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용기: 진리를 향한 인류의 혁명

사피엔스가 어렵다고? 재미없다고?

by 김정우

지난 몇 주간 추석과 시험기간이 겹쳐 글을 쓸 여건이 되지 않아 오늘이라도 써봅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금주는 <사피엔스>의 4부 과학혁명 부분을 다룰 것입니다. 이제 정말 <사피엔스> 정복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물론 과학혁명의 내용이 방대하고 이 뒤에 올라올 제 생각을 정리할 글도 내용이 꽤 되겠지만 천천히 여유 있는 호흡으로 본인의 페이스에 맞춰 읽는다면 금방 따라오실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우리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인류의 역사의 바다에서 나와 육지에 발을 디뎌봅니다.





과학혁명은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이전에는 인류가 신들에게 의존하는 종교적인 지식을 믿었고, 이것은 종교적인 권위에 의해 통제되고 제한되었다. 다시 말해 과학혁명 이전의 지식은 신에 의해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으며, 세계의 모든 비밀은 신의 지시에 따라 성경이나 구전을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과학혁명은 이러한 전통적인 관념에 도전했다. 과학혁명은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것을 제시했다. 그런 면에서 유발 하라리는 이런 말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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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니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자 하는 욕구가 자연스럽게 발생했다. 이것은 서양과 중국의 발전 속도에 차이를 야기한 핵심적인 요인이었다. 중국은 알다시피 종이, 화약, 나침반을 모두 발명한 과학적으로 발전했던 국가였고, 명나라 때 세계 최강의 대국으로서 정화를 등용하여 7차례의 대항해를 도전했다. 그리고는 더 얻을 것이 없어지자 함대를 해체하고 문호를 단절했다. 하지만 유럽은 달랐다. 자신들의 무지를 인정하며 경쟁을 시작했다. 유럽의 포르투갈, 스페인 등 여러 국가에서 신대륙을 찾고 대항해를 시도했던 것이 바로 이 이유이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듯이 콜럼버스의 발견으로 스페인은 아메리카를 정복했고 스페인은 크게 성장했다. 이러한 과학적인 탐구는 자연을 관찰하고 실험하여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을 중요시했다. 과학자들은 사물에 대한 관찰 자료를 수집하고 수학을 통해 포괄적인 이론을 만들어 새로운 기술 개발을 추구했다. 진보는 미래에 대한 신뢰였고, 이러한 신뢰는 신용을 창조하여 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해 진보는 우리가 미래에 대해 믿음을 갖는 것에서 시작되고, 이 믿음은 사람들이 서로를 신뢰하게 만들고, 그래서 과학 연구에 필요한 지원이 생기게 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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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BBC, facts.net]


과학의 발전에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이 발전이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학 연구는 모종의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제휴했을 때만 번성 가능한데, 근대 과학은 제국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발전할 수 있었다. 19세기의 주요 군 탐사대에는 대부분 과학자가 타고 있었다. 과학자들은 제국주의에 이데올로기적 정당화, 실용적 지식, 기술적 장치를 제공했다. 그들은 새로운 지식을 얻는 것이 언제나 선한 활동이고, 제국이 하는 것은 진보적이고 적극적인 사업이기 때문에 피지배 민족에게 진보를 가져다줄 수 있음을 주장했다. 축적된 자본과 과학의 발전을 원동력으로 기술 혁신과 사회경제 구조의 변혁을 일으킨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industrial-revolution-hero.jpg [출처: Encyclopaedia Britannica]


산업혁명의 핵심은 열을 운동으로 전환하는 등의 에너지 전환의 혁명이었다. 에너지 전환의 성공으로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공장의 생산량도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증기기관차가 만들어지며 운송수단 또한 발전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한 유형의 에너지가 다른 유형의 에너지로 바꾸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연구하기 시작했고 원자폭탄, 핵발전소, 전기 등도 발명되었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바꾸는 방법을 알아내는 과정에서 경제성장을 막고 있던 또 다른 문제인 원자재 부족도 해결되었다. 과거의 능력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원자재 광상은 과학이 성장하면서 개발할 수 있게 되었고, 운송수단의 발달로 점점 더 먼 곳에서 원자재를 실어 올 수도 있었다. 플라스틱 같은 새로운 원자재도 발명할 수 있었으며 규소나 알루미늄 같은 천연자원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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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일까? 혹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행복을 추구하자!” 그런 그들은 과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행복을 원한다는 것일까? 인류가 발전하고 우리가 역사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더 행복해지고 있는 것일까? 물질적인 행복은 우리에게 만족감을 준다. 사실이다. 하지만 이 행복은 그리 오래가진 않을 것이고, 인간은 또 다른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된다.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과 주관적 기대 사이의 상관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생물학자들의 결과에 따르면 우리의 정신세계와 감정 세계는 수백만 년의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 생화학적 체제의 지배를 받는다고 한다. 이 생물학적인 접근을 통해 바라보면 대부분의 역사적 사건이 우리의 생화학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역사는 우리의 행복에 대해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행복은 우리가 살고 있는 상황과 우리가 원하는 것 사이의 관계로 결정되는데 과학자들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이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해 왔다고 말한다. 그래서 역사에서 일어난 일들은 우리의 마음이나 몸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아서, 역사 자체는 우리가 행복한지 아닌지에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프랑스혁명은 프랑스인들의 생화학 시스템을 변경하지 못했으므로 행복에 미친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의 행복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생화학 시스템을 조작하는 일밖에 없다면 우리는 이러한 요법을 개발하고 간격을 좁히는 데에 큰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불교에서는 행복과 고통은 단순히 지나가는 감정일 뿐이므로 얽매이지 말자는 의견도 내세운다. 우리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비결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파악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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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은 이러한 전환점에서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인간은 더 이상 신의 뜻에 의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이성과 경험을 통해 세상을 탐구하고 이해할 수 있는 주체가 되었다. 이는 단순한 지식의 축적을 넘어, 인간 존재의 의미와 사회적 관계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과학혁명은 인류가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시점으로 평가되며,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