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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QUEST, 일본 간사이

여행 준비

by Rainy spell

1. Why did I plan to go?


일본은 굉장히 흥미로운 나라다. 가까우면서도 먼 이웃나라, 라는 표현은 너무 진부해서 질릴 정도니까(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리 치워 놓고 일단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자 애니메이션과 생맥주와 장어덮밥(이건 개인적 취향, 특히 나고야의 명물인 히쯔마부시는 정말 최고다) 천국이자…딱히 나도 이 나라를 잘 표현할 말은 없네 써 놓고 보니.


이웃인 만큼 사이가 좋기는 어려운데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굉장히 오랜 세월 이 나라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이건 한국과 일본만 그런 게 아니고 세계 1,2차 대전의 연합국이자 영원한 우방인 것 같은 영국과 프랑스도 사실 그전까지는 백년전쟁을 시작으로 주야장천 서로를 잡아먹을 듯이 싸움박질만 해 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저 두 나라가 사이가 좋아진 건 기껏해야 백 년 남짓이고 나머지는 계속 안 좋은 상태로 살아온 거다.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오면,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바다 건너의 일본은 저 멀리 삼국시대 때부터 해적질로 우리나라를 괴롭혀 왔다. 물론 그전에 삼한시대에도 마찬가지였을 지도 모르지만 삼한시대는 거의 선사로 취급해야 할 만큼 기록물이 부실하기 때문에 진실은 알 수 없다. 그리고 왜구들이 서기 1세기 정도에 해협을 건널 정도의 선박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냐 하는 문제에까지 이르면 이미 내 저열한 교양 수준을 뛰어넘는 질문이므로 더더욱 알 수 없는데 하여튼, 오래전부터 가까운 20세기까지 침략을 당했으니 국민감정이 좋기는 힘들다. 이것도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은 나아지겠지만 한 국가의 국민감정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히 바뀌는 게 아니다. 침략한 쪽은 덜하겠지만.


이러한 연유로, 이십 대 중반을 넘어가는 시점까지 나는 의도적으로…인지 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일본 여행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대학생 때 몇 번의 여행을 경험하면서 완전히 여행에 마음을 빼앗겼는데, 대학교를 졸업하고 회사라는 곳에서 일을 시작해보니 이게 어디를 여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첫 해는 휴가가 하나도 없으니(그 때는 진짜 왜 그랬지?) 당연히 못했고, 두 번째 해도 일주일 휴가를 내는 건 굉장히 눈치를 봐야 하는 일이어서 그냥 포기했다. 세 번째 해가 되었을 때에야 일주일 휴가를 낼 수 있게 되어서 이제 슬슬 다시 내 인생의 여행 여정에 시동을 걸어볼까…하다가 가까운 일본으로 정한 것이다. 일본에 흥미가 없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본 여행을 하는 것에 저항감은 없었는데,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일본은 20세기 중후반에 문화의 전성기를 맞아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등의 문화예술이 대단히 발달을 한다. 그리고 70~8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감수성이 민감한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일본 만화와 게임과 영화와 음악과 성인 비디오의 영향을 정통으로 맞게 되어 알게 모르게 일본의 문화에 대해 상당히 익숙해지게 된다. 나도 그러했고.


만화는 적당히, 영화는 제법, 책은 꽤나 일본의 것을 즐겼던 나는 일본의 첫 번째 여행지로 일본의 지역 중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간사이(관서)를 골랐다. 이 간사이 지방이야말로 일본이 탄생한 곳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본의 초창기 수도였던 나라, 그 후 천년 간 수도의 지위를 차지하고 발전한 교토, 일본에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12개의 성 중 하나가 있는 히메지, 이 세 개 도시만으로도 내가 갈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오사카(실제 발음은 오오사카)도 물론 유서 깊은 도시로 임진왜란의 원흉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사카성이 있지만 2차 대전 때 미군의 폭격으로 모조리 파괴되어 제대로 남아 있는 유적이 없다시피 하니 차치해도 되겠지만 대신 현대의 즐길거리(쇼핑, 식도락)와 포토존이 널려 있다.




2. Itinerary and getting prepared


그래서 오사카로 in-out을 하기로 하고 오사카를 중심으로 히메지-고베-나라-교토-오사카의 일정으로 계획했다. 토요일 출국해서 일요일에 돌아오는 여정.


Day 1(Sat) : 인천-오사카 항공 이동 / 오사카 여행

Day 2(Sun) : 오사카-히메지 기차 이동 / 히메지 여행 / 히메지-고베 기차 이동 / 고베 여행 / 고베-오사카 기차 이동

Day 3(Mon) : 오사카-나라 기차 이동 / 나라 여행 / 나라-오사카 기차 이동

Day 4(Tue) : 오사카-나라 기차 이동 / 나라 여행 / 나라-오사카 기차 이동 / 오사카 야경

Day 5(Wed) : 오사카-교토 기차 이동 / 교토 여행

Day 6(Thu) : 교토 여행

Day 7(Fri) : 교토 여행 / 교토-오사카 기차 이동

Day 8(Sat) : 오사카 여행

Day 9(Sun) : 오사카-인천 항공 이동


토요일 첫 비행기로 가서 일요일 마지막 비행기로 올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언제 휴가를 쓸 수 있을지 몰라 미리 좋은 시간대를 고를 수 없었던 까닭에 출발일이 상당히 임박했을 때에야 티켓팅을 하다 보니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만약 토요일과 일요일을 각각 반일씩 더 사용할 수 있었더라면 아마 교토에서 하루 더 머무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얼추 간사이 쪽의 핵심은 대충 둘러볼 수 있는 여정이고 일주일~열흘 정도 여행하기에 알맞다. 취향에 따라 쇼핑 등을 하고 싶다면 오사카에서 더 시간을 보내면 된다.


여러 매체를 통해 익숙해진 일본이고 또 광복 이후 준비가 안되어 있던 대한민국은 여러 분야에서 일본의 Standard를 카피해서 그대로 가져다 썼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비슷해서 여행하는 데에 어려움은 별로 없다. 또한 일본은 정말 여행자 friendly 한 곳이라 여행지에 대한 설명도 잘 되어 있고 이웃나라 merit로 한글 안내문도 제법 되어 있으니 편하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영어 실력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다. 대략 우리나라의 90년대를 생각하면 되는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가지고 있는데 기업들에서 영어 실력을 우리나라만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이네들은 영어 공부에 대한 needs가 우리보다 훨씬 적어서 그런가 보다. 물론 SNS와 스마트폰의 발달로 전 세계가 하나가 된 만큼 국제 공용어인 영어에 예전보다는 더 익숙해지긴 했겠지만.


분류상 간사이 지방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오사카와 쿄토는 서로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는데 교토 사람들은 오사카 사람들을 경박하다고, 오사카 사람들은 교토 사람들을 표리 부동하고(속내를 드러나지 않고) 너무 점잔을 뺀다며 비난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남부가 동서로 나뉘어 아웅다웅하고 있으니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재밌다. 게다가 오사카는 간사이뿐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독특한 것이 에스컬레이터에서 서 있는 방향이 오른쪽이고(다른 일본지역은 왼쪽) 훈독을 많이 쓰는 데다 사람들의 성격이 불같고 급하며 자존심이 세서 우리나라와도 얼핏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이 기질 얘기는 오사카에서 살았던 지인한테서 들은 얘기고 또 소설 등을 봐도 그런 얘기들이 나오는 걸 보면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 교토 쪽의 너무 점잔을 뺀다는 기질에 대해서는 또 이해가 가는 것이, 천년 넘게 수도였던 곳이라 왕족과 귀족들이 살았으므로 격식과 예절이 발달했을 테고 이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게 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니 역사적인 이유로 그쪽 사람들의 기질이 결정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관련해서 일본의 방송에서 삽화 하나를 준비해서 실험을 한 것이 있었는데, 피아노를 치는 아이가 있는 집의 부모에게 옆집 사람이 찾아가서 ‘아이가 피아노를 잘 치는군요’라고 말을 하는 상황을 교토와 오사카 사람한테 보여주는 것이었다. 오사카 사람에게 보여주니 ‘애가 피아노를 잘 쳐서 칭찬하는 거에요’ 라고 했는데 방송에서 이 말을 한 사람이 교토 사람이라면요? 하고 묻자 ‘아 그러면 이건 피아노 소리가 시끄러워서 말을 하고 싶은데 직접 못하니까 칭찬하는 것처럼 하는 거지 절대 좋은 말이 아냐’라고 대답하는 게 있었다. 여기서 일단 너무 웃겼는데 똑같은 삽화를 교토 사람에게 보여주자 바로 ‘피아노 소리가 폐가 되고 있는데 대놓고 말하기가 어려워서 돌려서 말하고 있네요’라는 인터뷰가 있었다. 이런 지역 차이를 알고 가면 더더욱 여행의 즐거움은 배가 된다.


이렇게 나의 간사이 여행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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