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4, 오사카→나라→오사카
여행 4일째, 이 날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나라로 향하는 날이었다. 메인 목적지는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호류지(法隆寺, 법륭사)였는데, 왜 유명하냐 하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바로 이 호류지의 금당벽화를 그린 사람이 고구려의 승려인 담징이라는 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화재로 소실되어버린 금당벽화를 남긴 사람이 담징이든 아니든 그것과는 상관없이 이 호류지는 꼭 방문해야 할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열심히 돌아다니다 보니 높은 습도를 자랑하는 이 나라에서 슬슬 기운이 빠져나갔는지 상당한 피곤함을 느끼면서 나라에 도착해서 호류지로 걸어갔다. 호류지 역을 등지고 북쪽으로 걸어가면 되는데 이 날은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햇살을 가려주길래 ‘아 어제보다는 그래도 조금 시원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구름은 단순히 직사광선만 가려줬을 뿐 높은 습도의 위력으로 어디를 가도 찜통 같은 느낌 그 자체. 우리나라도 습도가 높은 건 마찬가지지만 일본은 도가 지나쳐서, 아 이런 데서 일본애들은 정말 잘도 사는구나 싶었다. 걸어가다가 탈수가 올 것만 같아 수시로 맥주를 들이켰다-라고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술을 마시면 빨개지는 얼굴 때문에 그럴 수도 없고. 결국 속수무책으로 더위에 당하면서 호류지로 걸어갔다.
이 호류지는 일본의 초창기 문화이자 중앙집권적인 특징을 가진 아스카 문화를 창시한 쇼토쿠 태자 시절에 창건된 절이다. 이 아스카 문화는 중국과 한국의 문화를 적극 받아들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중앙집권을 꾀하던 쇼토쿠 태자에게 불교의 통합정신은 기존의 혈연을 바탕으로 한 문화를 타파하는 데 유용한 도구였다. 그래서 불교를 중심으로 문화가 발달하게 되고 그에 따라 불교 사찰의 창건이 이루어지는데 이 호류지는 그때 건설된 것이다. 아스카 문화가 발달하던 7세기, 최초의 호류지는 601~607년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670년 화재로 무너지고 그 후 7세기 말~8세기 초에 재건된 것이 현재 남아 있는 호류지라고 한다. 물론 이것도 금당에 한정해서 하는 말이고 다른 건물들은 그 이후에 더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더 나중이라고 해도 천년에 육박하는 세월이고 원래 건물이 남아 있다는 금당을 비롯해서 후대에 계속 보수를 했기 때문에 완전히 오리지널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역시 대단하다. 이 호류지의 금당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실상은 더위에 시달리며) 걷다 보니 호류지의 입구에 도달했다. 호류지는 크게 서원(西院)과 동원(東院)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원부터 구경하게 되어 있고 거기로 들어가는 입구가 바로 난다이몬(南大門, 남대문)이다. 유럽의 다양한 언어에서 쓰이는 많은 어휘들이 라틴어나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해서 비슷한 발음이 많은 것처럼 동북아시아의 한자 문화권도 동일한 한자를 쓰는 단어는 발음이 거기서 거기라 대충 소리만 들어도 뜻을 유추할 수 있는 단어들이 제법 많은데, 이 난다이몬도 대표적인 예다. 우리말로는 “남대문”, 중국어로는 “난다먼”, 일본에서는 “난다이몬”이니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겨우 이 정도 차이인 거면 그냥 하나로 쓰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뭐 그런 건 어쨌든 원래 있던 난다이몬은 15세기에 화재로 태워먹고 다시 지은 것인데 이 난다이몬을 통과해서 쭈욱 뻗은 길이 중문을 거쳐 호류지의 금당까지 닿는 남-북 축을 잇고 있다. 그야말로 호류지의 대문인 셈.
난다이몬을 지나쳐서 걸어가면 호류지의 서원이 펼쳐지고,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담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나오는데 여기가 바로 호류지의 핵심 공간, 금당과 5층탑이 있는 곳이다. 여기로 들어가는 중문을 비롯해서 금당과 5층탑은 모두 1300년 전의 오리지널이 남아 있는 것으로 실로 그 가치가 엄청나다. 어떻게 목재가 천년 넘는 세월을 버틸 수 있는 것일까. 생명력이 끈질긴 편백나무(히노끼)를 사용한 데다 구조가 매우 치밀해서 그렇다고 하는데 하중은 그렇다 치고 정말 불가사의하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호류지의 건물들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재 구조물이다.
중문으로 들어가면 당연하다는 듯이 좌우에 금강역사상이 서 있다. 얘네들은 무려 창건 시기인 8세기에 조각된 것인데 그야말로 동북아 금강역사상의 표본이라고 해도 좋을 모습을 하고 있다. 세월이 켜켜이 덧입힌 비바람을 이겨내고 우뚝 서 있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다. 절의 금강역사상이라고 하면 절을 지키는 Guardian인 건데 부리부리한 눈매와 힘이 제대로 들어간 근육의 묘사가 단연 최고였다.
중문을 통과하면 호류지의 중심인 콘도(金堂, 금당)와 고주노토(五重塔, 오중탑)가 모습을 드러낸다. 여기에 있는 금당벽화야말로 80,90년대 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당연하다는 듯이 고구려의 승려인 담징이 일본에 건너가 그린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나타내 주는 사례로 배운 것인데, 실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담징의 생몰연도 이후에 호류지가 재건되었을(화재로 모두 불타 없어졌다는 기록이 존재)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에 현재는 이 금당벽화는 아마 담징의 작품이 아닐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담징의 화가로서의 네임 밸류가 떨어지냐 하면 그런 건 아니고 그저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고구려의 담징과 신라의 솔거는 삼국시대 한국 회화의 쌍두마차인데 솔거의 작품도 현존하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누가 더 뛰어나냐 하는 논쟁은 의미도 없고… 물론 솔거가 그린 황룡사의 노송도를 본 새들이 그 가지에 앉으려고 날아오다가 벽에 부딪쳐 죽었다는 일화가 있으니 솔거가 조금 더 임팩트가 있는 화가였나 싶기도 하지만. 새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솔거는 교묘한 재주를 부려 동족을 착각하게끔 만들어 죽음에 이르게 한 무시무시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니 웃음이 났다.
호류지의 금당벽화는 우리의 석굴암, 중국의 원강석불과 더불어 동양의 3대 미술품으로 일컬어질 만큼 뛰어난 작품이었는데 이걸 화재로 태워먹다니 우리에게도 있었던 숭례문 화재만큼이나 어이가 없다. 전쟁 때 폭격으로 태워먹었다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물론 금당벽화 말고도 다양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일부는 전시도 하고 있지만 하이라이트의 원본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건 역시 안타깝다.
경내를 천천히 걸으면서 구경을 하고 있자니 지붕의 용마루를 장식하고 있는 귀면기와가 눈에 띈다. 이건 귀신을 쫓는 용도로 건축의 곳곳에 사용되는데 사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여러 지역의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도깨비 대신 신화의 등장인물이 동일한 역할을 하기도 하고(그리스로마 신화의 Bes라던지), 저 멀리 베트남의 참 족이 세운 미썬(Myson) 유적지에도 비슷한 도깨비처럼 생긴 아이가 신전의 기단부를 장식하고 있기도 하고. 이런 것을 보다 보면 인간에게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게 적용되는 공통점들이 많은 것 같다.
호류지의 동쪽 끝에는 주구지(中宮寺, 중궁사)라는 조그만 절이 있어 그곳으로 향했다. 이 조그만 절까지 간 이유는 바로 여기에 (개인적으로) 일본 최고의 목상이 있기 때문이었다. 바로 반가사유상으로, 이건 정말 우리의 금동 반가사유상에 필적하는 수준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우리의 것은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이고 있는데 반해 조금 더 정자세를 하고 있는데 그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 유려한 옷자락과 턱에 갖다 댄 아름다운 손가락 등등이 정말 최고였다.
호류지와 주구지를 잘 구경하고 다시 나라역으로 돌아와서 나라 국립박물관을 구경했다. 일본은 많은 박물관이 사진 촬영이 금지라서 여기서도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다양한 불교의 유물들이 눈을 즐겁게 해 준다. 눈과 뇌는 아주 즐거운데 이제는 배가 심하게 고파와서 박물관에서 나와 나라마치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서 점심인지 저녁인지 모를 식사를 했다(늦은 오후였으니까).
이 날은 무겁게 이고 지고 온 나의 육중한 삼각대를 그냥 놀려 둘 수가 없어 오사카의 야경을 찍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조금 일찍 오사카로 돌아오니 여섯 시였다. 하루 종일 달궈진 무쇠와 흡사한 기분을 느끼며 호텔에서 다리를 조금 쉬어주고 있자니 나가기가 너무 귀찮아졌지만 역시 삼각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그냥 있을 수가 없다. 다시 힘을 내서 호텔을 박차고 나와 요도바시 카메라에 들러서 비쿠 카메라에서 찾지 못했던 필터를 하나 사고, 굳이 사지 않아도 되는 Strap까지 괜히 사서 목적지로 향했다. 먼저 갈 곳은 오사카 시청.
야경을 찍는데 시청이라니, 할 수 있겠지만 이건 당당히 오사카 관광안내 팸플릿에 소개되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건물로 들어가려 하니 경비 아저씨(라기보다는 할아버지)가 무슨 일로 왔냐고 묻는다. 아니, 묻는 것 같았다 일본어였으니까. 대충 영어로 사진 찍으러 왔어요 어쩌고를 말하며 카메라를 보여주자 ‘아~샤신!’하면서 통과. 그렇게 전망대로 올라가니 아 정말 멋진 야경이 나를 반겨준다. 여기서 바라보면 한신 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맞겠지?)가 보이는데 흡사 서울 응봉산에서 바라보는 야경과도 흡사한 느낌의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오픈된 공간이 아니라 실내이기 때문에 유리창에 빛이 반사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향한 곳은 우메다 스카이 빌딩의 공중정원이었다. 두 빌딩의 사이를 42층이던가에서 연결해서 만든 전망대로 올라가 보니 역시 예상대로 커플 아니면 관광객들로 북적댔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게 조심조심 삼각대에 카메라를 마운트하고 셔터를 눌렀다. 대도시의 야경을 찍고 있자면 뭐랄까 현대 문명의 위대함이랄까, 특히 회색빛인 낮과는 달리 어두운 밤에 불빛으로 물든 모습의 아름다움이 상당히 감상적인 느낌이 든다.
야경을 모두 즐기고 돌아오니 무려 열한 시. 상당히 늦었지만 멋진 야경을 즐긴 다음이라 기분은 좋았다. 이 다음날은 교토로 이동해야 해서 대충 짐을 모조리 싼 다음 교토의 버스노선도를 살펴보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