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불가능한 존재의 역설
우리는 누구도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고, 민족이나 언어,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태어나 보니 누군가의 자식으로, 어떤 민족의 일원으로, 특정 시대의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선택 불가능한 출발점을 우리는 흔히 ‘운명(運命)’이라 부릅니다. 사전은 이를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월적 힘"이라 정의합니다. 하지만 이 개념은 단지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매일 마주하는 실존의 조건입니다.
동물도 식물도 예외가 아닙니다. 개는 개로, 민들레는 민들레로 태어나기를 원한 적이 없습니다. 누구도 존재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생명은 그 불가피성 속에서도 서로 관계를 맺고 감정을 느끼며, 유대를 형성합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면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 역설은 인간만의 것이 아닙니다. 생명체 모두가 ‘그저 태어났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운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천명의 변천: 절대 권위에서 도덕적 책임으로
중국 고대 정치사상에서 ‘천명(天命, Mandate of Heaven)’은 그 절대성을 기반으로 왕조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중심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천명은 시대와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재해석되었습니다.
은나라의 절대적 신권
은나라 시대의 천명은 ‘신의 의지’로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군주는 점술을 통해 신의 뜻을 해석하고, 그것을 민중에게 강요하는 주술적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인간은 신 앞에 수동적 존재였고, 왕은 신의 대리자이자 절대 권력자였습니다. 이는 절대 불변의 세계관을 반영하며, 변화나 개혁의 여지는 거의 없었습니다.
주나라의 도덕적 천명과 역성혁명
그러나 주나라로 오면서 천명은 유동적인 개념으로 전환됩니다. 주나라의 통치자들은 “하늘의 명령은 덕이 있는 자에게로 옮겨간다”라고 보았습니다. 폭군은 하늘의 뜻을 잃은 자이며, 민중은 그를 몰아낼 정당성을 부여받습니다. 이것이 곧 역성혁명(易姓革命)의 철학적 기반입니다.
방벌(放伐)은 부덕한 왕을 타도하는 실천이며, 선양(禪讓)은 유덕한 자에게 자발적으로 왕위를 넘기는 이타적 정치 이상입니다. 이 사상은 유교의 경천애민(敬天愛民) 정신으로 계승되며, 천명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닌, 도덕적 자격을 요하는 명분으로 재정립됩니다.
선택 불가능한 신(神): 환경이 낳은 신화와 토착 신앙
신 또한 선택된 것이 아니라 환경과 운명에 의해 주어진 존재입니다. 고유한 환경은 그에 상응하는 세계관과 종교를 창조합니다. 이는 문화인류학에서 말하는 환경결정론(Environmental Determinism)과 궤를 같이합니다.
원색의 정령: 적도의 신화
적도 지방의 열기와 강한 태양은 자연을 원색으로 물들입니다. 인간의 피부도 진한 갈색이나 흑색을 띠고, 식물과 동물도 강렬한 색채를 자랑합니다. 이러한 생태적 강렬함 속에서 형성된 신은 인간의 삶을 직접적으로 규정하는 정령(精靈)입니다. 그들은 초월적 교리를 설파하지 않지만, 숲, 강, 비, 태풍의 형상으로 인간과 끊임없이 교감하며, 실질적인 공포와 경외를 유발합니다.
설신의 형상: 눈의 땅에서 태어난 신앙
한편 시베리아와 같은 극지방에서는 끝없는 설경과 혹독한 자연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합니다. 눈으로 덮인 땅, 하얀 자작나무, 무색에 가까운 하늘은 그들의 정신세계를 형성합니다. 눈보라와 추위를 견뎌야 하는 그들에게 신은 생존을 보장하는 존재이자 방향을 알려주는 힘입니다. 이곳에서 신은 인격적 신보다 자연 그 자체에 가까우며, 절대 추위의 의인화인 설신(雪神)으로 나타납니다.
절대 신앙의 허상과 환경의 진실
종교는 문화의 일부이며, 문화는 환경과 공진화합니다. 따라서 보편적 진리를 내세우는 종교는 그 자체로 지역적 배경과 맥락을 탈각한 추상화일 수 있습니다. 사하라의 유목민에게, 북극의 이누이트에게, 적도의 농경민에게 동일한 종교를 강요하는 행위는, 신의 이름으로 자연을 무시하고 문화를 해체하는 폭력일 수 있습니다.
종교학자 클리포드 기어츠는 “종교는 삶을 질서 있게 만들고,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며, 불확실성을 견디게 하는 상징체계”라 말했습니다. 이는 각 지역이 그 지역만의 신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열대의 정령, 한대의 설신, 황무지의 태양신 모두 환경이 낳은 신이며, 인간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삶이 강요한 존재입니다.
자유의지와 결정론 사이에서: 덕(德)의 가능성
그렇다면 인간은 그저 주어진 조건에 순응하며 살아야 하는가? 주나라의 천명사상이 보여주듯, 인간은 하늘의 명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명을 실현하는 방식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의지(Free Will)의 핵심입니다.
서양 철학은 데카르트에서 실존주의에 이르기까지 ‘나는 선택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자유의지의 가능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반면 동양은 인간이 하늘(天)과 조화를 이루며 자기 운명을 내면의 덕과 외면의 실천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우리에게 자기 책임과 자율성을 가르칩니다. 선택하지 않은 조건 속에서도 우리는 의미를 만들고, 존재를 윤리적으로 다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만이 지닌 도덕적 자유이며, 주어진 운명에 반응하는 가장 성숙한 방식입니다.
결론: 선택 불가능한 삶 속에서 의미를 찾는 태도
우리는 운명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운명을 대하는 방식은 우리 손에 달려 있습니다. 이 땅에 태어나 부모와 조국, 언어와 문화, 기후와 신까지 모두 ‘주어졌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 사랑을 느끼고, 슬픔을 견디며, 의미를 창조합니다.
오늘날 인류는 종교적 광신, 문화적 우월주의, 환경 파괴 속에서 거대한 갈등과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다시 배워야 할 것은 겸허함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입니다. 선택 불가능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각자의 자리에서 생명을 지키고, 문화와 신앙을 다르게 느끼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동양 철학은 우리에게 생로병사, 권력과 부의 무상성, 그리고 음양의 균형과 정직한 도(道)를 강조합니다. 먼저 주고 나중에 받는 질서, 덕을 실천하는 통치,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방식은 단순한 윤리가 아니라 운명을 이기는 실천의 철학입니다.
우리가 이 철학을 되새긴다면, 비로소 우리는 선택할 수 없었던 인생 속에서 스스로를 선택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모여 평화로운 공존이라는 가장 위대한 유산을 남기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