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인의 독백
젊었을 땐 돈이 없어서 못 썼다.
결혼하고 나선 집 한 칸 장만하려고
재형저축 붓고, 대출 갚고,
껌 한 통 사 먹을 때도 손이 떨렸다.
쩨쩨하게 살았다, 스스로를 타박했지만
그게 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줄로 믿었다.
중년이 되어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아이들 대학 보내려 허리띠를 더 조였다.
새 옷은 미뤘고, 여행은 꿈으로 남겼다.
그러는 사이 세월은 손바닥처럼 미끄러져
거울 앞엔 낯선 노인 하나가 앉아 있다.
이젠 치아는 이 빠진 호루라기 같고
임플란트 생각만 해도 가슴이 철렁하다.
하나 둘 빠질 땐 웃었지만
이젠 국 한 숟갈조차 조심스럽다.
무릎 속엔 쥐새끼가 한 마리 산다.
움직일 때마다 찍찍 소리 내며 지랄을 한다.
계단은 산 같고, 길은 멀고,
지팡이는 내 또 하나의 다리가 되었다.
신문 활자는 잉크 번진 먹물 같고
돋보기를 쓰고도 글자는 춤을 춘다.
안경을 쓰고 안경을 찾는 날이
한두 번이 아니다.
걸으면 숨이 차고, 달리면 다리가 찢어지고
앉으면 허리가 시큰, 누우면 어깨가 욱신.
가만히 있어도 ‘여기가 관인가?’ 싶다.
몸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내게서 떠나고 있다.
자랑스러운 며느리, 좋은 직장 다닌다 했더니
손자 돌봐주느라 내 허리가 먼저 무너졌다.
오래간만에 자식한테 용돈 한번 타면
손자 신발 하나 사주고 지갑은 바람만 남는다.
효도관광이랍시고 따라나섰다가
다리는 후들거리고 마음은 더 시리다.
텅 빈 집에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
손주 생각에 눈시울이 젖는다.
오랜만에 찾아온 손주는
집 안방 바깥방을 종횡무진 뛰어다닌다.
기쁨도 잠시, 축구공처럼 머리가 핑 돈다.
그래도 고맙다.
그 웃음 하나에 사는 보람을 느낀다.
문득문득 생각난다.
봄이면 마당에 피던 목련 향기,
첫 월급 타고 사온 아내의 코트,
자전거 뒤에 아이를 태우던 골목길…
세월은 갔지만
그 향기만은 내 마음속에 아직 남아 있더라.
‘마음만은 청춘’이라 말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젠 마음도 지쳤고 몸은 더 지쳤다.
견디고 버티며 살아왔지만
그 끝엔 출소 없는 요양원이 기다리고 있다.
비싼 돈 들여 감옥에 들어가고
석방도, 탈옥도 없는 무기징역.
혹시 모범수 되면 감형될까?
그것이 요즘 내 유일한 궁금증이다.
진짜 죄는 나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혼자 두는 세상이 아닐까?
나는 무슨 죄를 지었기에
누구와도 마주 앉을 수 없는 인생형을
살고 있는 걸까?
나만 그런 건 아니다.
길 위의 사람들,
모두 그날을 향해 걷고 있다.
누구나 늙고, 누구나 사라지고,
그래서 누구나 이 독백의 주인공이 된다.
아하…
그래서야 알겠다.
그것이 인생이더라.
***
"나이 듦이 죄가 되어선 안 된다"
노인의 삶은 그 사람 개인의 결과가 아니다. 그 삶은 사회 전체가 쌓아 올린 구조와 선택, 그리고 침묵의 결과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간은 존재하고, 그다음에 본질을 만든다.”
하지만 우리 부모 세대는 ‘본질’을 만들어볼 틈도 없이 자식과 가족을 위해 ‘존재’만을 살아냈다.
이제 우리 사회가 되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왜 인생의 마지막 장은 침묵과 고립이어야 하는가?”
“왜 늙음은 감옥처럼 여겨지는가?”
우리는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이 물음을 놓아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