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서울 자가 갈아타기, 결국 후회했을까

by 박엘리

이 연재북은 5개월 전, 아파트 갈아타기를 하게 되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집을 결정하게 되면서 밀려드는 후회와 불안이 저를 집어삼켰고, 저는 상황을 복기하듯 글로 정리를 하였습니다.


지나고 나면 휘발되어 없어질 걱정들이 당시의 나에겐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변수였기에 인생을 통틀어 가장 깊은 고민의 시간이었습니다.


갈아타기하며 겪었던 여러 가지 상처를 스스로 보듬으며 긴 겨울을 지냈야 했습니다. 이젠 춥고 길었던 겨울을 지나 이사한 집에서 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그 상처가 거목의 옹이처럼 나의 삶에도 더 단단한 무늬가 되었길 바랍니다.






1. 경기도 대단지 vs 서울 나 홀로 아파트, 갈아타기 후회할까?

가장 큰 걱정이었습니다. 서울 송파로 이사오기를 바랐었고, 올라가는 집값을 보며 나 홀로 아파트라도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매수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이사를 결정했지만, 훗날 집값이 역전하여 그때 왜 이사했냐는 소리를 듣게 될까 봐, 인생의 뼈아픈 실수가 될까 봐 걱정이었습니다.


막상 이사와 보니 다행히도 아이들은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변경된 학군, 생활권은 우리 가족에게 또 다른 생활의 변화를 가져오며 일상의 새로운 활력이 되었습니다. 점차 안정되는 일상에서 위안을 얻으며 우리 가족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습니다.


후회가 없다기보다 삶의 안정에 무게중심을 두니 후회할 틈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또 한 번 이 선택에서 무엇을 택하겠냐고 하면 저는 이사를 선택할 것 같습니다.


2. 서울 송파구 31평 아파트를 보유한 서울이모

저는 지방출신입니다. 저의 친정가족들 대다수는 저의 본가 근처에 있습니다. 친정어머니의 칠순잔치 겸 집들이를 저희 집에서 진행하였습니다. 15명의 대가족 전원이 저희 집으로 출동하였습니다. 온 가족은 축하해 주었고, 내 딸이 내 사위가 서울 송파구에 이런 넓은 집 한 채를 샀다는 사실에 기뻐하셨습니다.


조카들에겐 저는 서울에 사는 막내이모입니다. 5학년 조카의 눈에는 서울에 '잘'사는 부자이모로도 보였나 봅니다. 집들이를 위해 준비한 음식과 오락거리 등이 아주 흡족했나 봅니다. 저 역시 기쁜 하루였습니다.


지방에 계신 부모님은 우리 아파트가 성공의 상징처럼 보였나 봅니다. 서울 한복판에 등기를 쳤다는 사실이 그분들께는 대리만족처럼 큰 효도가 되었습니다.


3. 상급지로의 상향이동에 대해

송파구 입지는 기존 입지 대비 저에겐 상향이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동할 당시 나 홀로라 하더라도 송파로 이사 오는 것에 대한 약간의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이사를 와서 보니 주변 아파트들이 너무 쟁쟁합니다. 거대 대단지 아파트들이 즐비하고 연일 부동산 시세에 대한 정보가 뉴스에 나오는 대한민국 대표 아파트들입니다. 그 아파트들과 학군, 상권, 생활권을 나란히 하며 저는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살짝 주눅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입지별, 아파트별 서열 아닌 서열이 있어서 그 서열을 가장 뒤에 있는 우리 아파트가 어쩐지 측은해 보입니다. 상급지 이동 후 나타나는 전형적인 신호를 겪고 나니 조금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4. (새 집에서) 좋은 일이 오려고 그러나 보다

집을 갈아타기가 결정되면서 저희 가족에는 10년 치 액땜을 한 거 마냥 크고 작은 사고가 많았습니다. 그 사고들을 온몸으로 받으며, 저는 마음의 수양을 진심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초1이었던 둘째 아이가 반 친구로부터 얼굴을 다치는 일이 생겨 피부과와 소아정신과를 다니게 된 일, 그로 인해 교통사고도 발생되었고, 남편은 대장수술, 저는 무릎을 다치는 등 크고 작은 사고가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이사당일에는 이사업체에서 세라믹 대형 식탁 상판이 깨지는 사고까지 발생되었습니다. 게다가 10년 만에 처음으로 부부싸움도 크게 벌어져 양가부모님께도 혼이 나기도 했습니다. 진정 혼돈의 시기였습니다.


불과 두 어달만에 이런 폭풍 같은 일들이 몰아치면서 저는 힘들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절이 온다고 하면 저는 아마 이 시기였던 거 같습니다. 제가 힘들었던 만큼, 이 크고 작은 사고의 상대방에게도 따져 묻기보단 그만하길 다행이라며 위로를 건넸습니다.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며 이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다며, 겸손하게 마음을 먹고 대했습니다. 그러면서 얼마나 좋은 일이 오렸는지 얼마나 더 잘 사려고 하는지 나에게 이런 깊은 액땜을 하게 하는구나 생각하며 훌훌 털어버렸습니다.


5. 계약직 워킹맘은 아직 일하는 중

이사를 결정하면서 아이들 적응하랴, 아파트 내부 수리도 하랴 기타 등등 할 일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저는 마침 계약기간이 다 되기도 해서 일단 일을 잠시 쉬었다가 집안일을 챙기려고 하였습니다.


결국 남편과 논의 끝에 인테리어를 맡기게 되었고 인테리어비용이 추가된 만큼 일을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리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인테리어업체에 맡기고 저는 일을 지속하는 것이 나은 결정이었습니다. 경력을 쉬지 않고 이어가고, 비용은 좀 더 많이 들긴 했지만 인테리어업체를 통해 집은 확실히 더 좋아졌습니다.


고물가, 고금리 기조의 현시대에서 우리 부부에겐 맞벌이가 생명줄과도 같습니다. 넓은 모래사장에서 작은 삽으로 한 삽 퍼오는 수준의 월급이지만, 일을 하면서 저도 저 나름의 사회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6. 비교는 그만!

이사를 하고 나서 가장 많이 하게 된 것이 비교였습니다. 지역 간의 비교, 아파트 간의 비교, 학교 비교, 생활권 비교 등 모든 것이 비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AI를 통해서 비교도 하게 되고 AI의 답변에 일희일비하기도 했습니다. 무척이나 어리석은 행동이었습니다. 비교하면 할수록 스스로 의심게 되고 자기 검열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비교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집은 잠실에 사는 친구에게는 한 번 더 이동해야 할 정류장 같은 집, 경기도 사는 친구에게는 서울에서 학교를 보낼 수 있는 좋은 환경의 집이라 하고, 지방에서 사는 친정가족에겐 서울의 내 집 한 채가 되는 아파트입니다.


각각의 시선에 따라 아파트의 명암이 나뉘게 되는 거죠. 저 역시 그 비교에서 속을 끓이다가 나의 선택을 믿고 지금의 내 삶에 충실하자는 결론으로 귀결되어가고 있습니다.


향 후 신축 혹은 대단지로 한 번 더 이동한다면 더 좋고, 못하더라도 서울 내 집 한 채에 만족하면 되니 이제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려고 합니다.


내가 멈추지 않으면 비교의 끝은 없으니까요. 내가 살 집이 있다는 그 사실에 감사하며 오늘 하루 아이들과 웃고 사랑한다고 얘기하는 평온한 일상이 더 중요하니까요.




약 5개월 동안 20회 차로 '서울 자가에 계약직 워킹맘'이라는 연재북으로 매주 글을 발행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시간이 저에게 정서적 안정과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함께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숨 쉬는 삶을 살아있는 글로 써가면서 지극히 혼란스러웠던 갈아타기 시기를 조용히 잠재울 수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완벽한 선택을 한 사람이 아니라, 제 선택을 끝까지 살아내기로 한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서울이냐, 아파트냐, 더 좋은 입지냐 보다 지금 이 집에서 우리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습니다.


비교를 멈추고 나니, 비로소 제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도 아이들과 웃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하루. 그 하루를 지켜내는 것이 제가 이 집으로 이사 온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5개월 동안 이 긴 여정을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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