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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가는행인 Dec 19. 2021

로봇과 사람의 경계가 무너질 때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리뷰

배경 사진 출처 : https://www.wallpaperflare.com/detroit-become-human-games-art-detroit-become-human-connor-detroit-become-human-wallpaper-cenbe


본 글은 PS4, PC 게임인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에 대한 리뷰로,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통상적으로 유저들이 생각하는 “베스트 엔딩”을 따른다는 전제로 내용이 서술됩니다.


1. 인트로 - 근미래의 AI

2038년 디트로이트. 초대기업 사이버라이프가 만든 사고 능력을 가진 안드로이드는 빠르게 인류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안드로이드가 사람을 대체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고장 나거나 파손당한 안드로이드를 교체할 수 있어서, 대부분 사람들은 안드로이드를 험하게 다루는 데에 죄책감이 없다. 계속된 핍박에 일부 안드로이드는 부당함을 느끼면서 자신의 명령 체계를 거역하기 시작하고, 자유 의지를 가지게 된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인류는 불량 안드로이드의 원인을 찾기 위한 수사를 시작한다.


그런데 안드로이드가 ‘사람’이 아닌 이유는 뭘까? 그리고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이후 디비휴)은 위에 기술한 근미래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자신의 존재의 의의를 찾는 안드로이드 3명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플레이어를 시험하고 질문을 던진다.


2. 카라와 앨리스 – 조건 없는 사랑

가정용 안드로이드 카라의 이야기는 토드라는 남자를 죽이면서 시작된다. 주정뱅이 토드가 자기 딸 앨리스를 때리고 욕하자 카라는 토드를 위협하고, 분노한 토드가 카라를 부시려고 하자 제압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총을 쏜다. 이후 달아난 둘은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캐나다로 피난길을 떠난다.

카라가 앨리스를 지키는 장면 (출처 : Detroit Become Human Fandom Wiki)

그러나 캐나다 국경 근처에 도착한 시점에 앨리스도 안드로이드라는 큰 반전이 있다. 즉, 카라와 앨리스는 안드로이드 엄마와 인간 딸이 아닌, 안드로이드 모녀였다..! 


가정부 안드로이드가 인간 딸을 사랑하는 것과, 처음부터 안드로이드끼리 가족이 되려고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무의식적으로 카라가 자신의 명령을 따른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지만, 후자는 기계 취급받는 안드로이드가 진실된 감정으로 서로 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앨리스를 가족으로 받아들일지 말지는, 카라가 아닌 플레이어가 선택하게 된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지 않은가.

카라가 안드로이드인 앨리스를 받아들이는 장면 (출처 : Detroit Become Human Fandom Wiki)

카라의 이야기를 통해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앨리스가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나아가서 안드로이드도 사람이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진짜로 안드로이드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면, 이 사실에 놀랄 이유도 없지 않은가?


3. 마커스 – 리더의 책임

특수 모델 마커스는 유명 화가인 칼을 보조하는 안드로이드였지만, 칼은 복종적인 마커스의 태도를 안타깝게 여기고 스스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재차 이야기한다. 그리고 인간의 오해로 인해 치명상을 입고 폐차장에 버려지자, 마커스는 분노하며 악착같이 살아남는다. 그리고 자유의지를 가진 안드로이드의 피난처 제리코의 리더가 되어, 안드로이드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

제리코를 이끄는 마커스 (출처 : https://wall.alphacoders.com/big.php?i=921088)

마커스를 보면 흑인 인권을 위해 1950-60년대에 싸운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와 말콤 엑스(Malcom X)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킹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말콤 엑스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흑인이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디비휴에서도 마커스는 평화와 폭력 중에 선택할 수 있다. 다만, 폭력을 선택했을 때 싸움은 지속될 것이라고 명확하게 나오고, 안드로이드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져서 그동안 정 붙인 카라와 앨리스는 캐나다 입국 심사에서 경찰에게 붙잡히고 만다. 즉, 마커스는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하나의 캐릭터가 아닌, 안드로이드의 미래를 책임지는 입장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마틴 루터 킹(좌)과 말콤 엑스(우)의 대면 (출처 : https://truewordministry.org/is-malcolm-x-an-unsung-hero/)

그 반편, 평화적 외교를 선택하더라도 대부분 안드로이드는 총살당하고, 마커스 또한 총살당하기 직전 상황까지 몰린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총살을 앞둔 마커스와 연인 노스의 키스다.


마커스와 카라의 이야기의 핵심은 결국 “사랑”이다. 카라의 이야기로 플레이어한테 안드로이드가 사람일 수 있냐고 묻는다면, 마커스의 이야기는 근미래 인류도 플레이어처럼 안드로이드를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희망찬 메시지를 담는다.


4. 코너와 행크 – 진정한 화합

유일무이한 최첨단 수사 안드로이드 코너는 안드로이드에 적대적이고, 술꾼인 형사 행크와 안드로이드 수사를 맡는다. 그러나 수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단서를 얻으려면 코너는 행크를 위험에 빠트리거나, 동족 안드로이드를 죽여야 하는 (기능 정지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행크를 위험에 빠트리거나 안드로이드를 죽일수록 행크는 코너의 비인간적인 행동에 분노하며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

안드로이드 코너(좌)와 형사 행크(우) (출처 : Reddit 유저 AzizVefa)

그렇다면 도덕성을 포기한 채 동족을 죽이고, 파트너와 사이가 틀어지면서까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 코너의 미래는 밝을까? 슬프게도 상위 모델로 대체된다는 배드 엔딩이 기다리고 있다. 모든 걸 포기한 그 끝에 코너는 폐기를 앞둔 기계일 뿐인, 기분이 묘한 장면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반면 코너가 도덕적인 선택을 하면, 행크와의 관계도 점점 개선된다. 서로 사랑하는 안드로이드, 자유를 갈망하는 안드로이드 등을 만나면서 행크는 안드로이드와 사람이 별반 차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코너도 점점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자, 마지막에는 코너가 안드로이드 시위에 가세하는 것을 오히려 도우면서 자기 아들과 엮인 비밀을 이야기해준다. 사고로 인해 긴급 수술이 필요한 아들의 담당의가 마약에 취한 상태였고, 어쩔 수 없이 안드로이드가 수술실에 들어갔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들이 죽은 이유는 안드로이드가 아닌, 마약에 찌든 의사와 쾌락주의에 빠진 인류라고 하면서 안드로이드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도 있다고 넌지시 말한다.


코너의 이야기는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화합 가능성을 보여준다. 행크는 기계로 시작한 코너의 비인간적인 행동을 훈계하고, 그 덕분에 코너는 인간으로 성장한다. 그러면서 행크는 코너를 단순히 수용하는 것이 아닌 진짜 파트너로 바라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무거운 과거를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인간과 안드로이드가 친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며 게임은 막을 내린다.

모든 일이 끝난 후 서로 안는 행크(좌)와 코너(우)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f6-qUiMVEgg&ab_channel=ItsB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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