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길

by 엠에스

< 아버지의 길 >


한때 서강대의 한 교수가 서울에 거주하는 대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응답자의 약 40%가 “경제적 지원”, 즉 ‘돈’이라고 답했습니다.


또 다른 조사도 있습니다.

2000년대 중반,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부모가 언제쯤 세상을 떠나는 게 가장 좋을까?”라는 충격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가장 많은 응답은 ‘은퇴 직후인 63세 전후’.

이유는 ‘퇴직금을 남겨둔 채 돌아가시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라는 논리였습니다.


물론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제한된 조사였지만, 이 결과는 우리 사회 가족관계 속에서 아버지의 위상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한숨이 나옵니다.

공부 잘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는 것이, 반드시 인격적 성숙이나 효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를 ‘사람’이 아닌 ‘자산 공급자’로 인식하는 정서.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공감받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번 돈, 내가 쓰고 죽자.”

한때 국내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다 쓰고 죽어라(Die Broke)』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족이 당신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비로소 당신도 마음 편히 떠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마디.

“자식에게 재산을 남기는 것은 때로 부모를 잊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말도 있죠.

물론 모든 자녀가 그렇지는 않지만, 몇 가지 데이터는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직시하게 합니다.


한 라디오 방송국의 설문.

“당신은 어머니가 더 좋습니까, 아버지가 더 좋습니까?”

결과는 어머니 83.3%, 아버지 16.7%.


미국 링컨대학교의 조사도 놀랍습니다.

학생 5만 명에게 “아버지와 TV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68%가 TV를 선택했습니다.


심지어 아버지들 스스로도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자녀가 고민이 생기면 누구와 먼저 상담할 것 같습니까?”

아버지 응답자의 절반 이상(50.8%)이 “나”라고 답했지만,

실제 자녀 중 아버지를 첫 번째 상담 상대로 꼽은 비율은 단 4%였습니다.


아버지는 가정의 중심이라 믿지만, 자녀들의 인식 속에서는 ‘부재중인 존재’로 자리 잡은 지 오래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한국 사회는 산업화를 거치며, 아버지를 ‘가정을 떠난 생계부양자’로 길러냈습니다.

“묵묵히 일하며 가정을 지킨다”는 말은 때론 가정을 ‘생계의 대상’으로만 보는 태도로 굳어졌고,

그 결과 정서적 관계에서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그 유산이 권위가 아닌 거리감으로 되돌아옵니다.


2020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의 조사에 따르면 아버지의 85%는 ‘나보다 가족이 우선’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이는 어머니(76.5%)보다도 높은 수치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흐릅니다.


가정 내 주요 의사결정에서 자녀 교육의 주도권을 쥐는 비율은 어머니 42.6%, 아버지는 14.6%.

감정적 유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인 자녀와 따로 사는 경우, 아버지와의 연락은 주당 2.9회, 어머니는 3.2회.

노년기에 홀로 남은 경우, 아버지와의 연락 빈도는 0.8회/주, 어머니는 3.0회/주였습니다.

참으로 서글픈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현실은 동시에 변화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제 묻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길, 지금 어디쯤 가고 있습니까?”

이제는 가부장적 권위를 되찾기보다, 새로운 아버지의 길을 주체적으로 걸어야 할 때입니다.


그 길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의 말을 경청하고 공감하며, 삶의 작은 취미 하나를 소중히 여기고, 친구를 꾸준히 만나며, 스스로를 조금씩 성장시키는 것, 존경이 아닌 공감으로, 권위가 아닌 신뢰로, 아버지는 다시 가족 안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육아휴직을 자청하는 아버지,

아이와 함께 일기를 쓰는 아버지,

가정의 ‘조력자’가 아닌 ‘공감자’가 되려는 아버지.

그러한 변화가 아버지를 다시 가족의 중심으로 이끕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습니다.

기업의 문화, 사회의 제도, 대중의 인식까지 함께 변해야 합니다.

육아 참여가 ‘선택’이 아닌 ‘권리’가 될 때, 아버지도 인간답게 숨 쉴 수 있습니다.


아버지, 지금 이 순간.

가족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어떤 선물을 줄 수 있습니까?

그 대답이 곧, 당신이 걸어갈 ‘아버지의 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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