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행랑. 어디선가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비겁함의 상징입니다. “도망치지 마라”, “끝까지 버텨라”는 말이 우리 가슴속엔 경구처럼 새겨져 있죠. 하지만 인생에서 싸움이 모두 정당하거나,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당하지 않은 싸움에서 물러나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분별력입니다.
우리는 매일 싸움 속에 놓입니다. 회사에서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눈 감을 것인가, 맞설 것인가? 인간관계에서 무례한 사람에게 침묵할 것인가, 관계를 끊을 것인가? 삶이 끊임없이 우리를 밀어붙이는 그 지점에서, 줄행랑은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선택’이며 전략이 됩니다.
진나라 문공의 품격 있는 후퇴
춘추시대 진나라 문공은 다섯 나라의 연합 공격 앞에 놓였을 때, 정면 승부 대신 후퇴를 택합니다. 그러나 그 후퇴는 단순한 회피가 아니었습니다. 과거 은혜를 언급하며 명분을 세우고, 유리한 지형에서 반격할 기회를 노렸죠. 결과는 대승.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피하고, 싸움의 조건을 바꾼 것입니다.
맹상군의 탈출극: 닭 울음과 도둑의 지혜
전국시대 맹상군은 진나라에 갇혔을 때 정면 돌파 대신 식객들의 도움으로 야간 탈출을 감행합니다. 닭 울음소리로 관문을 열고, 개 도둑이 필요 문서를 훔칩니다. 어떻게 보면 우스운 줄행랑 같지만, 결국 그는 제나라로 돌아가 권력을 되찾습니다. 죽을 수도 있었던 순간, 도망이 그를 살렸고 다시 일으켰습니다.
싸우지 말아야 할 싸움이 있다
병법에서는 싸움의 승패보다 싸움을 할지 말지를 고르는 안목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패할 싸움을 억지로 치러 병력을 모두 잃는 장수는 무능하며, 상황을 읽고 싸움을 피하는 자는 지혜로운 장수입니다. 우리 삶도 같습니다. 버티고, 맞서고, 끝까지 해보라는 말은 때로 옳지만, 그것이 모든 상황에 통용되는 해답은 아닙니다.
당신을 소모시키는 직장이라면, 당신을 망가뜨리는 관계라면, 당신을 깎아먹는 싸움이라면 줄행랑이야 말로 가장 현명한 전략입니다.
줄행랑은 끝이 아니다
도망이 비겁한 이유는 '도망친 이후'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입니다. 줄행랑의 본질은 ‘재정비’입니다. 물러선 그 자리에서 묻고, 복기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내가 왜 밀렸는가? 어떤 자원이 부족했는가? 다음엔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도망은 순간의 후퇴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 분석과 성장의 시간이 따라온다면, 그 줄행랑은 도약의 서막이 됩니다.
줄행랑 덕분에 살아난 사람들
현대에도 줄행랑을 택한 이들은 많습니다. 번아웃에 시달리던 직장인이 모든 걸 내려놓고 시골로 내려가 삶의 의미를 되찾은 이야기, 폭력적 연애에서 벗어난 여성이 몇 년 후 새로운 커리어로 인생을 일으켜 세운 이야기, 사업 실패로 나락에 빠졌던 사람이 시간을 들여 자산을 재정비하고 다시 일어선 이야기, 이들은 모두 줄행랑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 줄행랑은 무너짐이 아닌, 회복의 통로였습니다.
줄행랑을 거부하다 무너진 사람들
반면, 싸우지 말아야 할 싸움에서 끝까지 버티다 무너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고 끝내 우울증에 빠진 사람, 끊지 못한 관계에서 자존감을 잃고 방황한 사람, 체력과 정신이 고갈된 후에야 ‘왜 그때 도망치지 않았을까’ 후회하는 사람,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이기는 용기가 아니라, 물러나는 용기였습니다.
줄행랑은 삶의 전술이다
줄행랑은 비겁함이 아닙니다. 그건 싸움의 기술이고, 삶을 살리는 선택지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싸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때로는 물러나기 위해, 다시 돌아오기 위해 줄행랑을 택합니다. 줄행랑은 도망이 아니라 다음 전장을 위한 준비입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삶에서 가장 필요한 싸움은 버티는 것일 수도, 도망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선택을 두려워 마십시오. 줄행랑도 전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