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우리’라는 말은 단순한 1인칭 복수가 아니다. ‘우리나라’, ‘우리 집’, ‘우리 어머니’처럼 일상적으로 쓰이는 이 표현은 유독 한국어에서 두드러진다. 영어권에서 “my husband”라고 표현할 상황에서도 한국인은 “우리 남편”이라 말한다. 심지어 “우리 마누라”라는 말까지도 거리낌 없이 쓰인다. 외국인의 시선에는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한국인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우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다. 일부는 ‘우리’를 ‘울타리’의 줄임말로 본다. 돼지우리, 소우리처럼 동물의 공동 울타리를 뜻하는 말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엄마’를 ‘울 엄마’로도 부르며, 무언가를 함께 품는 관계의 울타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공동체적 정체성이 강했다. 함께 모여 살아가는 마을, 온 가족이 한 집에서 사는 대가족 문화, 상부상조의 전통은 모두 ‘우리’의 문화적 배경이다. ‘나’보다는 ‘우리’를 앞세우며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 ‘우리’라는 말이 항상 따뜻한 의미만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 안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숨어 있다. 울타리 안에서의 정(情)과 이타심은 외부로 나가는 순간 이기심과 배타성으로 바뀌기도 한다. “우리끼리는 괜찮아”, “우리는 안 그래”라는 말속에는 듣는 이를 우리 바깥, 즉 ‘너’로 구분하려는 무의식적 배제가 숨어 있다. ‘우리’라는 말이 포용보다 분리를 위한 도구가 되는 순간이다.
최근 들어 이 ‘우리’라는 말이 점점 낯설어지고 있다. 사회는 점점 더 조각나고, 집단은 더 작고 단단한 울타리로 쪼개진다. 편이 갈리고, 심지어 같은 편 안에서도 다시 주류와 비주류로 나뉜다. 공동체 의식은 사라지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이기주의가 사회를 잠식한다. 타인을 향한 공감은 줄고, 경쟁과 혐오, 무관심이 그 자리를 채운다.
‘우리’는 이제 회복되어야 할 가치가 되었다. 더 넓고 깊은 공동체의식을 회복해야만 한다. 그 길만이 우리가 함께 존재하며,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 편향(in-group bias)’이라는 개념이 있다. 특정 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소속감이 타인을 배제하고 고정된 신념만을 강화하는 현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안의 충돌하는 가치들을 성찰해야 한다. 나의 신념 역시 수정될 수 있다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확신은 의심을 통해 견고해져야 한다.
또한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는 연습도 중요하다. 내 생각과 다른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진정한 ‘우리’를 확장하는 힘이 된다.
결국, 변화는 개인으로부터 시작된다. 매일 조금씩 더 나은 내가 되려는 노력이 모일 때, 더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진다. 공동체의식도 마찬가지다. 작지만 꾸준한 실천이 쌓여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
첫째,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타인의 입장을 헤아려야 한다.
둘째, 돕고 나누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
셋째,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려는 태도를 지향해야 한다.
아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다. 함께 어울리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삶은 나를 해치는 이기심보다 훨씬 더 강력한 삶의 기반이 된다. 그리고 그 관계는 맹목적 종속이 아니라, 서로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건강한 유대 위에서 더욱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