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는 <사피엔스>의 3부 인류의 통합 부분을 다룰 것입니다. 본인이 알고 있던 배경지식과 비교하여 읽는다면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이제 <사피엔스>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형식적으로 보면 절반을 넘게 달려왔는데 지금까지 느낀 <사피엔스>에 대한 생각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우리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인류의 역사의 바다에서 수영을 시작해 봅니다.
인간은 농업혁명 이후 더 크고 복잡한 사회를 만들었고, 도시는 밀집되었다. 신화와 허구는 사람들을 묶어 효과적으로 협력하게 했다. 이로 인해 문화라는 인공적인 본능의 네트워크가 생겨났다.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인간이 만든 질서에는 내적 모순이 있고, 이 모순이 문화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모순은 인간이 사고하고, 재평가하고, 비판하게 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우리 종의 창의성과 활력의 근원이 된다. 이 과정을 '인지 부조화'라고 한다. 인지 부조화란 서로 충돌하는 신념이나 가치가 있을 때 생기는 심리적 갈등이다. 예컨대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흡연하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필요하다"며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는 것처럼 인간은 이런 갈등을 해결하려고 한다. 또, 자유와 평등의 모순이 있다. 자유 시장 경제에서는 개인이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하게 되면 부의 축적에 차이가 생겨 경제적 불평등이 발생하게 된다. 시장의 자유가 커질수록 경제적 격차는 커지게 되고, 결과적으로 평등은 저해된다. 반면 평등을 추구하려면 자유를 어느 정도 제한할 수밖에 없다. 이는 평등을 증진시키지만 동시에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결국 자유를 추구하면 불평등이 커지고, 평등을 추구하면 자유가 제한되는 모순이 발생한다. 이러한 모순에서 오는 인지 부조화, 그리고 다시 사고하는 능력 덕분에 우리는 문화를 만들고 유지하며 인간이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모순을 다루는 능력이 우리 문명의 발전을 이끄는 중요한 동력이다.
유발 하라리는 3부 '인류의 통합'에서 인류를 통합시키는 요소 3가지를 소개한다. 돈, 제국, 종교이다.
돈은 사물의 가치를 의미한다. 이는 축적, 유통 수단으로도 쓰일 수 있다. 반면, 화폐는 재화와 용역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모든 물건을 의미한다. 이 말은 화폐는 조개껍데기, 금, 은, 주화, 나아가 종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돈은 불변적이고 화폐는 가변적이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한다.
화폐는 실재하지 않는다.
전 세계의 화폐를 모두 모으면 약 6조 달러가 모인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전 세계에 유통되는 돈은 화폐의 양보다 훨씬 많은 약 60조 달러이다. 나머지 54조 달러라는 거액은 은행 계좌에 숫자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재하지 않는 디지털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떻게 이런 숫자를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 그걸 알기 위해서는 돈의 두 가지 보편적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돈으로 무엇이든 변환할 수 있는 것을 암시하는 ‘보편적 전환성’과 돈을 매개로 하면 사람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하는 ‘보편적 신뢰’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은 돈을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돈을 믿는다는 사실을 믿으라 할 뿐이다. 이런 성질을 알고 앞서 말한 사실을 다시 본다면 허구를 믿고 그를 통해 상호 신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인간이기에 신용을 통해 경제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포스트인컴]
다음은 제국을 소개할 차례인데, 그전에 질문을 하나 하고 싶다.
제국주의를 생각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가?
대부분이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할 것이다. 식민지 지배, 착취, 통제, 약탈, 독점, 전쟁 같은 키워드들이 떠오른다. 더군다나 일본과 관련한 우리의 역사 때문인지 특히 대한민국 사람들은 제국주의를 안 좋게 보는 경향이 지배적일 것 같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생각이 조금 다른 것 같다.
[출처: hillmanweb.com]
제국이란 정치 질서는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서로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 많은 수의 사람이 모여야 한다는 특징과 그리고 탄력적인 국경과 그것을 늘리고자 하는 잠재적으로 무한한 식욕을 가져야 한다는 두 가지 특징을 지닌다. 제국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정치조직이었다.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살해하고 억압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된다. 여기까지는 우리도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이런 말을 남긴다.
제국은 양날의 검과 같다. 제국은 우리에게 많은 유산을 남겨주었다.
이런 시선으로 제국을 바라보면 무자비함과 잔혹함 속에서도 제국이 이뤄낸 성취들이 보이긴 한다. 영국의 제국주의를 보면 영국은 70년간 인도를 지배했다. 이때 영국인들은 인도의 사법제도의 기반을 만들었고, 경제적 통합에 극히 중요한 철도망을 건설하기도 했다. 제국주의를 통해 혼란스러운 국가를 통일시켜 하나로 작동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다양한 문화가 섞이면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식의 문화적인 발전을 이루기도 했다.
인도의 열차 사고. 영국 식민지 시대에 조성된 철도 시스템을 정비하지 않아 일어났다고 한다. [출처: AP통신]
제국주의가 이뤄낸 발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예술, 문화, 철학적 발전은 대부분 당시 엘리트들의 전유물이었다. 결과론적인 관점에서만 서술되었으며, 이는 제국 정치라는 체제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키루스 대왕의 “정복하는 것이 너희를 위한 일이다”라는 말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의 본질을 드러낸다. 제국주의는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흐리려 했지만, 이는 피정복자들을 문명화하는 방식이라는 명목으로 정복을 정당화하는 수단이었다.'우리'는 동일한 신념, 신화, 혹은 허구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의미한다. 인간은 이런 공동의 신념을 통해 대규모로 협력할 수 있었다. 반대로 '그들'은 이러한 신념이나 허구에 속하지 않는 외부의 집단으로 간주되며, 제국주의 시대의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관계에서 '그들'은 주로 피정복자이다. 제국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문명을 우월하다고 여기고 피정복자들을 '우리'로 만들려 했지만, 이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무모한 행동은 피정복자들로 하여금 문화의 노예가 되게 하는 것 같다. 간디는 인도에서도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변호사가 되고자 했다. 어느 날 영국의 기차 일등석에 탄 간디는 영국의 문화, 언어를 모두 잘 알고 있었음에도 인도인이라는 이유로 기차에서 끌려 내려졌다. 신념과 문화의 경계는 개인의 행동이나 학습으로 쉽게 넘나들 수 없었다. '우리'와 '그들'의 경계는 제국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목적에 따라 더욱 강화되었다.
[출처: The Guardian]
종교는 돈,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동일시키는 매개체이다.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여겨진다. 종교는 보편적이고 초인적인 질서를 설파해야 하고, 이 믿음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라고 강력히 요구해야 한다. 농업혁명은 종교혁명을 동반했다. 농부들을 시작으로 동식물을 애니미즘의 상징으로 여겨진 신성한 존재에서 인간의 소유물로 끌어내린 것이다. 그리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많은 수의 신들이 등장했다. 다신교의 등장이다. 다신교는 제물이나 사원에는 관심이 없었고, 폭넓은 종교적 관용을 낳았다. 많은 신, 권력을 믿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자신의 수호신을 편향적으로, 극단적으로 신뢰하여 자신의 수호신이 유일신이며 우주 최고의 권력이라고 믿었다. 일신교의 등장이다. 일신교는 다신교보다 더 광신적이었으며, 경쟁상대를 말살하고 박해하며 자리를 지키곤 했다.
[출처: gettyimages-T.C.Malhotra]
이신교는 신선한 구조를 반영했는데, 선과 악을 동시에 수용하여 질서를 바로잡고자 했다. 불교에서는 드물게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종교를 개척했고, 그 중심에는 고타마 싯다르타(석가모니)가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번뇌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통찰하기 시작했다. 고타마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기쁨을 느끼며 그것이 더 커지기를 집착하지 않는다면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고 계속 기쁨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출처: gettyimages]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와 평등은 매우 중요시되는 가치들이다. 하지만 이 둘이 모순되는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평등을 위해서는 자유가 제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서로 모순이 일어난다는 것을 새롭게 느꼈다. 제국에 관해 서술한 부분에서는 내용이 옳으냐 그르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 유발 하라리가 글을 쓰기 위해 역사라는 넓고 깊은 바다에서 자료를 골라 자기 생각을 뒷받침하며 설명하는 방식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의 통상적인 배경지식을 완전히 깨는 주장을 나름 논리적으로 근거를 찾아와 서술했기 때문이다. 이런 면을 볼수록 유발 하라리는 정말 뛰어난 스토리텔러인 것 같다. 자본주의, 공산주의 등의 이데올로기가 현대의 종교로써 자리 잡았다는 발상도 정말 탁월했다.
책 전반에 걸쳐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인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기본 상식을 깨고,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의 실상은 흔히 알려진 것과는 다를 수 있으며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근거는 역사적으로 입증이 되어 오랜 세월 간 보존되어 왔다. 우리가 실제처럼 여겼던 화폐의 90%는 디지털 속의 데이터에 불과하고, 악의 편에 속한다고 평가받는 제국도 과거에는 일반적이었고, 또 그로 인한 발전이 있었다는 것, 종교도 일신교가 지배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여러 종류와 셀 수 없이 많은 신들이 있었다는 것과 우리가 이데올로기로 여겼던 것도 종교가 될 수 있다는 발상을 통해 충분히 입증한 것 같다. 매 장, 매 페이지마다 우리에게 새로운 접근을 보여주고자 노력한 유발 하라리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