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을 더 하는 2022년을 목표로 하며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 (1931)
I wish I’d partied a little less. People always say ‘be true to yourself.’ But that’s misleading, because there are two selves. There’s your short term self, and there’s your long term self. And if you’re only true to your short term self, your long term self slowly decays.
(의역) 조금 덜 놀았었으면 좋았을 텐데.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신념에 맞게 행동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건 사실 정확한 표현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내가 두 명이 있거든요. 단기적인 내가 있고, 장기적인 내가 있어요. 그리고 단기적인 나한테만 너무 충실하면, 장기적인 나는 점점 쇠퇴해요.
“Humans of New York”를 통해서 접했던 위의 대사는 필자에게 특별하다. 노는 걸 좋아했던 대학 시절에, 이 글 덕분에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생활을 설계하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그 이후에도 일종의 신조가 되어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염두에 두고 생활했다. 다행히 그 덕분에 올해 직장에서도 스스로가 만족할만한 성과를 보였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2021년을 돌이켜봤을 때 어딘가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왜 그랬는지 한동안 고민했다. 감히 스스로의 직장생활을 진단한다면, 회사에서도 자리를 잡은 것 같고, 코로나라는 한계가 있었음에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도 지난해보다 더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업무적으로도, 인간관계에서도 아쉬운 부분보단 좋았던 부분이 더 컸다는 결론을 곱씹던 와중에, 결국 직장생활에 대해서만 회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이 필자는 작은 취미생활부터 큰 프로젝트까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 한가득 있었다. 다만, 입시, 취업 등 급하고 중요한 목표를 위해 나중에 하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하고 미뤘다. 그러나 막상 직장을 가지자, 나도 모르게 소속이 생기고 일정한 급여를 받는 안정감에 빠졌다. 그토록 바라고 기다리던, 온전히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이제서야 가졌는데, 직장생활 열심히 했다는 것을 위안 삼으며 편하게 쉬는 날이 대다수였다.
물론, 앞으로도 직장생활을 몇십 년 해야 하고, 이 긴 마라톤 같은 기간에 지치지 않기 위해서 쉬는 시간은 정말 중요하다. 그래도, 직장인인 나의 장기적 편안함을 위해서 개인인 내가 과하게 단기적인 사람이 된다면, 문제가 있지 않은가.
반성의 의미에서 위의 신조에 내용을 조금 추가한 채로 2022년을 보내보고 싶다. [단기적인 나와 장기적인 나]뿐만이 아니라, [직장인인 나와 개인인 나] 간의 밸런스까지 고려해서,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 해야 한다고 느꼈지만 못했던 것들을 차근차근 해나가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 여러 가지 꿈을 품던 나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고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