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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 QUEST, 일본 간사이, 교토

Day 6, Kyoto

by Rainy spell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제 늦은 오후부터 그렇게 기세 좋게 내리던 비가 거짓말처럼 그쳐 있었다. 이 날은 교토의 서부와 서북부를 여행하는 날이었는데 여행 전 마음을 빼앗겼던 대나무 숲이 있는 아라시야마와 교토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건축물 중 하나인 킨카쿠지가 포함되어 있는 일정이었다. 돌이켜보면 그야말로 절간만 계속 구경하는 하루였는데 이런 계획을 들으면 어떤 사람들은 따분하게 그게 뭐야 할지도 모르겠다. 식도락을 위해, 쇼핑을 위해 일본 여행을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여행이란 유적지와 유물과 예술작품, 오래된 건축물을 보러 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일정이 당연한 거다.


호텔을 나서니 어제의 무더위로 달궈진 지면이 식은 것인지 기온도 전날 아침보다 약간이나마 내려간 듯했고, 하늘에는 구름이 짙게 펼쳐져 있어 햇살을 가려줘서 도시에는 푸르른 느낌이 가득했다. 시작은 아라시야마에 있는 텐류지(天龍寺, 천룡사)였다. 이 절은 에도 막부 이전의 막부인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일왕 고다이고를 위해 지었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의 건물은 다 태워먹(?)고 지금 보는 것들은 대부분 메이지 시대 이후 지은 것이지만.


4AFCDDA9-36E2-4ED9-88A2-145054EEE335.jpeg 텐류지의 중심 건물인 오호조(大方丈, 대방장) 건물의 지붕과 파란 하늘


교토에 있는 선종의 5대 사찰 중 제1위의 사찰로 위엄을 가지고 있었지만 무로마치 막부가 몰락하며 같이 몰락해 버렸다. 사실 무로마치 막부는 그전의 가마쿠라 막부와 마찬가지로 얼마 못가고(대략 150년 조금 안 되는 기간) 쇼군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며 명목상 쇼군은 존재했지만 지방 영주인 다이묘들을 전혀 장악하지 못하고 완전한 약육강식의 힘을 앞세우는 전국시대가 펼쳐진다. 그렇게 난리가 난 일본은 싸움박질을 하다가 오다 노부나가가 포르투갈에서 구한 조총을 활용하여 재통일의 기반을 닦고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 다음 후에 벌어진 내란에서 최종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쓰가 에도 막부를 열게 되는… 뭐 그렇다고요.


9FA81CAB-E6F7-40D1-B41A-5E28454D0352.jpeg 그나마 유일하게 창건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 소겐치(曹源池, 소원지) 정원


경내가 제법 넓고 아직 본격적인 더위가 덮쳐오기 전이라 제법 쾌적하게 구경을 하고 절의 북쪽을 통해 아라시야마 대나무 숲길로 나아가는 길에 작은 약수터가 있었는데 새겨진 글귀가 그야말로 철학적으로 마음에 깊숙이 들어왔다. 적혀 있던 두 글자는 바로 세심. 이미 내 인생과 이 세상에 찌들 대로 찌들어 있는 데다가 속물근성으로 점철되어 있는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말인 것 같다. 이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일지도.


4EC407D3-5A50-4107-ACF3-7C7874590C80.jpeg 세심(洗心). 마음을 씻어라


텐류지의 북쪽으로 나오면 조그마한 신사가 하나 나온다. 여기는 일왕의 공주가 이세 신궁의 제의에 참여하러 가기 전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기 위해 머물렀던 노노미야 신사(野宮神社, 야궁신사)다. 크기는 정말 자그마한데 역사는 그야말로 오래되어 헤이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세계 최초의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 유명한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 원씨물어)에도 등장한다. 물론 ‘소설’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기원전 수천 년 전부터 존재한 신화나 전설은 당연히 소설의 많은 요소들을 가지고 있으니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어쨌든 선발된 공주는 당연히 결혼하지 않은 처녀여야 했는데 이건 로마시대의 여사제인 베스탈리스(VESTALIS, 영어로는 VESTAL)도 마찬가지여서 처녀성을 간직해야 했고 몰래 통정을 하면 산채로 매장당하는 끔찍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적당히 넘어가기도 하고 해서 실제로 형을 집행하는 건 굉장히 드물었던 모양이지만.


6A687CDA-FF91-42CB-BE2A-78F29E602B68.jpeg 그야말로 오래된 기원을 가진 노노미야 신사


노노미야 신사를 나와 드디어 기대해 마지않던 아라시야마 대나무 숲을 걸었다. 대나무 숲이라는 건 굉장히 독특한 풍광을 자랑하는데 모든 자연은 아름답다 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대나무 숲은 정말 멋지다. 줄기 가지 잎 그 모든 게 푸르른 녹색이라는 게 눈을 편안하게 해 주고, 휘어서 자라지 않아 정말 대쪽같이 쭉쭉 뻗어 있어 시원시원하고, 바람이 불면 정말 멋진 소리가 난다. 대숲에 바람이 일면 호랑이가 나타난다는 옛말도 있는데 교토에, 아니 역사상 일본에 자생 호랑이는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럴 걱정도 없이 그냥 아름다운 대나무를 잔뜩 즐기면서 걷기만 하면 되는 기분은 정말 즐거웠다. 달리 사군자의 하나에 대나무가 들어 있는 게 아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순간. 어렸을 때 외갓집의 뒤뜰에 바로 이 대나무 숲이 있어서 한여름에 들어가면 그 그늘 아래서 바람이 불어와 그 열기를 식혀주었던 기억이 났다.


62A1D0B5-61D7-4FEB-9A43-78CE5ABED66E.jpeg 빼곡히 들어차 있는 아라시야마의 대나무 숲


부지런히 다음 목적지인 교토의 서북부-많은 사찰이 몰려 있는-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교토는 꽤 넓은데 지하철이 2개 라인밖에 없어서 효율이 조금 떨어지고 아무래도 바깥 풍경을 보면서 이동을 할 수 있고 거의 전 지역을 커버하는 버스가 이용하기가 더 좋다. 아라시야마에서 나와 서북쪽으로 들어가면 처음 만나게 되는 절이 닌나지(仁和寺, 인화사)인데, 일본 진언종의 신사파의 총본산으로 888년 창건된 유서 깊은 절이다. 교토 대부분의 유적이 그렇듯 시작은 정말 오래되었는데 일본 전국시대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오닌(應仁, 응인, 난이 발생한 해의 연호)의 난 때 대대적으로 파괴된 것을 도쿠가와 이에미쓰(이 정도면 교토의 재건은 거의 이에미쓰가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지원으로 재건한 것이 오늘날의 닌나지다.


2942D638-06B5-477E-BE48-0E6A40BEAF12.jpeg 닌나지의 입구. 총본산인화사 라는 글이 오른쪽 현판에 보인다


이곳은 잘 정돈된 정원이 아름다운 데다 교토에서 가장 늦게 벚꽃이 피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언젠가 시간이 나면 일본의 사쿠라 라인(벚꽃이 피기 시작하는 비슷한 위도대를 동서로 연결한 선)을 따라 올라가며 큐슈부터 홋카이도까지 유적지를 여행하고 싶은 계획이 있기는 한데, 과연 실현을 하려면 언제가 되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역시 규모가 아침에 본 텐류지만큼이나 크게 느껴지는 닌나지를 구경했다.


8B2DD847-65DB-4E24-AD05-F63252E336E5.jpeg 닌나지의 정원. 꽤 넓은 공간인데 모래 표면에 이런 무늬를 유지하려면 정말 관리가 어려울 듯


AA5E9E9E-A000-4AA3-B444-E06044EF6348.jpeg 여기는 가을에 오는 게 더 아름다울 것 같다


닌나지를 구경하고 바로 북쪽에 있는 선종 사찰인 료안지(龍安寺, 용안사)로 향했다. 용이 안식을 얻는 절이라는 뜻인데 이 절을 지은 사람은 오닌의 난 주역 중 하나인 호소카와 가쓰모토로 1450년에 절을 짓고 얼마 안 가(라기보다는 그의 생전에) 11년 전쟁인 오닌의 난이 벌어지고 전 일본은 양쪽으로 쫙 갈라져 16만 대군을 동원한 동군의 수장인 호소카와 가쓰모토는 야마나 소젠이 이끄는 9만 병력의 서군을 상대로 티격태격 싸우게 된다. 그러던 중 가쓰모토는 1473년 사망하고 전란으로 파괴된 료안지를 포함한 그의 자산을 선종에 양도하고 1488년에 그의 아들인 호소카와 마쓰모토가 료안지를 재건한다. 호소카와 가쓰모토가 용이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인물은 아니지만 쇼군에 이은 2인자의 위치에 있던 만큼, 왠지 이 절의 이름이 그의 죽음과 얽혀 미묘한 감상을 준다. 영어로도 The temple of the Dragon at Peace니까.


FB1E95CA-B6E7-4EC5-A214-6455252DFFAB.jpeg 료안지의 산몬. 이 산몬은 왠지 가로 세로의 비율과 처마의 느낌이 우리나라의 것과 닮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료안지는 선종의 사찰이기도 하고 또 무로마치 막부 시대부터 일본의 선종 사찰에서 발달한 가레산스이(枯山水, 고산수)식 정원의 가장 훌륭한 작품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가레산스이는 물을 쓰지 않고 모래와 돌만을 사용하여 산수풍경을 나타내는 일본의 독특한 정원 양식으로, 모래는 바다(또는 물), 돌은 섬을 뜻한다고 한다. 이 바다를 상징하는 부분을 확장한 개념으로 우주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선문답이라는 말이 있듯 선(禪)의 세계는 넓고도 심오하며 또 가끔 보면 선을 논하거나 설파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봐도 본인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기는 하는 건가 하고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경우도 있으니, 어쩌면 꿈보다 해몽이 좋을 수도 있는 경우도 있지 않나 싶다. 어쨌든 료안지의 가레산스이 정원은 하얀 모래 위에 돌이 15개가 있는데, 어느 위치에서 보더라도 15개의 돌 전부를 볼 수 없는 교묘한 배치다. 이건 모든 걸 다 볼(가질) 수는 없으니 안분지족하고 교만에 빠지지 말아라 라는 것의 메타포이니 정말 심오하다 할 만하다. 그리고 바로 이 정원을 보려고 전세계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DA0F895C-5FD4-4D87-95F7-70D7531A2119.jpeg 그런데 사실 열다섯 개 돌이 다 보이는 위치가 있다. 앉아서 보면 잘 안 보이는데 구석 포인트에 서서 보면 다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그렇게 료안지의 심오한 의미를 담은 정원에 경탄을 하다가 나와서는 교토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의 하나인 킨카쿠지(金閣寺, 금각사)로 갔다. 이 절은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가 별장으로 사용하려 만든 것을 그의 사후 절로 용도변경한 것이다. 금박을 입힌 샤리덴(舍利殿, 사리전,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인 킨카쿠가 유명하여 금각사로 알려져 있지만 이건 별칭이고 원래 절의 이름은 로쿠온지(鹿苑寺, 녹원사)이다.


A37453B7-2FEF-4690-BA26-2DDB0C4ECA45.jpeg 로쿠온지로 들어가는 입구. 교토의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라 이미 엄청난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킨카쿠로, 바로 앞에 있는 연못인 쿄코치(鏡湖池, 경호지, 거울호수연못이라는 뜻이니 정말 즉물적인 이름이다)에 반영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금박을 입혔기 때문에 원래대로라면 고색창연한 목재와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적당히 빛바랜 금박의 절묘한 조화를 볼 수… 있었겠지만 오리지널 건물은 그만 1950년에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 견습승려의 방화로 전소되고 말았다. 우리나라 남대문 화재 같은 이야기다. 문제는 그래서 재건을 했는데 이게 너무 밝은 금박으로 해 놓아서 정말 금이 아닌 다른 싸구려 재료를 쓴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몇 장 남지 않은 화재 이전의 사진을 보면 오랜 세월을 견뎌낸 목조 건물 특유의 느낌과 역시 풍화의 과정을 거친 금이 오랜 세월을 버틴 건물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으로 철철 흘러넘치는데 이 복원 건물은 너무 경박스럽다. 말이 복원이지 그냥 현대의 기술을 사용해 날림으로 지은 모조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서 너무 안타까웠다.


4104092F-7486-462E-8FDE-07E918773284.jpeg 복원이라는 이름이 어울리지 않는, 재건된 킨카쿠


그런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구경을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단체관광객이 들어오며 가이드가 ‘여기가 사진 찍기 제일 좋으니까 여기서 사진 찍으시고 뒤편으로 돌아서 나오세요. 사람 너무 많으니 오래 계시지 말고 입구에서 20분 후에 만나요’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시간이 부족하고 단시간에 최대한 많은 곳에 가서 증명사진을 남기기 위한 여행이라 해도, 그런 걸 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이런 식의 여행은 해도 너무한다 싶다. 나는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것은 두 가지, 전쟁과 단체 패키지여행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여행 가이드들의 수준이라는 게… 물론 아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좋은 가이드를 만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그렇게 로쿠온지(킨카쿠지)를 끝으로 쿄토 서북부에서 가려고 했던 곳들은 마무리가 되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동북부로 향했다. 아침 일찍부터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정말 바쁜 하루다. 동쪽에서의 첫 방문지는(이 전날 동쪽에서 간 난젠지가 있었지만) 에이칸도(永観堂, 영관당)였다. 이곳은 원래 귀족의 사저였는데 853년 어느 승려에게 주었다고 한다. 현재는 정토종의 사찰로 경내에 약 3천 그루의 단풍나무가 있어 교토의 단풍 명소라고 하는데, 내가 간 건 여름이었기 때문에 그 절경을 볼 수는 없었고…


F2B6E07A-3308-4C09-B2B2-E3A891BF4C64.jpeg 에이칸도의 가레산스이 정원


에이칸도의 원래 이름은 젠린지(禅林寺, 선림사)인데 7대 주지가 에이칸 율사의 이름을 따 에이칸도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사찰은 산기슭에 지어져서 건물들이 고저차를 두고 지어져 있고 각 건물들을 연결하는 복도가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멋지게 굽이치는 재미있는 곳이다.


D0786FA0-9A3B-4792-A63A-E08CCD9A6A78.jpeg 건물들을 연결하는 가료로(臥龍廊, 와룡랑). 이름 그대로 용이 누워있는 것처럼, 롤러코스터의 레일을 떠올리게 한다


아침부터 정신없던 이 날의 마지막 목적지는 긴카쿠지(銀閣寺, 은각사)다. 킨카쿠지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원래 이름은 지쇼지(慈照寺, 자소사)인데 킨카쿠지의 금박에 대응해 은박을 입힌… 것은 아니고 입히려고 했다 카더라는 역사가 있어 긴카쿠지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절을 세운 것은 무로마치 막부 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인데, 3대 쇼군인 요시미츠가 세운 킨카쿠지의 킨카쿠를 모방해서 지었다고 한다.


ECDBADE3-CD32-4E2E-90B2-C342DD0E62B8.jpeg 조용하고 소박한 멋을 자아내는 긴카쿠지의 모습


킨카쿠지에 비해 사람도 없고 더 조용하며, 선종의 정신에 입각해 지은 곳이라 그런지 소박하고 간결한 멋이 있어 나는 이곳이 훨씬 마음에 들었다. 킨카쿠가 오리지널로 남아 있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긴카쿠의 손을 들어주었을 것 같다, 다보탑과 석가탑중 석가탑이 더 마음에 드는 그런 느낌으로.


A3520CD7-5B9D-4F9B-9391-80AF3603D3EB.jpeg 원본이 남아 있어 더욱 아름답게 느껴졌던 긴카쿠


정말 하루를 꽉 채워 여행한 교토에서의 2일째는 이렇게 긴카쿠지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되고, 그 앞에 있는 ‘철학의 길’을 천천히 걸었다. 교토의 철학자 니시다 키타로가 이 길을 거닐며 사색을 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여름이라 해도 지지 않았건만 다섯 시면 모든 볼거리가 문을 닫는 교토에서의 하루 일정을 마무리 하기에 참 적당하다 싶은 길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바쁘게 돌아다녔던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런 느낌으로.


F8352DDC-A31B-48C8-A539-F05AA594EC79.jpeg 철학자의 길. 원래 ‘사색의 작은 길’이라 했다 하는데 원래 이름이 더 좋은 것 같다


이래저래 이 쪽은 번화가가 아니고 절들만 잔뜩 있고 주택가인 곳이라 배는 너무 고파오는데 눈에 들어오는 식당이 없었다. 게다가 비까지 한두 방울 내리기 시작해서 허름한 식당이 있길래 다짜고짜 들어가서 카레우동과 새우튀김 세트를 주문했다.


B6DF636C-47D1-411E-AD91-F72025184C09.jpeg 새우튀김과 정말 기대했던 카레우동 세트. 카레가 너무 묽어서 실망만 했던.


너무 기대했던 카레우동은 별로였지만 어쨌든 배는 찼겠다, 호텔로 돌아와서 전날 못 찍은 야경을 찍으려 하는데 도무지 비가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기세 좋게 내리기만 했다. 우산은 있지만 카메라 레인커버가 없으니 나갈 수가 없다. 교토에서 야경을 찍을 수 있는 기회는 오늘이 마지막인데, 조금 늦더라도 비만 그치면 나가서 야경을 찍어주겠다! 하고 야심차게 기다렸지만 하늘이 저버렸는지 비는 그치지 않고… 결국 기다리다 지쳐 아 나와 교토의 야경은 인연이 안되나 보다 생각하고 야경을 마구 찍는 대신 아사히 맥주를 마구 마시고는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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