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시작되기도 했고, 여러 이유로 바빠서 저번주에 글을 올리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금주는 <사피엔스>에서 가장 잘 알려진 2부 농업혁명 부분을 다룰 것입니다. 본인이 알고 있던 배경지식과 비교하여 읽는다면 더욱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우리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인류의 역사의 바다에 몸을 담가봅니다.
구석기시대에는 수렵채집이 일상적이었다. 밖으로 무작정 나가 먹을 것을 찾고, 수집하여 식량으로서 소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석기시대에 들면서 농업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하나를 해보겠다.
"농업은 축복인가? 재앙인가?"
흔히 학교 역사시간에 배운 내용을 기반으로 생각해 본다면 농업은 분명 엄청난 축복이다. 인류의 정착생활이 시작됐고, 그로 인해 가축도 기르고, 식량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더욱 빠른 속도로 인간이 발전할 수 있게 기반을 다져준 것이 바로 농업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충격적이다. 우리의 상식선이 파괴되는 순간이다. 사피엔스는 농업을 통해 더 많은 과일과 곡물과 고기를 얻게 되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짐승으로부터 쫓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굶어 죽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생활하는 방식 차원에서의 혁명, 농업혁명은 이 말도 안 되는 착각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않았고,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농업을 시작한 후 사피엔스는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씨를 뿌리고 작물에 물을 대고 잡초를 뽑고 좋은 목초지로 가축을 끌로 갔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여가시간은 없어졌고, 몸의 피로도는 급격히 증가했다. 유발 하라리는 농업혁명의 핵심을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이라 소개할 정도이다. 또 농업으로 인해 제한된 식량을 섭취하게 되면서 심각한 영양 불균형도 발생했다. 가축은 질병을 옮겼으며, 사람들은 과거보다 더 많이 죽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변화가 축적되어 되돌아가려면 너무나 많은 시간이 들었고, 인구는 벌써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농업을 이어가야만 했다. 우리가 식물들을 길들인 것이 아닌, 식물이 우리를 길들인 것이라 표현할 수 있다.
[출처: 월간중앙]
그리고 인류는 동물을 가축화하기 시작했다. 소, 돼지, 닭을 주력으로 각각 10억 마리 이상이 존재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개체 수의 증가는 진화가 아닌, 그저 단순한 숫자의 증가이자 인간의 목적에 맞춰 변화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사피엔스는 본인의 필요에 맞지 않는 종들은 몰살시켰다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가축을 다루는 방법은 날이 갈수록 야만적이고, 영악하게 발전했으며, 도덕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출처: 캠페인즈]
인간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협력망인 상상의 질서는 인간의 삶에 상당히 흡수되어 사피엔스는 이를 벗어날 수 없는 수준에 달했다. 인간이 함께 모여 살고 제국을 형성하며 생산하는 정보의 양은 크게 증가했다. 그리고, 인간은 이 정보를 뇌에 모두 저장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숫자를 중요시하게 되었다. 수메르인들은 점토판을, 잉카인들은 키푸를,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쐐기문자를 이용했고, 이집트인들은 상형문자를 이용하여 문자 체계로써의 확장을 보였다. 인도에서는 결정적으로 아라비아 숫자가 발명되어 현대 수학적 표기의 기법, 나아가 컴퓨터의 2진법 문자 체계를 정립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주목할 점은 주체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닌, 점차 쓰기로 변해간다는 것이다.
잉카 제국에서 쓰였던 줄의 매듭을 이용한 의사소통 체계인 키푸. [출처: 나우뉴스]
인간 사회에서 지배 계급은 청결과 불결의 개념을 통해 특권을 유지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인도 아리아 사람들이 현지인을 복속시켰을 때 소수의 침략자들이 윗자리를 차지하고 특권적 지위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카스트로 구분한 사례가 있다. 또, 유럽의 정복자들은 아프리카계 흑인들을 노예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노예제가 수백 년간 지속되면서 흑인 가정들은 대부분의 백인들보다 형편이 좋지 못했고, 교육도 받지 못했다. 이러한 주변의 환경에서 자란 흑인 자신들도 자신들에 대한 편견을 믿기 시작했다. 백인은 우월한 존재여서 좋은 직업을 독차지하고, 흑인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을 믿음과 동시에 흑인은 열등한 존재라고 믿게 되었다. 나아가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는 법안이 제정되고, 편견과 차별을 전제로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계속되면서 흑인들이 악순환에 갇혀버린 것이다.
[출처: The New York Times upfront]
사회에서 남성성은 더 가치 있게 여겨지고 부계사회가 보편적이고 안정적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예로부터 인간은 사냥, 전쟁, 농사 등 육체적인 힘이 요구되는 활동들을 많이 했고, 식량 관련한 일을 주로 남성들이 도맡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성이 주도하는 사회가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때 당시에는 식량의 문제가 곧 생존의 문제였기 때문에 식량의 중요성은 지금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았을 것이다. 생각해 보라. 오늘날의 우리는 다른 일을 하느라 끼니를 건너뛰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른 신경 쓸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현재와 비하면 다른 할 일이 압도적으로 적었을 텐데, 그중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식량을 구해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었을까?
농업혁명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내가 이때까지 가지고 있던 배경지식이 모조리 파괴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런 통찰을 가진 유발 하라리가 정말 엄청난 발견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히려 상상의 질서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행복할 권리가 있으며, 인권을 존중받는다.’라고 교육을 받아왔는데 나는 사실 이걸 보면서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전부 다 행복할 수 있는지, 또 그걸 어떻게 권리로써 지킬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는데, 나와 비슷한 생각을 너무 정확하게 지적하고 비판하여 어딘가 모를 희열을 느꼈다. 인류가 모두 평등하고, 안정되어 있고, 자유롭고 행복하다면 사람들은 왜 종교를 믿고, 인권운동에 열광하는 걸까? 앞서 소개했던 사례들은 왜 일어났으며 역사적으로 주목받을까?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인간은 평등하지 않고, 이런 말은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협력하게 만들기 위해 지어진 신화, 허구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허구를 누구보다 진심으로 굳게 믿으며, 빠져나갈 수 없는 세계를 직접 파고 있다. 상상도 못 할 만큼 많은 시간과 사람들이 이때까지 만들어왔던 설계된 인류의 감옥이자 미로니까.
[출처: 법률신문]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미래에 인간이 유전자 조작으로 계급화되고, 행복은 약물 '소마'로 유지되는 문명사회를 보고 존은 사람들의 비인간적이고, 감정이 없고 쾌락만이 있는 삶에 충격을 받아 결국 탈출을 결심한다. 문명사회의 사람들은 모두 고통 없이 오직 행복한 감정만을 가지고 살아갈 때, 존이 세계에서 탈출하여 야만인의 세계로 가려 하자 통제관이 이런 말을 던진다.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원하는 셈이군요. 늙고 추악해지고 불구가 되는 권리, 매독과 암에 시달리는 권리,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고생하는 권리,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아갈 권리, 병을 앓을 권리와 온갖 종류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는 물론이겠고요.” 존은 이렇게 대답한다. “네, 나는 그 모든 것을 추구합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죄악을 원합니다.” 통제관의 말들에는 문명사회의 사람들이 굳게 믿고 있는 상상의 질서가 나타나고, 존의 말에는 인간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이것은 상상을 통해 허구를 말하고, 그것을 신뢰함으로써 상호관계를 만들 수 있는 인간에게서만 드러나는 것이라 다시 믿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