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어디에 있는가

by 엠에스

<권력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권력을 흔히 ‘위’에서 찾는다. 높은 곳. 권좌, 명령, 훈장, 혹은 커다란 책상 너머에서. 그러나 문득 이런 의문이 든다. 권력은 정말 그런 식으로만 존재하는 걸까?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많은 권력은 오히려 작고, 사소하고, 조용하다. 눈에 띄지 않게 작동한다. 때로는 침묵처럼, 때로는 친절처럼 다가온다. 말 한마디, 눈빛, 단톡방의 분위기, 누가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보이지 않는 규칙, 이 모든 것이 권력이다.


한나 아렌트는 권력을 “함께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라 했다. 막스 베버는 “타인에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라 말했다. 미셸 푸코는 권력을 “관계 속에서 흐르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 정의했다. 이들의 사상은 하나의 공통점을 향한다. 권력은 단순히 ‘가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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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모으고, 곧 내친다


권력은 처음엔 사람을 끌어모은다. 조직을 만들고, 지지를 얻고, 대의를 말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권력은 사람들을 밀어낸다. “처음엔 함께였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는 말처럼.


이것은 어느 정치인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직장에서, 모임에서, 심지어 가정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다. 한 번 자리를 잡은 권력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경계선을 만든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존재는 밖으로 밀려난다. 희소한 자원이라는 인식, 나눌 수 없다는 불안이 그 바탕에 있다. 그래서 권력은 이렇게 속삭인다. “너는 이제 불필요해.” 그것이 권력의 냉정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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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혼자 가질 수 없다


우리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으로 나누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권력은 그렇게 단선적이지 않다. 상사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부하가 그 명령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교사가 수업을 할 수 있는 것은, 학생들이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등을 돌리면 어떤 권력도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권력은 쌍방의 암묵적 동의 위에 세워진다. 명령은 듣는 이가 있어야 명령이 되고, 통치는 받아들이는 이가 있어야 통치가 된다. 권력은 관계이고, 그 관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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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도 권력을 벗어나지 못했다


역사는 아이러니하다. 억압을 비판하며 등장한 권력이 또 다른 억압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권력을 해체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소련, 북한, 마오의 중국 등에서 더 강한 중앙집권 체제로 나타났다.


억압을 비판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아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권력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누구와, 어떻게 나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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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나눌수록 커진다


우리는 권력을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권력은 위에서만 오지 않는다. 오히려 아래에서부터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권력은 함께할 때 생긴다고. 시민이 참여하고, 이웃과 논의하며, 공동체가 스스로 결정할 때, 그 권력은 지속가능해진다.


이런 권력은 억누르지 않는다. 오히려 키운다. 나눌수록 커진다. 그것은 명령이 아니라 동의의 힘, 통제보다는 신뢰의 기반 위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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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권력은 더 보이지 않게 작동한다


오늘날 권력은 더 이상 국회, 법정, 청와대 같은 제도권 안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은 이제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디지털 플랫폼 곳곳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 인스타그램의 좋아요 수, 카카오톡 단체방의 미묘한 분위기, 뉴스 댓글의 흐름—모두가 작지만 분명한 권력의 작동 방식이다.


이 시대의 권력은 더 이상 눈에 띄는 감시자가 아니다. 푸코가 말한 감시의 시선은, 이제 플랫폼 알고리즘의 코드 속으로 들어갔다. 중요한 것은 ‘누가 감시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스스로 감시하게 만드는가’다. 우리는 더 이상 명령을 통해 통제당하지 않는다. 대신, 노출되기를 원하고, 반응받기를 갈망하며, 보이지 않는 기준에 맞추어 스스로를 조정한다. 우리가 자발적으로 규범을 내면화하고, 알고리즘에 적응하는 과정 자체가 디지털 시대의 권력 구조다.


목소리를 가진 자가 권력을 가진다 — ‘빅 마우스’ 현상

이와 함께 주목할 것은 ‘빅 마우스(Big Mouth)’ 현상이다. 이는 단순히 말이 많은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빅 마우스는 이제 디지털 공론장의 방향을 좌우하는 새로운 권력의 얼굴이다. 팔로워 수, 조회 수, 리트윗 수가 ‘의미의 권위’를 만든다. 유명 유튜버, SNS 인플루언서, 커뮤니티의 핵심 멤버들은 이제 여론을 형성하고, 때로는 사실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들은 제도적 권력을 가지지 않았지만, 프레이밍(frames)을 설정하고, 무엇이 말할 만한 것인지 결정하며, 어떤 목소리가 배제될 것인지를 간접적으로 통제한다. 이러한 비공식 권력은 더욱 조용하게, 그러나 강력하게 사회적 판단의 기준을 바꾸고 있다.


플랫폼 자본주의, 알고리즘의 권력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소통이 아니다. 디지털 권력은 플랫폼 자본주의와 결합해 새로운 지배 질서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가 보는 정보, 연결되는 사람, 판단하는 방식은 모두 ‘중립적인 기술’이 아니라, 자본의 목적에 따라 설계된 알고리즘에 의해 선별된다.


더 많이 클릭하게 만들고, 더 오래 머무르게 유도하고, 더 자주 광고를 보게끔 만드는 시스템. 그것은 소비를 통해 우리의 행동을 유도할 뿐 아니라, 우리의 가치관과 세계 인식까지 형성한다. 이때 권력은 더 이상 정치적 명령이나 법률의 강제가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편향의 구조, 선택지를 제한하는 기술 설계, 데이터로 환원된 인간 존재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디지털 권력은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도 있다

이러한 권력은 단지 개인의 삶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에도 영향을 미친다. 알고리즘은 다수의 클릭과 반응에 민감하지만, 그 과정에서 소수자와 비주류의 목소리는 점점 더 주변으로 밀려난다. ‘잘 보이는 말’만이 살아남고, ‘복잡한 말’은 사라진다. 요란한 주장은 퍼지고, 조심스러운 진실은 묻힌다.


이른바 ‘데이터 포퓰리즘’은 감정적 반응에 최적화된 정보만을 부각하고, 공적 토론보다는 분노와 갈등을 유도한다. 이때 권력은 더 이상 통치자가 아니라, 우리가 좋아요를 누른 손가락, 댓글을 단 감정, 무심코 넘긴 영상 속에 숨어 움직인다.


우리는 알고리즘에 복종하고 있는가?

이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정말 자유롭게 말하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가?

그 판단은 과연 나의 것인가, 아니면 알고리즘이 설정한 것인가?

디지털 시대의 권력은 외부에서 우리를 억압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안으로 들어와, 스스로를 검열하고, 피드백을 중독처럼 반복하게 만든다. 권력은 기술의 형태를 입고, 규율은 개인의 욕망 속에 녹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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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구성되어야 한다


권력은 피할 수 없다. 존재하는 곳마다, 관계가 있는 곳마다, 권력은 생겨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권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권력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윤리로 다룰 것인가이다. 누구나 권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권력이 억압을 재생산하는 도구가 될 것인지, 아니면 함께 살아가는 힘이 될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성숙한 시민의 시작이자, 권력을 인간화하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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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


권력은 누가 위에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의 목소리가 살아남고, 어떤 구조 속에서 반복되며, 누가 그 구조를 설계하는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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