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말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그 말 뒤에 숨겨진 진짜 의미는 이렇다.
“남들보다 조금 더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있어, 아마도.”
과연 그럴까? 진짜 자유란,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선택하며, 책임질 수 있을 때 생기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택은 타인의 시선, 사회의 기준, 비교와 모방 속에서 결정된다. 우리는 무언가를 원한다고 믿지만, 그 욕망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남이 부러워했던 것, 사회가 좋다고 말한 것, '성공'이라 불리는 무형의 틀 안에 있다. 그러니 결국, 그 자유는 선택지 안에서의 자유일 뿐이다. 이미 누군가 짜놓은 틀 안에서의 유동성. 그걸 진짜 자유라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수많은 혼란과 부정, 그리고 불편한 진실들을 마주해야 한다. 예컨대 나는 정말 이 직업을 좋아하는가? 내가 결혼을 원한 이유는 사랑이었나, 아니면 안정감이었나? 이 도시는 나에게 어울리는 공간인가, 아니면 익숙한 감옥인가?
이런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하면, 삶은 더 이상 단순하지 않다. 그동안 “괜찮다”라고 눌러왔던 감정들이 되살아나고, “어쩔 수 없다”라고 타협했던 순간들이 눈앞에 떠오른다. 하지만 바로 거기서, 진짜 자유가 시작된다. 진짜 자유는 혼란과 함께 온다. 그 혼란을 견디고 나서야, 내가 원한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그 익숙함 속에서는 큰 충돌도 없고, 대단한 감정의 동요도 없다. 그러나 그건 '평온'이 아니라 '마비'다. 감각을 닫고, 생각을 멈추고, 그저 살아내는 삶.
자유는 뭔가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필요 없는 것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세상의 기준, 타인의 기대, 나를 조종하는 과거의 기억. 그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나의 삶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
나는 지금, 누구의 꿈을 살고 있는가? 이 길은 정말 내가 택한 길인가? 아니면 익숙한 흐름에 몸을 맡긴 결과인가? 이 질문에 당장 답하지 못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질문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자유라는 착각 속에 머무르지 않게 된다.
우리는 이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제는 아무 감흥도 없이 넘긴다. 하지만 정말로 묻자.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해야 할 역할'에 자신을 맞춰 살아왔다. 학생이니까, 직장인이니까, 부모니까, 친구니까… 그 많은 역할들이 모여 내 삶을 구성했지만 그 안에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나답게' 산다는 건 거창한 이상이나 철학을 관철하는 게 아니다. 그건 오히려 사소한 순간에 드러난다.
싫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필요 이상으로 웃지 않는 얼굴
침묵을 허락하는 여유
하고 싶은 말을 천천히 꺼낼 수 있는 공간
그 모든 게 ‘존재’에서 출발한다.
이 질문이 선명할수록, 우리는 더 이상 ‘반응하는 삶’이 아닌 ‘선택하는 삶’을 살게 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어진 삶을 살아냈다. 하지만 이제는 ‘나’에서 시작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타인이 부여한 이름이 아니라, 내가 내게 주는 이름으로.
존재로부터 출발하는 삶은 늘 불편하다. 불완전하다. 외롭기도 하다. 그러나 그 삶만이 우리를 진짜 나로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