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8일. 그날의 하늘이 어떤 빛깔이었는지, 광주의 거리에는 어떤 소리가 울려 퍼졌는지, 나는 직접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은 내 인생의 한 페이지에 새겨져 있다. 제대를 불과 몇 달 앞두고 연평도의 해병대 막사 안에서 접한 광주의 비상사태 소식은 단순한 뉴스가 아니었다. 긴 군생활의 끝자락, 짬밥 냄새에 찌든 그 하루하루의 끝에 드디어 자유를 마주할 참이었는데, 다시 비상등이 깜빡였다.
혹시 제대가 연기되는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앞섰다. 다행히 예정대로 군문을 나설 수 있었지만, 그날의 혼란과 불길한 감정은 지금껏 잊히지 않는다. 당시 나는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왜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리고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나는 깨닫게 되었다. 그날 광주에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숭고한 외침이 터져 나오고 있었음을.
그 외침은 돌이킬 수 없는 희생으로 이어졌다. 민간인을 향한 총성과 발포, 무차별한 폭력과 검거, 거리에서 피 흘리며 쓰러진 젊은이들의 모습이 이제는 기록과 영상으로 남아 우리 곁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기록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들은 단지 광주의 시민이 아니었고, 단지 어느 시대의 피해자도 아니었다. 그들은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온 국민의 존엄을 위해 몸을 던진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희생자들에게 마음 깊이 고개를 숙인다. 그들의 용기와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바란다. 그 정신이 단지 추념과 기념으로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사회와 후손들 속에서 살아 숨 쉬기를. 학교에서 배우고, 가정에서 이야기하고, 국가가 기리는 살아 있는 정신으로 전해지기를.
하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있다. 5.18의 진실은 아직 완전히 열려 있지 않다. 일부는 명확히 밝혀졌지만, 여전히 그날의 전모에 대한 접근은 제약이 있고, 정치적 해석의 그늘 속에 갇혀 있다. 이제는 용기 있게 그날의 모든 기록과 명단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당시의 혼란 속에서 있었던 무기고 탈취 등의 행위에 대해서도 성찰과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진실은 감추거나 미화해서는 안 된다. 진실은 있는 그대로 드러날 때, 진정한 용서를 낳고, 더 깊은 이해로 이어진다.
나는 5.18이 광주의 역사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특정 지역이나 정치 세력의 상징으로만 소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 숭고한 희생의 정신이 우리 모두의 것으로, 이 땅의 모든 시민이 공유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뿌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행사도, 추모도, 역사 교육도 광주라는 지리적 경계 안에 갇히지 않고,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실천되기를 바란다.
정치는 때로 역사를 이용하려 들고, 기념일을 구호로만 채우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누군가에게 허락받아야 하는 특권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국민이 지키고 가꿔야 할 보편의 가치이다. 그 가치를 위해 피 흘렸던 이들의 이야기를 외면하지 말자. 특정한 색깔로, 특정한 세력만의 영광으로 치장하지 말자. 진실은 그런 허울 속에서 퇴색된다.
비바람 몰아치는 세월 속에서도 꿋꿋이 지켜야 할 것, 그것은 바로 진실이다. 진실은 언젠가 반드시 드러나고,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공동체를 다시 일으킨다. 5.18의 정신은 바로 그런 진실 위에 세워진다.
나는 오늘도 묵묵히 그날을 기억한다. 광주의 거리에서 자유를 외쳤던 이름 모를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의 희생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에 얼마나 값진 토대였는지를 되새긴다.
권력으로 국민을 농단하는 것은 결코 용인할 수 없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자유'라는 단어를 가볍게 쓰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피로 써 내려간 이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