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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QUEST, 일본 간사이, 오사카

Day 1, 인천→오사카

by Rainy spell

3. Travel Story


Day 1. Seoul -> Incheon -> Osaka


열심히 놀기만 하던 대학생 시절,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가 본 유럽 배낭여행에 나는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그리고 몇 번의 여행을 더 한 다음, 회사에서 일을 하기 시작하자 여행을 다닐 상황이 못되어서 2년간 잠자코 국내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되었다. 물론 운이 좋아서 1, 2년 차 일 때 독일로 출장이 있어서 코에 바람은 넣었고 주말을 이용해서 로마와 프라하, 런던을 놀러 다녔으니 갇혀 있기만 했다고 말하기는 조금 적당하지 않지만. 어쨌든 뼛속까지 여행 매니아인 내 피가 3일 굶은 뒤에 주린 배를 안고 끓이는 라면 물처럼 들끓기 시작하고 입사 3년 차가 되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겨서 주말에 침대에서 뒹굴뒹굴 대며 여행을 어디를 갈까 행복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미리 계획을 세울 만큼 행복한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8월에 출발하는 유럽행 티켓은 남아있지 않았다. 중국은 대학생 때 2번 여행을 갔기 때문에 어찌 보면 자연스럽게 가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 그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오래된 도시들이 몰려 있는 간사이를 목적지로 정했다. 이웃나라의 숙명과도 같이, 또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이기 때문에 더욱 직간접적으로 일본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경험하면서 자랐지만 막상 여행을 가보려고 하니 아는 게 일천했다. 친한 친구 중에 일본 만화 마니아가 있기는 했지만 학생 시절 만화책만 읽고 틈만 나면 만화만 그려댄 애라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괜히 일본 여행 카페를 기웃거려 보았는데 결과적으로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고, 거기서 알게 된 친절한 여자분과 나중에 사귀게 되는 부수적인 효과만 거두게 된다.


그래서 결국 3권으로 분책되는 일본 여행책을 사서, 간사이 지방을 따로 떼어 들고 갔다. 이때까지는 아직 아날로그 스타일의 여행을 하던 때라 랩탑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고 아직 캐리어 신세도 지지 않는 그야말로 backpacker이던 시절이었다. 아 새삼 그립네.


출발 전 날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바로 싸놓… 았다면 좋았겠지만 나의 사랑 DSLR과 삼각대 때문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고베와 오사카에서 야경을 찍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삼각대를 챙겨가려고 한 건데 이게 너무 길이가 길다 보니 기내용 캐리어에도 들어가지 않아서 백팩으로 꾸려봤다가, 다시 캐리어로 싸 봤다가 하다 보니 굉장히 한심한 기분이 들어서 다 때려치우고-어차피 캐리어에도 안 들어가는데 왜 고민을 했던 것인가-그냥 백팩에 삼각대는 따로 메고 가기로 결정했다. 이게 또 나중에 돌아올 때 문제를 일으키게 되지만.


짐을 가지고 한바탕 난리를 쳐가며 늦게 잔 바람에 시원스레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시간이 만만치가 않았다. 결국 누나가 공항으로 데려다줘서 오사카행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은 사실 이때가 처음은 아니었고, 대학교 2학년 유럽 배낭여행을 하러 갈 때 일본의 ANA 항공을 이용해서 갈 때의 스탑오버가 바로 오사카의 간사이 국제공항이었다. 갈 때는 ANA항공의 호텔(공항 바로 옆에 있는)에서 1박을 하고 올 때는 Transfer만 하는 여정이었는데. 어쨌든 그 후 9년 만에 다시 간사이 공항에 도착해서 밖으로 나와보니 엄청난 열기가 나를 덮쳐왔다. 말은 많이 들었지만 정말 살인적인 일본의 한여름… 이때가 8월 18일이었는데 해안도시다 보니 습도가 높아서 어디 도망갈 데도 없고 그냥 앉아서 삶은 만두가 되어가는 꼴이었다.


공항철도를 이용해서 시내로 가서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남바 근처의 호텔로 가는 길을 지도에 의지해서 찾는데 날씨는 덥지 메고 있는 백팩에 삼각대에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대충 비슷한 곳까지는 갔는데 일본의 도시들은 골목이 매우 복잡하게 되어 있는 편이라 어디가 어디인지 다 비슷해 보이고, 결국 길거리에 러닝셔츠 차림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할아버지께 여쭤보자 역시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을 뽐내며 상세히 가는 길을 가르쳐 주신다. 문제는 물어보고 있는 나는 영어, 열심히 대답해 주시는 할아버지는 일본어였다는 것이지만. 어찌어찌 호텔에 도착을 해보니 시간은 이미 다섯 시였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탈수가 올 것 같았지만 여행지에서의 게으름은 용납할 수 없는 짓이기 때문에 어둠이 내린 도톤보리 거리를 보러 나갔다.


오사카의 대표 먹거리 골목인 도톤보리의 초입

도톤보리(道頓堀, Dotonbori Canal)는 오사카의 중심부를 지나는 수로인데 지금은 그 수로 이름을 딴 거리가 되어있다. 도톤보리바시부터 니혼바시까지인데, 원래 이 일대는 극장가가 펼쳐져 있었는데 지금은 다양한 먹거리들과 수로에 면해 있는 수많은 기업들의 수많은 네온사인 광고판을 유명한 오사카의 No.1 관광지이다. 그런데 솔직히 왜 이게 사람들을 끌어들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판과 광고판에 흠뻑 적셔진 상태로 살고 있기 때문에 사실 별다를 것도 없는 전경인데 말이다. 물론 ‘일본에 와 있다’라는 사실과 여기저기서 일본어가 들리니까 바로 이웃나라 이건만 이국적인 감상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유명한 Glico의 간판

오사카 하면 여러 가지 대표음식이 있고 간사이 지방은 오코노미야키로도 유명한 데다가 특히 도톤보리에는 킨류 라멘을 비롯한 수많은 라멘집이 몰려 있었지만, 왠지 나의 선택은 일본식 커리였다. 이때 내가 이용한 항공은 ANA였는데 인천-오사카 구간에서는 기내식이 없기 때문에 아침 먹고 나서 아무것도 먹지 않은 터라 심하게 배가 고파왔다. 그렇게 나는 지유켄 센니치마에로 들어가서 이름조차 명물인 ‘명물 카레’를 주문해서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지유켄 센니치마에 본점의 대표메뉴, ‘명물카레’. 달걀의 고소한 맛이 커리의 약간 매운 맛을 부드럽게 잡아준다.

저녁을 먹고 도톤보리 거리의 다양한 간판을 구경하면서 휘적휘적 돌아다녔다. 아직 낮동안의 지열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고 습도는 여전해서 후끈후끈했지만 토요일 저녁의 적당한 열기에 그다지 넓지 않은 골목이 사람들로 가득가득 메워져 있는 거리를 거니는 기분은 썩 그럴싸했다. 그렇게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거리 구경을 하고, 한창 카메라에 관심이 많을 때라 카메라 샵의 양대산맥 중 하나인 비쿠 카메라(나머지 하나는 요도바시 카메라)를 마지막으로 호텔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땀에 절어 소금이 맺힐 지경인 옷들을 훌훌 벗어버리고 샤워를 한 후 사포로 드라이 캔 맥주를 마시자 더할 나위 없이 시원했다. 다음날의 목적지인 히메지와 고베의 정보를 훑어보고 멍하니 TV를 보다가 어느새 정신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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