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새끼들을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 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을 가장 많이 가르쳐 준 남자”
문정희 시인의 ‘남편’이라는 시의 일부이다. 이 시에는 결혼 생활의 본질이 담겨 있다. 때로는 원수 같지만, 결국은 가장 가까운 사람. 함께한 세월만큼 깊어진 애증과 이해의 감정이 녹아 있다. 그러나 많은 부부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실수를 범한다.
연애할 때는 상대방의 사소한 취향까지 궁금하다. 어떤 커피를 좋아하는지, 어떤 옷 스타일을 선호하는지, 어떤 음악을 듣는지, 어떤 영화를 싫어하는지까지 세세하게 묻는다. 만나면 할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연락하며 서로를 탐구한다.
그러나 결혼 후 1~2년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궁금해하는 일 자체가 줄어든다.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착각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다. 새로운 경험을 하며 가치관이 바뀌고, 취향이 달라지고, 삶의 우선순위도 조정된다. 그런데도 부부는 결혼 초반의 기억만을 기준 삼아 ‘저 사람은 원래 이렇다’고 단정 짓는다.
결혼 생활에서 아내는 육아와 살림, 남편의 뒷바라지로 지치고, 남편은 생계를 책임지기 위한 업무와 사회적 부담으로 소진된다. 각자 나름의 이유로 힘든데, 서로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더 힘들다’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예를 들어, 한 부부 상담 사례를 보자. 10년 차 부부인 A 씨와 B 씨는 서로에 대한 불만이 쌓여 대화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아내 A 씨는 ‘남편은 회사에서 일만 하고 가정에는 무심하다’고 불평했고, 남편 B 씨는 ‘아내는 내 고생을 알아주지 않고 늘 잔소리만 한다’고 답답해했다.
상담사가 하루 동안 상대방의 역할을 바꿔보라고 권유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남편은 하루 종일 육아와 집안일을 하며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아내는 직장에서 끊임없이 스트레스받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지쳐서 돌아오는구나’라고 공감하게 되었다.
한 심리 실험에서도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결혼 2주, 2개월, 2년, 20년 된 부부들에게 서로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테스트한 결과,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신혼 2주의 부부였다. 반면, 결혼 20년 차 부부는 상대방에 대한 질문에 대한 오답률이 높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궁금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 초반에는 상대의 감정 변화를 세심하게 살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 사람은 원래 이렇다’고 생각하며 더 이상 알아가려 하지 않는다. ‘거봐, 저 사람 또 저러네.’, ‘이제는 말해도 소용없어.’라는 식으로 단정을 짓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람은 변한다. 나이를 먹고, 환경이 바뀌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생각과 감정이 달라진다.
행복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서로를 알아가려는 노력’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상대방이 변하는 만큼, 나도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서로에게 끊임없이 업데이트해야 한다.
하루 10분이라도 서로의 감정을 묻고 듣는 시간을 갖기
상대방의 취향 변화를 알아보고 작은 관심을 표현하기
함께 새로운 경험을 하며 공통의 추억을 쌓기
일방적인 기대보다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대화하기
‘나는 이렇다’가 아니라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라고 이야기하기
배우자의 말에 반박하거나 판단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공감하고 들어주기
사실 우리는 평생을 살아도 나 자신조차 완벽히 알지 못한다. 그런데 어떻게 배우자를 완전히 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부부는 끝없이 서로를 탐구해야 한다. 그것이 오래도록 사랑을 유지하는 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