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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QUEST, 일본 간사이, 교토

Day 5, Osaka→Kyoto

by Rainy spell

여행의 절반이 지나가고 있을 무렵 드디어 교토로 이동했다. 이 여행의 목적은 히메지성, 호류지(나라에서 제일 기대한 건 호류지였는데 이스이엔을 건진 건 덤), 그리고 교토 전체(!)라고 해야 할 만한 여행이었으니 하이라이트로 진입하는 느낌.


세계의 각국을 보면 대부분 역사상의 수도가 현재도 그대로 수도 역할을 하는 나라가 많은데 일본은 현재의 수도인 도쿄가 정식 수도가 된 것이 150년 남짓하니 그 역사가 일천하다. 19세기 중후반까지 일본의 수도였던 곳은 도쿄가 아닌 교토다. 물론 한가한 어촌에 불과했던 도쿄(원래 이름은 에도)가 수도로 선정된 것이 하루아침에 이 어촌을 수도로 삼겠다!라고 하게 된 건 아니고, 일본의 전국시대를 종식시키고 최후의 승자가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자신의 바쿠후(막부)를 에도에 설치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수도 역할을 한 지 400년 정도는 된다. 도쿠가와막부 시절을 에도막부 시대라 부르기도 하는 이유는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실질적으로는 쇼군에 의한 통치이지만 명목상으로는 일왕이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수도의 자리는 교토가 메이지 유신 때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니 터키의 앙카라-이스탄불 수준은 아니어도 스페인의 마드리드-톨레도 수준은 된다. 스페인은 좀 얘기가 다르긴 한데 원래 지방색이 강하고 국가가 여러 갈래로 쪼개져 있다가 무슬림들에게 영토를 빼앗겼다가 레콩키스타로 다시 국토회복을 하는 과정에서 소왕국들이 합치기도 하는 등 역사상 수도가 톨레도라고만 하자면 조금 아리송한 측면이 있다. 얘기가 너무 새니까 수도 얘기는 이쯤 하기로 하고.


아침에 오사카에서 교토로 이동해서 호텔에 짐을 맡기러 버스를 타고 걷고 하고 있자니 날씨는 더운데 백팩과 크로스백과 삼각대를 지고 이고 가는 길이 상당히 고역이다. 군대를 이십대 초반에 가야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그때가 체력적으로 제일 팔팔하기 때문이다. 교토에키(교토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니죠죠 근처의 호텔로 가서 짐을 모두 맡기고 크로스백과 카메라만 달랑 들고 다시 길을 나서니 그렇게 가뿐할 수가 없었다.


교토에서의 첫 번째 목적지는 기요미즈데라(清水寺, 청수사). 교토로 천도하던 시기인 8세기 후반이 이 절이 지어진 시기이니 나라의 유적지들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되었다. 물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오리지널은 아니고 전국시대를 종식시킨 도쿠가와막부의 제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재건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오늘날 이 절 건물들의 나이는 무려 400살, 게다가 그 아름다움으로 유명해서 교토에서 가장 사랑받는 방문지라는 여행책의 설명에 더욱 기대가 되었다. 기요미즈데라로 올라가는 길은 상당히 가파른 데다 내륙이지만 습도가 높아 금세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 길이 바로 교토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유명한 산넨자카여서, 다 올라가면서 보니 과연 그 명성에 걸맞게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가득해서 흘러내리는 땀의 불쾌함을 잊게 해 준다.



교토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유명한 산넨자카


기요미즈데라는 교토에 있는 사찰 중 드물게 천도 이전에 지어졌는데 여기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정이대장군인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그는 임신 중인 아내를 위해 사슴을 먹이고자 사슴을 사냥하고 돌아오는 길에 엔친이라는 스님을 만나게 되고, 살생한 것을 뉘우치며 관음보살에게 귀의하고 절을 크게 중창했다고 한다. 산자락에 지어져 있어 나라에서 본 절들과도, 교토에서 (기요미즈데라를 구경하던 당시에는)보게 될 절들과도 다른 입지를 가진 기요미즈데라는 당도해서 보니 정말 사람이 많았다.


절로 들어가는 입구인 니오몬(仁王門, 인왕문)


입구에서 관람객을 반겨주는 2개의 문은 모두 기둥과 단청이 빨간색으로 되어 있어 매우 강렬한 인상을 준다. 절에 쓸 색으로는 적절치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일견 들기도 하는데, 니오몬은 너무 색깔이 쨍해서 그런 느낌이 조금 더 강하고 그 뒤에 있는 사이몬은 적당히 바랜 듯한 색감이라 위화감이 별로 없는 것도 재밌었다. 자고로 역사 유적이라고 하면 오래된 시간만큼의 느낌을 가지고 있어야 좋다.



니오몬에서 약간 위쪽에 있는 사이몬(西門, 서문)


가람 배치가 일직선… 이라기보다 직선 상에 약간 지그재그 같은 느낌으로 되어 있어 꽤나 자유분방한 느낌을 준다. 왜 이렇게 지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딱 정해진 양식으로 짓지 않은 것도 그 나름대로 편안한 느낌이었다. 건축의 양식이 정형화되기 이전 초창기에는 이런저런 시도가 있기 마련이라 그럴 수도 있고, 문화가 전파되며 현지화되는 과정에서 그럴 수도 있다. 불교는 저 멀리 인도에서부터 동쪽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에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니 받아들이면서 변형되거나 융합해서 새로운 형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거다. 중국 시안을 여행할 때 시안의 모스크인 청진사를 구경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동의 모스크 모습과는 완전히 달리 현지화된 모습을 하고 있어 재밌게 구경한 적이 있다. 시안의 무슬림 구역에 있는 청진사는 굉장히 멋진 모스크인데 역사적으로 의의도 대단하고 하지만 이건 일본과 상관없으니 차제에 써보기로 하고.



본당 건물로 가는 길에 있는 회랑. 등갓의 디자인이 멋지다


그렇게 기요미즈데라를 구경하며 가는 길에 왼쪽에 지슈신사(地主神社, 지주신사)가 있다. 자그마한 신사이지만 이 신사가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신사로 그 기원이 무려 조몬시대(기원전의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물론 이건 딱히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건 아니고 일본인들의 추정일 뿐이지만. 현재 보고 있는 건물들은 기요미즈데라와 마찬가지로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재건한 것이다.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지슈신사 입구의 도리이


많은 사람들이 이 신사를 구경하러 오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는데, 이 신사가 사랑의 신에게 바쳐진 신사이기 때문에 사랑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이나 이미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그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방문을 하는 것이다. 물론 미신이지만 신사 경내에는 돌이 두 개가 있어 눈을 감은 채 한쪽 돌에서 다른 쪽 돌로 갈 수 있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감성 예민한 십 대 중후반이나 이십 대 초반 정도 되는 사람들이 사랑을 이루려고 눈을 감고 돌 사이를 더듬더듬 왔다 갔다 하는 걸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런 사람은 없었다. 모든 걸 내려놓은 수준이거나 짝사랑이 극에 달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아니면 그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그런 짓거리를 하기에는 너무 창피해서 그런가 보다.


사랑을 이루어주는 돌, 코이우라나이노이시(恋占いの石). 여기서 1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다른 한 쪽 돌이 있다.


지슈신사를 구경하고 혼도(本堂, 본당)에 도달했다. 지붕이 기와가 아니고 노송나무 껍질을 얇게 만들어 촘촘히 붙인 방식으로 만드는 히와다부키로 되어 있는데 이 지붕 형태가 우리나라에는 없는 방식이라 굉장히 독특한 느낌을 주고, 오래된 목재의 색깔과 어울려서 상당히 멋지다. 게다가 산의 지세를 이용해서 일종의 테라스인 부타이(舞台, 무대)가 있는데 여기서는 말 그대로 춤이나 공연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 놓았다. 여기서 보는 경치가 상당히 멋지지만 혼도와 같이 즐기려면 역시 혼도 뒤쪽으로 와서 자연과 함께 즐기는 게 최고다.


무대가 설치되어 있는 혼도. 기요미즈데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절을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는 오타와 폭포가 있고, 세 줄기 물이 떨어지고 있는데 손잡이가 긴 바가지가 비치되어 있어 마셔볼 수 있다. 물이 굉장히 맑아서 이게 그대로 이 절의 이름인 기요미즈(清水)가 된 것이다. 세 줄기 물은 각각 건강, 사랑, 학문을 상징해서 그 줄기의 물을 마시면 해당하는 상징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세 줄기를 욕심내서 다 마시면 운수가 오히려 나빠진다는 말도 있다. 물론 이건 후대의 호사가나 관광지의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지어낸 말인 것 같지만. 많은 방문객, 관람객들은 이 스토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적당히 한 줄기의 물만 받아서 마신다.


오타와 폭포의 물을 받아 마시기 위해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


기요미즈데라에서 시간을 한참 보내고 다시 산넨자카와 니넨자카를 통과해서 내려왔다. 오전에 올라갈 때보다 힘은 덜 들었지만 이제 한낮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 덕분에 기온이 높다 보니 체감 기온은 더욱 더웠다. 구름이 많았던 교토의 하늘은 오후로 들어서며 인정사정없는 햇살로 지표면을 달구고 어디 도망갈 곳도 없는 나는 그대로 햇빛을 받으며 지온인으로 걸어갔다. 그대로 있으면 잘 달궈진 팬에 올려놓은 버터 한 조각처럼 녹아버릴 것만 같은 느낌. 관광지라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노리고 인력거꾼이 있는데 정말 존경스러웠다. 이 날씨에서 저걸 끌고 달리는 게 과연 가능은 한 것인가 싶었지만 돈벌이가 되니 있는 거겠지. 타는 입장에서도 이런 수준이라면 미안해서 마음 편히 타고 있을 수도 없을 것 같다. 너무 더워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먹었는데 몇 입 먹기도 전에 녹아버려서 물처럼 콘에 담긴 것을 마셔야 하는 수준.


지온인으로 가는 길. 유럽의 도시라면 말이 끄는 마차가 있겠지만 여기는 일본이라 인력거꾼이 있다


열심히 걸어서 지온인(知恩院, 지은원)에 도착했다. 이 사찰은 기요미즈데라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일본 정토종의 총본산이다. 이 절은 일본의 정토종을 연 호넨 스님의 암자가 있던 곳에 지어졌지만(13세기) 화재로 파괴된 것을, (이번에도)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17세기에 재건한 것이다. 경내를 둘러보기만 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크기가 큰데 들어가는 길에 서 있는 산몬(三門, 삼문)은 그야말로 장대한 크기를 자랑한다. 그건 그렇고 이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은원, 은혜를 아는 집이라… 부처님 은혜를 아는 집이라는 뜻이겠지.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말이 무색한 크기의 산몬. 일본에 현존하는 산몬중에 가장 크다.


이 절에는 여러 가지 국보와 보물이 있는데 본당 건물인 미에이도(御影堂, 어영당)가 그 중앙에 위치해 있다. 어영(미에이)이라는 건 존귀한(또는 신성한) 그림이라는 뜻이니 곧 어영이 있는 건물이라는 뜻인데 여기에 종토종의 창시자인 호넨 스님의 초상이 모셔져 있어 그게 그대로 건물의 이름이 되었다. 이 미에이도 또한 규모가 엄청나서 산몬 못지않은 장대함을 느끼게 한다. 지온인은 일단 크고 거대하게 만들고 보자… 가 모토였는지 범종 또한 70톤이 나가는 위용을 자랑한다. 새해 이 종을 108번 타종하는 모습을 중계한다고 하니 우리나라 보신각종 타종의 지위. 원래 보신각에 걸려 있던, 세조 때 만든 종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 있고 현재 걸려 있는 건 복제품이지만.


지온인의 본당인 미에이도


도쿄의 동쪽에 위치한 기요미즈데라, 거기서 약간 북쪽의 지온인, 다음 차례는 지온인에서 약간 북동쪽에 있는 난젠지다. 오전에 이동하느라 여행 시작이 평소보다 조금 늦은 데다 쇼핑보다 절간을 더 좋아하는 탓에 세 군데를 방문하는 것이 이 날 일정의 전부였다. 게다가 교토의 대부분의 볼거리는 다섯 시까지 밖에 운영을 안 하기 때문에 더욱 시간이 많지 않아 걸음을 재촉해서 난젠지(南禅寺, 남선사)로 향했다.


난젠지의 법당


난젠지는 일본 선종의 중요한 사찰로 일왕 가메야마가 13세기에 지었다가 몇 번의 화재로 계속 태워먹고 다시 짓기를 반복하게 되고 1597년 재건된다. 게다가 특이하게 수로교를 가지고 있는데 이건 1890년 건설한 것이다. 유럽 곳곳에 남아 있는 고대 로마시대 건설한 수로교와 비교하자면 이건 이제 걸음마를 뗀 아이 수준이겠지만 어쨌든 독특하다.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고대 로마의 수도교중 하나인 프랑스에 있는 퐁 뒤 가르를 프랑스 남부-파리를 여행할 때 가려다가 도저히 시간이 안 맞아서 못 갔었는데 새삼 아쉬워지네.



난젠지 경내를 통과해서 건설된 수로각. 지금도 물이 흐르고 있다.


난젠지를 통과해서 나가면 남쪽으로 조그만 정원을 가진 난젠인(南禅院, 남선원)이 있다. 여기는 크기도 작지만(어디까지나 이 날 본 사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람이 거의 없어 조용한 가운데 절의 느낌을 잘 느낄 수 있어 마음에 들었다.


난젠인의 정원. 수목이 흐드러져 자연에 파묻힌 느낌이 좋았다.


이렇게 오사카에서 교토로 이동한 이 날의 여정은 끝이 나고, 저녁을 먹고 야경을 찍으려고 우선 호텔로 돌아가려고 버스를 탔는데 엄청난 비가 쏟아진다. 그냥 대충 맞으면서 가면 되는 수준이 아니고, 그야말로 장마철의 비와 스콜을 합해 놓은 느낌으로 쏟아져 내렸다. 중간에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데 그럴 엄두도 못 내고 교토에키 앞(거의 모든 버스가 발착하는)까지 갔다, 그곳의 버스 정류장엔 지붕이 있어 비를 피할 수 있으니까. 나는 젖는다 쳐도 디지털카메라에 비는 쥐약이다.


그렇게 교토역의 버스 정류장으로 가니 정류장 옆에 지붕이 있는 부스가 있어 우선 거기 들어가서 비가 잠잠해 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부스 안에는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여남은 명 있었는데 옆에 있는 여학생(쯤으로 보였다)에게 오늘 비 온다고 했나요? 하고 물어보니 그렇단다. 그걸 알면서 너는 왜 우산을 안 갖고 나왔니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고 있는데 어디서 왔냐고 하길래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한국 아이돌을 좋아한다며 이것저것 재잘대기 시작했다.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는데 여름 방학이라 고향인 교토에 와 있다는 등등의 얘기. 나도 심심한 차에 같이 얘기를 좀 하다가 도저히 비가 그칠 생각을 안 해서 비에 잠깐 온몸이 노출될 걸 각오하고 등을 조금 구부려서 카메라 가방을 감싸고 호텔로 가는 버스를 타러 뛰어나갔다.


호텔에 도착해서 대충 몸을 말리고 날씨를 체크해보니 비는 밤늦게까지 내릴 예정이었다. 야경은 결국 포기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려 했으나 비는 계속 엄청나게 내리고 아침에 이동한 여파인지 몸이 피곤해서 이도 저도 다 귀찮아져서 근처 편의점에서 라면과 치킨 샐러드를 사 왔다. 그렇게 저녁을 때우고, 비 덕분에 강제로 야경 일정이 스킵되어 남은 시간을 앵거스 컨스텀의 해적의 역사(대학생 때 읽은 것이지만 다시 읽으려고 가지고 간)를 읽다가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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