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하는 것’이라면, 정은 ‘드는 것’입니다. 사랑은 ‘능동적’이라면, 정은 ‘수동적’입니다. 사랑은 ‘내가 하는 것’이라면, 정은 ‘누구로부터 받는 것’입니다.
사랑은 가슴을 뛰게 하는 설렘이라면, 정은 깊은 신뢰에서 오는 편안함입니다. 사랑은 미움이 없는 순수한 감정이라면, 정은 사랑과 미움, 기쁨과 서운함이 함께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입니다.
사랑은 짧은 순간에도 싹틀 수 있지만, 정은 오랜 시간 쌓여야 비로소 깊어집니다. 사랑은 지속적으로 감정을 확인받아야 하지만, 정은 숙성되며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사랑이 순간적인 불꽃이라면, 정은 장작처럼 서서히 타오르는 불입니다. 사랑이 미분이라면, 정은 적분입니다. 우리는 첫눈에 사랑에 빠질 수 있지만, 첫눈에 정들 수는 없습니다.
서양에서는 사랑 때문에 부부가 함께하고, 한국에서는 정 때문에 부부가 함께한다고들 합니다. 서양에서는 사랑이 식으면 이혼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한국에서도 점점 비슷한 흐름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관계를 오래 지속하는 힘은 단순한 사랑만이 아니라, 사랑 위에 차곡차곡 쌓이는 정입니다.
연애 초기에는 하루라도 못 보면 보고 싶고, 상대방의 작은 행동에도 감정이 요동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런 강렬한 감정보다는, 함께할 때의 편안함과 익숙함이 더 중요해집니다. 결혼 생활이 오래된 부부들은 사랑을 말로 자주 표현하지 않지만, 함께 나누는 일상 속에서 정이 깊어 갑니다.
예를 들어, 한 노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매일 아침 아내에게 “사랑해”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대신 아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조용히 내려주고,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미리 마당의 눈을 치워놓았습니다. 아내 역시 남편의 바쁜 일정을 배려해 저녁상을 차리고,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을 챙겼습니다.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이들은 서로를 깊이 아끼고 있었습니다. 이런 작은 배려들이 쌓이고 쌓여,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보다 더 단단한 정이 자리 잡았습니다.
사랑할 때는 정이 쌓이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자기 방식대로 주는 사랑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이어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이를 ‘아마에(甘え)’라고 표현합니다. 상대방이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사랑이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연애 초반에는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중요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대가 어떻게 사랑을 느끼는지’가 더 중요해집니다. 사랑이 깊어지면서, 우리는 ‘내가 사랑을 주고 있다’는 확신보다, ‘상대방이 나의 사랑을 느끼고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부부들은 사랑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서툴러집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 없어서도 아닙니다. 사랑이 너무 깊어 일상이 되고, 특별히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어느 순간부터 정으로 변하고, 그 정은 세월과 함께 더욱 깊어집니다.
비록 작은 사랑으로 시작하더라도, 세월 속에서 향이 깊어지는 큰 정으로 이어진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은 없을 것입니다.
사랑을 시작할 때 우리는 뜨겁고 열정적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정은 익숙함 속에 스며들어 정으로 변합니다. 지금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나요? 상대방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있나요?
오늘 하루, 사랑하는 이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 보세요.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가 어색하다면, 작은 배려로 그 마음을 전해 보세요. 사랑이 정으로 깊어지는 과정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