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잘 살기 위해, 한국 사회가 마주한 열두 개의 질문
이 땅에 오직 진정한 정치인만 있고, 정치꾼들만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맑고 건강한 세상을 누릴 수 있을까?
정치란 본래, 서로 다른 의견과 이해를 조율하여 공동체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고귀한 일이다. 좋은 정치인은 시대를 바꾸고, 국민의 삶을 지탱한다. 문제는, 그 이름을 빌려 자신의 탐욕과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들—정치꾼—이다.
정치꾼들은 끊임없이 편을 갈라 싸움을 붙이고, 국민 사이의 불신과 증오를 부추긴다. 혼란은 그들의 기회이고, 분열은 그들의 전략이다.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진실은 가려지고, 그들은 그 혼탁한 물속에서 사리사욕의 고기를 낚는다.
공정과 정의는 그들의 입에선 공허한 구호일 뿐, 행동으로는 늘 자신의 권력과 안위를 먼저 챙긴다. 국민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해지기를 그들은 진심으로 바라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존재할 이유도, 무대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굳이 싸움터를 만든다. 논쟁이 아닌 말싸움으로, 정책이 아닌 정쟁으로, 미래가 아닌 과거로 국민을 유도한다. 그 무대 위에서 우리는 꼭두각시가 되어 이념의 칼끝을 서로에게 겨눈다.
상식은 무너지고, 원칙은 실종된다. 철학 없는 정치꾼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탐하고, 그 권력으로 국민의 삶이 아닌 자신의 배만 채운다. 높은 자리에 앉아 배짱 좋게 콧노래를 부르며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물어야 한다. 이 정치꾼들은 과연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정치꾼을 키우는 건 때로 우리 자신이기도 하다. 혐오와 분열을 소비하는 언론, 감정적 판단에 흔들리는 유권자, 정책보다 이미지와 말싸움을 즐기는 대중문화—이 모든 것이 본질 없는 정치 쇼를 조장한다.
우리가 성과보다 구호를, 실력보다 진영을 택할 때마다 진짜 정치인은 설 자리를 잃고, 정치꾼만이 살아남는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것은 분노를 넘어선 자각이다. 정치는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시민의 책임으로 회복해야 할 공동의 공간이다.
변화를 원한다면, 우리 모두가 깨어 있어야 한다. 비판할 줄 아는 시민, 정책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유권자, 감정보다 정보를 우선하는 사회 분위기가 건강한 정치를 만든다.
더 이상 광대의 무대에 휘둘리지 말자. 주인의 자격으로 질문하고 감시하자. 그리고 정당한 평가와 투표로 우리의 삶과 미래를 스스로 지켜내자.
정치는 국민을 위한 일이지, 정치꾼을 위한 놀이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다툼보다 대화가, 분열보다 화합이, 권력보다 공감이 살아 숨 쉬는 그런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이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어떻게 하면 이 나라에서 더 잘 살 수 있을까. 이 단순한 물음은 시대가 바뀌어도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경제 성장률이 높을 때도,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할 때도, 우리는 어딘가 불안하고, 뭔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더 잘 산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 풍요를 의미하지 않는다. 공정한 기회, 안정된 삶, 의미 있는 일과 관계,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이 함께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살 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땅에서 우리가 마주한 삶의 불안과 불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실마리는 오늘의 한국 사회가 당면한 열두 개의 구조적 질문 속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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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낳지 않는 사회, 늙어가는 나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사회다. 출산율은 0.7명 아래로 떨어졌고, 초고령사회는 코앞이다. 아이 낳기를 두려워하는 청년들의 고통, 돌봄과 경제를 모두 떠안은 중장년의 피로, 노후를 불안 속에 살아가는 노인의 현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출산장려’가 아니라, 사람이 ‘살고 싶게’ 만드는 사회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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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왜 꿈을 꾸지 않는가
좋은 대학, 좋은 회사. 그러나 그 끝에 기다리는 건 비정규직, 불투명한 미래, 그리고 ‘공시 준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빼앗긴 청년들이 ‘현실 감각’만 배워가는 사회는 결국 창의도, 활력도 잃는다. 일자리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청년의 정체성과 존엄에 관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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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왜 삶의 터전이 아니라 투기의 대상이 되었나
한 채의 집이 인생을 가르고, 부모의 자산이 자식의 미래를 결정한다. ‘내 집 마련’이란 말이 더 이상 설렘이 아닌 고통이 된 지금, 부동산 시장은 자산 양극화의 첨병이 되었다. 집은 투자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기반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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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침은 경쟁을 넘어설 수 있을까
교실 안에서의 경쟁, 교실 밖의 사교육, 입시로 압축된 청소년기. 교육은 성장의 기회가 아니라, 생존의 전장이 되었다. 지식보다 배움, 경쟁보다 협력, 일률보다 다양성으로 가는 교육 대전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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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왜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가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하위 계층은 공정한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불평등은 단지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차이가 아니라, 신뢰와 연대의 붕괴를 가져온다. 나의 노력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세상, 그것이 절망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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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왜 삶을 바꾸지 못하는가
정치는 국민의 대표이지만, 때론 가장 멀리 있는 존재가 된다. 진영 논리, 정쟁, 그리고 정체된 구조 속에서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은 사라졌다. 정치가 신뢰를 회복하려면, 더 많은 시민이 정치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말이 아니라 제도로, 권력이 아니라 책임으로 정치를 다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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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아프다, 우리는 괜찮을까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의 일상 속으로 들어와 있다. 그러나 탄소중립 선언은 아직 선언일뿐, 행동은 더디다. 에너지 전환, 녹색 일자리, 소비 구조 개편까지, ‘생태적 전환’은 거대한 조정이 아니라, 일상의 새 길을 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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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청년과 고령층, 그리고 플랫폼 노동자. 노동의 얼굴은 다양해졌지만, 제도는 여전히 낡은 틀에 갇혀 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른 대우를 받는 구조는 정의롭지 않다. 일의 가치와 사람의 존엄을 함께 존중하는 노동 개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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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별 갈등, 소통은 가능한가
젠더 갈등은 어느새 정치적 무기가 되었다. 차이를 인정하기보다는 혐오와 왜곡이 앞서고, 성평등은 퇴보의 기로에 서 있다. 성별은 갈등의 프레임이 아니라, 다양성과 공존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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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은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가
AI, 빅데이터, 디지털 전환이 일상을 바꾸는 시대. 그러나 기술의 혜택은 불균등하고, 감시는 강화된다. 기술은 통제의 도구가 아니라, 포용의 수단이 되어야 한다. 인간 중심의 디지털 사회를 설계하는 윤리와 제도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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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은 사라지는가
도시로 사람이 몰리고, 지역은 텅 빈다. 지방 소멸은 단지 행정 단위의 축소가 아니라, 한 사회의 균형 감각이 무너지는 일이다. 지역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경제, 교육, 문화의 흐름이 필요하다. 수도권 중심주의를 넘어, 다핵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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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잘 살고 있는가
이 모든 문제는 따로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저출생과 청년 일자리, 부동산과 교육, 노동과 기술, 지방과 기후는 서로 얽혀 있는 사회적 생태계다. 결국 우리가 묻는 것은 단 하나다. “우리는 함께 잘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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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는 성장이 아니라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 필요하다. 경쟁보다 협력, 독점보다 분산, 단기 성과보다 장기 지속 가능성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가 신뢰를 회복하고, 제도가 약자를 품으며, 공동체가 회복력을 갖추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 사회가 더 잘 살기 위해서는, 나와 내 가족만이 아닌, 이웃과 미래 세대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 우리가 풀어야 할 진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