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삶을 위한 제언

기술 시대에 진정한 창의성을 키우는 법

by 박수열

수백 년의 시간이 흘러도 가우디의 건축, 피카소의 화풍, 찰리 채플린의 영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누구나 손쉽게 이미지를 생성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이 시대에, 창의성의 본질적인 가치는 오히려 더 중요해졌습니다. 우리는 종종 예술을 선택받은 소수의 전유물로 여기곤 합니다. 하지만 창조란 박물관에 전시될 작품을 만드는 행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논리적 사고와 직관의 경계를 넘나들며 바라보면, 인간의 삶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창조 프로젝트임을 깨닫게 됩니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감각과, 이를 뒷받침하는 규칙적인 습관이야말로 우리를 더욱 풍요로운 삶으로 이끄는 열쇠입니다. 이는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하나의 ‘존재의 방식’입니다.


1. 예술가로 산다는 것: 세상을 큐레이팅하는 힘


흔히 예술가라고 하면 캔버스 앞에 앉은 화가나 무대 위의 연주자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만 달리해보면, 우리는 모두 이미 예술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수많은 정보를 인식하고, 필터링하며, 수집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나 자신과 타인을 위해 경험을 '큐레이팅'합니다. 어떤 옷을 입을지, 어떤 단어로 대화를 시작할지, 오늘 저녁 식탁에 어떤 접시를 놓을지 결정하는 모든 과정이 곧 창조입니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직업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이자 인식의 문제입니다. 세상의 소음 속에서 미묘한 음을 감지해 내고, 나를 끌어당기는 것과 밀어내는 것을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연습입니다. 공식적인 작품을 남기지 않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단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현재진행형인 창조 과정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삶 전체가 곧 자기표현이며, 우주에 단 하나뿐인 고유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창조는 생산(Production)이 아닙니다. 그것은 발견(Discovery)에 가깝습니다. 무엇을 만들어내느냐보다, 세상을 얼마나 예민하게 보고, 듣고, 느끼느냐가 창의성의 깊이를 결정합니다.


2. 영감의 물리학: 비워야 채워지는 자연의 이치


그렇다면 창조의 원천인 영감은 어디서 올까요? '영감(Inspiration)'이라는 단어는 '숨을 들이마시다' 또는 '숨을 불어넣다'라는 뜻의 라틴어 '인스피라레(Inspirare)'에서 유래했습니다. 호흡의 생리학을 생각해 봅시다. 폐가 새로운 공기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안에 있는 숨을 남김없이 내뱉어야 합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영감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내면의 공간을 비워야 합니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스승은 자연입니다. 계절의 순환, 매일 밤 달라지는 달의 위상, 파도의 규칙적인 리듬을 보십시오. 자연은 억지로 애쓰지 않지만, 끊임없이 변화하고 창조합니다. 인간 또한 무언가를 쥐어짜 내려고 애쓰기보다, 진정한 답이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오도록 허용해야 합니다.


정보가 흘러넘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의도적으로 '연결된 거리 두기'를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면 억지로 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그저 마음속에 가볍게 담아둔 채 산책하거나 음악을 들으십시오. 우주에 부드럽게 질문을 던져놓고, 답이 찾아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무의식이 일할 시간을 주는 고도의 지적 전략입니다.


3. 실험하는 사람과 끝내는 사람: 완벽주의를 넘어서


창조적인 삶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완벽주의'입니다. 많은 이들이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는 상태를 완벽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완성은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결과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시작조차 하지 못하거나, 영원히 수정만 거듭하는 현상은 창작의 세계에서 흔히 목격됩니다.


창작의 성향을 자세히 관찰하면, 사람들은 대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실험하는 사람'과 '끝내는 사람'입니다. 실험하는 사람은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을 즐기지만 완성을 두려워합니다. 반면, 끝내는 사람은 결과 도출에만 급급해 깊이 있는 탐구를 놓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가지 성향의 균형을 맞추는 일입니다.

모든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고, 실수를 허락하십시오. 과학 실험에서 데이터가 예상과 다르게 나왔다고 해서 실패라고 부르지 않듯, 창작 과정에서도 실패란 없습니다. 모든 시도는 배우는 과정이며, 숙달로 가는 징검다리입니다. 작품의 80퍼센트가 마음에 든다면, 나머지 20퍼센트의 부족함 때문에 전체를 폐기하지 마십시오. 완벽하지 않더라도 세상에 내놓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2에서 3으로 가는 것이 0에서 2로 가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루틴'이라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습관은 뇌의 에너지 소모를 줄여주는 효율적인 메커니즘입니다. 사소해 보이는 습관들이 모여 기하급수적인 차이를 만듭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책상에 앉거나, 작업을 시작하기 전 특정한 음악을 듣는 작은 의식(Ritual)을 만드십시오. 이러한 규칙적인 리듬은 창조적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혈관과도 같습니다.


4. 진정한 성공은 내면의 울림에 있다


우리는 타인의 인정이나 상업적인 성공을 목표로 삼기 쉽습니다. 하지만 창조적 행위의 본질은 경쟁이 아닙니다. 남들과 똑같이 말하지 말고,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가장 흥미로운 작품은 관행이 자리 잡자마자 그 관행을 따르지 않는 작품입니다.


성공의 기준을 외부의 평판이 아닌 '내면의 정직함'에 두십시오. "이 작업을 진심으로 사랑했는가?",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했는가?" 이 질문에 긍정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타인의 위대한 작품을 보고 질투를 느끼는 대신,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자극받는다면 그것은 경쟁이 아니라 영혼의 협업이 됩니다.

자신과의 경쟁을 진화의 사명으로 삼아야 합니다. 과거의 자신이 만든 결과물보다 오늘의 결과물이 조금 더 성장했다면, 그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맺음말: 삶이라는 캔버스를 채우며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세상에 우리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가장 효과적이고 아름다운 방법이 바로 창조적 행위입니다. 예술은 언어와 시간을 초월하여 우리를 연결해 줍니다. 수백 년 전의 음악이 현대인을 위로하듯, 오늘 우리가 남긴 작은 기록이나 생각의 조각이 먼 훗날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습니다.

거창한 예술가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일상을 살아가며 발견한 가벼운 생각들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아이처럼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만의 감각을 믿으십시오. 창의성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습관입니다.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을까?" 그것이 예술이든, 혹은 삶이든 말입니다.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모두 위대한 창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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