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이 왜 정치에 집착하는가? 그리고 공존은...

by 엠에스

< 노인들이 왜 정치에 집착하는가? 그리고 공존은... >



투표 열정에 담긴 심리적, 사회적, 존재론적 맥락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들이 왜 현실 정치에 집착하고, 선거에 이토록 열렬한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이는 단순히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적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남은 시간의 질적 무게, 인생의 총체적 정리라는 맥락, 그리고 노년기 특유의 심리적 감정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아래는 그 내면을 구성하는 주요한 이유들이다.



'삶의 심판대'로서의 정치 참여

노인에게 있어 정치는 단순히 정책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과 선택이 사회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확인받는 상징적 심판대다. 생애 동안 지지했던 이념, 가치, 정치 세력이 여전히 유효한지, 사회적 존중을 받는지에 따라 자신의 인생도 ‘의미 있는 것이었다’고 느끼게 된다. 이는 정치적 입장을 넘어선 정체성의 문제이며, 실존적 자존감과 직결된다.


후세에 대한 유산 의식과 책임감

“나는 떠나지만, 내 아이들과 손주들이 살아갈 세상은 더 나아져야 한다.” 노년기의 정치 참여는 흔히 이와 같은 ‘유산의식(legacy consciousness)’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투표를 통해 자신이 정의롭다고 믿는 질서와 가치를 미래에 남기고자 한다. 그것은 단지 개인의 정치적 기호가 아니라, 자신이 축적해 온 경험과 신념을 사회에 마지막으로 기여하고자 하는 실천이기도 하다.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과 안정의 추구

노인은 급격한 변화보다 익숙한 질서를 선호한다. 변화는 젊은 세대에게는 가능성이지만, 노년층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다. 정치적 격변, 사회구조의 재편, 문화적 가치관의 전환은 노년층에게 혼란과 불안을 야기한다. 따라서 그들은 변화보다는 ‘안정적 지속’을 선택하고, 자신이 오랫동안 익숙하게 살아온 세계를 지켜내고자 투표를 통해 반응한다.


의사결정자로서의 마지막 자존감 확인

사회적으로 점점 주변화되는 노인에게 투표는 여전히 ‘평등하게 남은 마지막 권리’다. 정치 참여는 곧 자신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실존적 감각을 다시 확인하는 방식이며, 사회로부터 소외되지 않았다는 마지막 위안이다. 한 표를 행사함으로써 그들은 “나는 여전히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상징적 자존감을 되찾는다.


죽기 전에 세상의 방향을 확인하고자 하는 본능

죽음을 앞둔 이들은 유난히 ‘세상이 어디로 가는가’에 민감해진다. 정치란 결국 사회의 방향성과 흐름을 결정짓는 영역이다. 노년층은 자신이 떠난 후의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하고, 그 방향이 ‘틀리지 않았으면’ 하는 염원을 갖는다. 따라서 그들은 세상의 미래를 바라보는 마지막 창으로서 정치를 응시하며, 가능한 한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정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복지와 생존 문제로서의 정치

노년기의 정치 참여는 이념적 선택이라기보다 ‘삶의 실질적 조건’과 직결된 행위다. 세금, 연금, 건강보험, 요양제도 등은 대부분 정치와 정책의 결정에 따라 좌우되며, 이는 곧 생존의 문제다. 따라서 노년층의 투표는 자기 존재를 지키기 위한 실존적 방어 행위이기도 하다. 젊은 세대의 선택이 곧 자기 삶의 조건을 위협할 수 있다는 판단은 강한 경계심과 참여의식으로 이어진다.


감정적 정리와 역사적 평가로서의 정치

정치는 노년층에게 있어 ‘자신이 살아온 시대’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그들이 경험한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의 과정을 부정하거나 폄훼하는 정치세력이 등장하면, 그것은 단순한 반감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부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치적 행위는 그들에게 있어 자신의 역사와 감정을 정리하는 방식이며, 그 마지막 정리의 감정은 때때로 젊은 세대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절실하고 치열하다.




세대 갈등으로 번지는 '노인의 정치'

그러나 이러한 노년층의 절박한 정치 참여는 젊은 세대에게는 때때로 ‘시대착오적 고집’이나 ‘발전의 장애물’로 인식된다. 젊은 세대는 자신들이 살아갈 세상에 대해 발언하고 싶은데, 그 결정권을 곧 죽음을 앞둔 세대가 쥐고 있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낀다.


이러한 인식의 충돌은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세대 갈등의 핵심 축이 된다. 한쪽은 "내가 살아온 세상과 가치를 지켜야 한다"라고 외치고, 다른 쪽은 "내가 살아갈 세상은 내가 결정해야 한다"라고 반박한다. 이 간극은 정치적으로 격화될수록 쉽게 증오와 조롱으로 이어진다. 노인 세대는 “지금 젊은것들은 버릇이 없다”라고 말하고, 젊은 세대는 “늙은 것들이 나라를 망친다”라고 응수한다. 사회는 점점 세대 간 대화를 잃고, 단절된 적대의 구도로 향하게 된다.




투표 연령 제한 논쟁과 민주주의의 딜레마

이러한 갈등의 일환으로 “노인에게 투표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특히 인터넷과 SNS에서는 ‘65세 이상 투표 금지’, ‘퇴직과 함께 투표권도 퇴장’ 같은 급진적 목소리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하지만 이는 민주주의의 핵심 원칙을 뒤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다. 민주주의는 나이, 성별, 소득, 신체 조건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다. 투표권은 단지 정책 선택의 수단이 아니라, 시민으로서의 존재를 인정받는 상징이다. 이를 연령에 따라 제한한다면, 우리는 사회적 약자에게 투표권을 박탈하는 선례를 열어주는 셈이 된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단순히 이상론만으로 덮을 수 없는 현실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삶을 살아갈 시간이 짧은 이들이 다수의 표로 미래를 결정하는 구조는 실제로 제도적 균형을 요구받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것이야 말로 21세기 고령사회가 직면한 민주주의의 새로운 과제다.




사회적 합의의 위기, 그리고 필요한 질문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진짜 위기는 ‘노인들이 너무 많이 투표한다’는 사실이 아니다. 문제는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 감정으로만 상대를 규정하는 사회적 합의의 실패다. 노인의 정치 참여는 그 나름의 정당성과 절박함을 담고 있다. 동시에 젊은 세대가 느끼는 박탈감과 무력감 또한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 누구의 목소리가 더 중요하냐가 아니라, 어떻게 서로의 목소리를 조율할 것인가?

-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단지 한 표씩 행사하는 제도의 이름인가, 아니면 세대 간 공존의 기술인가?


이 물음에 진지하게 답하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선거의 계절마다 ‘세대전쟁’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정치란 결국 ‘함께 살아가는 법’을 찾는 기술이어야 한다. 노인들의 투표를 비난하기 전에, 그들의 감정과 젊은이들의 미래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부터 고민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이 땅을 떠나는 최악은 결코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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