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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無)에의 갈망

결핍의 존재로서 인간, 그리고 자본주의 시대의 심화된 그림자

by 엠에스

『무(無)에의 갈망』

– 결핍의 존재로서 인간, 그리고 자본주의 시대의 심화된 그림자


결핍은 인간 존재의 시작이다


“인간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한다.” 이 단순한 진술은 인간 존재의 가장 원초적 진실을 드러냅니다. 건강을 잃은 이는 건강을, 사랑을 잃은 이는 사랑을, 돈이 부족한 이는 돈을 원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없음'에서 출발합니다. 이 ‘무(無)에의 갈망’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유대교 『탈무드』, 불교의 연기론, 그리고 현대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관찰된 인간 본연의 속성입니다. 삶은 늘 어떤 '결핍'의 언저리에서 시작되며, 그 결핍을 채우려는 몸부림이 바로 인간의 역사이자 문명입니다.


이는 단순한 심리 현상을 넘어 인간 욕망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진화심리학적으로 보면, 자원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은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부족한 것을 욕망함으로써 인간은 더 좋은 환경을 찾고, 더 많은 자원을 확보하며,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핍의 본능은 ‘무한한 욕망’이라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만족은 잠시이고, 충족된 욕구는 새로운 갈망을 낳습니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 이론은 이 과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합니다. 하위 욕구가 충족되면 상위 욕구가 나타나고, 다시 그것이 결핍이 됩니다. 인간은 그렇게 ‘갈망의 사슬’ 속에서 살아갑니다.


자본주의와 소비문화: 결핍을 끝없이 부추기는 구조


문제는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자본주의 시스템이 정교하게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현대 사회는 ‘무에의 갈망’을 소비로 전환시키고, 그 결핍을 끊임없이 자극합니다. 미디어와 광고는 "당신에게 없는 것"을 집요하게 보여주며, 그것을 가져야만 행복할 수 있다는 착각을 심습니다.


소셜 미디어는 이 현상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인스타그램 속의 완벽한 타인의 삶은 현실의 나를 비참하게 만들고, 끊임없는 비교는 상대적 박탈감을 부릅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말한 ‘아노미(anomie)’ — 사회 규범의 해체로 인한 개인의 방향 상실 — 는 바로 이 시대의 정신적 상태를 상징합니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자유는 역설적으로 무한한 욕망과 무기력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습니다. 이는 단지 경제적 문제를 넘어 인간의 정신적 생존을 위협하는 사회적 병리입니다.


갈망과 종교: 절망의 벽 앞에서 만들어진 신


결핍이 깊어질수록 인간은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고, 자신을 초월한 존재에 의지하고자 합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종교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가지지 못한 것을 대신 채워주기를 바라는 심리의 투사이자, 삶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 기대는 존재입니다.


이러한 신의 개념은 인류학적으로도 설명됩니다. 제임스 프레이저나 뒤르켐, 그리고 프로이트조차 종교의 기원을 ‘불안’과 ‘무력감’ 속에서 찾았습니다. 인간은 통제 불가능한 세계 앞에서 위안을 찾기 위해 신을 창조했고, 신은 인간의 '무에의 갈망'을 감싸는 상징적 틀이 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에서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인간이니라”라고 읊었듯, 이러한 절대자에 대한 의존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나약함을 반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속에는 갈망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마지막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철학의 길: ‘소유’가 아닌 ‘존재’에 눈을 뜰 때


갈망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동서양의 철학은 이 질문에 '소유'가 아닌 '존재'에 집중하라고 답합니다.


『장자』는 도가적 무위자연을 통해, 세상과의 경쟁이나 소유에 대한 욕망을 벗어나 자유롭게 존재하는 삶을 강조합니다. 불교는 집착을 고통의 원인으로 규정하며, 모든 욕망으로부터 해탈할 때 진정한 평화에 도달한다고 말합니다.


서양의 스토아 철학 역시 유사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에픽테토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의 태도와 선택뿐"이라고 했습니다. 외부의 소유가 아닌 내면의 평화, 비교가 아닌 자기 수용이야말로 갈망을 다스리는 열쇠입니다.


갈망의 전환: 성장과 연대의 자양분


그렇다고 해서 갈망을 억누르기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갈망은 때로 위대한 성장을 이끄는 자극이 되기도 합니다. 결핍을 인식하고 그것을 채우기 위한 노력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발전시키고, 타인을 도울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게 됩니다.


가난을 경험한 사람이 가난한 이를 돕고, 병을 이겨낸 사람이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경우처럼, 결핍은 공감의 근거이자 연대의 씨앗이 됩니다. '무에의 갈망'은 이기적 욕망이 아닌, 이타적 행동으로 확장될 수 있을 때 진정한 가치가 발현됩니다.


이러한 전환이 가능한 사회는 공정한 기회와 보상이 보장된 사회일 것입니다. 사회 시스템이 개인의 결핍을 좌절이 아닌 성장의 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할 때, 우리는 '무에의 갈망'을 희망의 언어로 바꿀 수 있습니다.


결론: 겸허한 인간, 그리고 가능성의 빛


‘무에의 갈망’은 인간 존재의 그림자입니다. 그러나 그 그림자는 빛이 존재할 때에만 드러나는 법입니다. 우리가 가지지 못한 것을 향한 갈망은 우리를 괴롭게도 하지만,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갈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갈망을 어떻게 다루느냐입니다. 질투와 비교로 자신을 소진할 것인가, 아니면 성찰과 나눔으로 승화시킬 것인가. 인간은 나약하지만, 그 나약함을 인식하고 수용할 때 오히려 강해질 수 있습니다.


‘무에의 갈망’을 통해 우리는 더 겸손해지고, 더 인간다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결핍은 결국 우리를 타인과 연결 짓고, 사회적 연대를 가능케 하는 다리가 됩니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인간이니라."

그러나 동시에, "그대는 약하지만 위대한 가능성을 품은 존재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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