전당포, 좌익 사상)을 배운다. 이런 것들이 인간에 대한 공포를 잠시 잊게 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고, 호리키와 어울리며 요조는 해결해야 할 문제(인간과의 대립)를 자극과 쾌락으로 덮어둔 채 망가진 삶을 살게 된다.
이 시기에 요조는 쓰네코를 만난다. 쓰네코는 요조의 인생에 유일하게 행복을 주었던 인간이다. 요조는 쓸쓸하고 고립된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그녀와 함께한 하룻밤동안 삶의 불안과 공포를 잊는다. 그녀와 있는 순간에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면을 쓰지 않고서 진심으로 인간에게 다가갈 줄 몰랐던 그는 행복에 상처를 입기 전에 그녀에게서 떠난다.
불쌍한 처지의 인간들은 서로를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두려운 세상 속에 자신과 닮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할 뿐이다. 그래서 서로를 지탱하고 나아가지 못하고 점차 서로의 어둠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요조는 술에 취해 쓰네코를 다시 찾아간다. 그는 자신을 보는 쓰네코의 모습에서 동질감을, 연민을, 사랑스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녀의 포기에, 죽음에 동참하기로 한다.
세상이란 개인과 개인 간의 투쟁이고 일시적인 투쟁이며 그때만 이기면 된다..... 그러니까 인간은 오로지 그 자리에서 한판 승부에 모든 것을 걸지 않는다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요시코의 하얀 얼굴. 아아, 더러움을 모르는 처녀성의 숭고함..... 결혼하자. 그래서 나중에 아무리 큰 비애가 닥친다 해도 상관없다. 난폭할 만큼 큰 기쁨이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상관없다.
쓰네코는 죽고 요조는 살아남았다. 이후에 그는 5살 딸이 있는 시즈코라는 여자에게 의지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녀의 곁에서도 행복은 없었다. 두려운 세상과 인간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자신의 존재가 모녀에게 불행을 가져다줄 것이라 생각하고 여자의 집에서 도망쳐 스탠드 바에서 지낸다.
세상과의 한판 승부. 요조는 자신을 위협하는 세상을 개인으로 인식한다. 정체 모를 거대한 것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그렇게 그의 두려움은 많이 줄어들었고, 인간에 조금 가까워질 수 있었다. 스탠드 바에 오는 사람들과 소소한 얘기를 하고, 같이 술을 마시고 하면서 그는 작게나마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 무렵 요조는 요시코라는 처녀와 만난다. 그녀는 세상에 더럽혀지지 않은 인간이다. 길에서 다친 요조를 치료해 주고, 술은 몸에 나쁘다며 끊기를 권한다. 술을 끊기로 약속한 요조가 술에 취해 돌아와도 전혀 의심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는 요시코와 결혼하기로 한다. 순수한 그녀의 모습에서 행복을 발견하고, 더 큰 기쁨을 위해 세상과 한판 승부를 벌이기로 결심한다.
점점 더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게 되었고, 점점 더 한없이 인간을 의심하게 되었고, 이 세상의 삶에 대한 일체의 기대, 기쁨, 공명 등에서 영원히 멀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실로 그것은 제 생애에 있어서 치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신에게 묻겠습니다. 신뢰는 죄인가요?.... 과연 무구한 신뢰심은 죄의 원천인가요?
요시코와의 삶은 요조에게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그의 옆에서 깊은 신뢰를 보내오는 요시코는 세상의, 인간의 두려움을 잊게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행복은 끔찍한 사건으로 인해 무너지게 된다. 어느 날 그녀가 겁탈을 당한 것이다.
의심할 줄 몰랐던 요시코는 요조가 집을 비운 사이 그와 거래하는 상인을 집에 들인다. 그리고 요조는 그녀의 신뢰가 인간에 의해 배신당하는 것을, 세상이 그의 마지막 희망, 행복마저 빼앗아가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그는 이 처참한 패배를 마지막으로 다시는 세상에 맞서지 못한다.
순결무구한 신뢰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뛰어난 가치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러한 가치들을 파괴하도록 작동하고, 인간은 순결한 것을 보면 더럽히고자 한다. 그래서 요조는 신에게 묻는다. 신뢰가 어째서 죄가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신뢰조차 죄라고 한다면 무엇을 믿으며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이제 저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저에게는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지금까지 제가 아비규환으로 살아온 소위 '인간'의 세계에서 단 한 가지 진리처럼 느껴지는 것은 이것뿐입니다. 모든 것은 그저 지나갈 뿐입니다.
요조는 추락한다. 세상에 등 떠밀린 채로. 술조차 그의 고통을 해결해주지는 못했고, 한계에 다다른 그는 약국에서 모르핀 주사를 알게 된다. 마약은 고통을 잊고 살아갈 힘을 주는 만병통치약 같아 보였으나, 결국 중독은 그를 파멸로 이끈다. 그는 다시 한번 자살시도를 하고 정신병동에 수감되어 인간이 아닌 병자로써 남은 일생을 살게 된다.
요조와 이카로스는 닮아 있다. 이카로스는 무엇을 위해 태양 가까이 날고자 했을까? 그리스 신화는 높이 날고자 하는 욕심이 추락의 원인으로 나타난다. 내가 <인간실격>을 보고 이카로스를 떠올린 이유는 두 가지이다. 너무 높은 이상을 추구하고자 한 것, 쾌락을 거듭하여 결국 정신이 무너지고 만 것. 요조는 변화하는 세상과 그에 순응하는 인간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했고,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해 쾌락만을 좇다 추락하게 된다.
요조는 같은 처지인 쓰네코와의 동질감에서, 요시코와의 결혼에서 조금이나마 삶의 행복을 느꼈다. 동질감을 느꼈던 쓰네코는 함께 세상을 버틸 동료가 되었을 수도 있다. 요시코의 배신당한 신뢰심은 서로의 신뢰를 통해 회복될 수 있었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희망을 이어나가지 못한다. 세상에서 눈을 돌려버린다.
희망 없는 삶은 쾌락을 좇는 삶으로, 추락으로 이어진다. 반대 또한 마찬가지다. 요조는 순수한 가치를 원했기 때문에 추락한 것이 아니다. 작은 희망을 보지 못하고 삶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세상에 있는 작은 가치들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더 큰 가치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삶에서 희망 대신 쾌락을 선택했기에 추락한 것이다. 우린 그와 같이 너무 높은 곳을 올라가려다 끝없는 추락을 겪지 말고 적당한 고도를 유지해야 한다.
희망은 이카로스 신화에 비유하자면 날개이다. 새는 날개를 잃으면 날아오를 수 없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희망 없이 어떻게 더 높은 곳을 향할 것인가? 우리는 저마다의 희망을 가지고 있기에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희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살아가는 동안 계속해서 유지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