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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뇌를 지키는 지혜

더 늦기 전 시작하는 삶의 선택

by 엠에스

<치매, 뇌를 지키는 지혜: 더 늦기 전 시작하는 삶의 선택>

우리는 백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래 산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그 축복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단순한 수명이 아니라 ‘건강 수명’이 함께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건강 수명의 핵심에는 뇌 건강, 곧 치매 예방이라는 커다란 과제가 놓여 있습니다.


2024년 현재, 65세 이상 인구의 약 9.2%가 치매를 앓고 있으며, 치매의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MCI)를 겪고 있는 고령층은 전체의 28%에 달합니다. 특히 한국의 60세 이상 인구 중 치매 추정 환자가 96만 명, MCI를 포함하면 400만 명에 이른다는 통계는 더 이상 이 질병을 ‘남의 이야기’로 둘 수 없음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단지 의학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과제입니다.


기억’이 지워지는 삶, 그 무게


치매는 단순히 기억을 잃는 병이 아닙니다. 언어 능력, 판단력, 시간과 공간 감각, 감정 조절, 관계 유지까지 무너지는 전신적 인지 기능의 붕괴입니다. 때로는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스스로를 잊어가는 과정 속에서 환자는 말 못 할 혼란과 불안을 겪습니다.

"엄마가 저를 못 알아보세요."
"같은 질문을 하루에도 수십 번 받아요."
"그 사람을 사랑하지만, 어느 순간 그가 낯설어졌어요."

이러한 간병인의 고백은 치매가 단지 의학적 질병이 아니라, 정체성과 관계의 위기, 더 나아가 인간다움의 붕괴임을 보여줍니다. 치매는 육체적 질환이자 존엄의 침식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질병을 ‘피할 수 없는 노년의 숙명’이 아니라, 지금 당장 예방할 수 있는 인생의 과제로 바라봐야 합니다.


뇌를 병들게 하는 씨앗은 중년기에 뿌려진다


치매는 노년기에 발병하지만, 그 씨앗은 대부분 중년기(40~60대)에 심어집니다. 그중에서도 청력 저하는 간과하기 쉬운 위험 요인입니다. 청력이 떨어지면 소리를 통한 자극이 줄고, 뇌는 점차 위축되며 인지 기능이 저하됩니다. 2017년 《The Lancet》 보고서에서는 청력 손실이 가장 수정 가능한 치매 위험 요인으로 지목됐습니다. 특히, 보청기를 제때 착용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치매 위험이 48% 낮았다는 연구 결과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뇌는 끊임없이 자극받아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기관입니다.


또한 고혈압, 당뇨, 비만, 고지혈증 같은 만성 질환은 뇌혈관 건강을 파괴하고, 결국 신경세포의 손상과 위축을 초래합니다. 이러한 질환은 하나만으로도 위험하지만, 둘 이상이 복합되면 치매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합니다.


여기에 흡연, 과음, 운동 부족, 만성 우울감, 심지어 반복적인 뇌 외상까지 — 우리 일상 곳곳에 뇌를 갉아먹는 습관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머리를 다치는 가벼운 사고조차 반복되면, 뇌세포의 손상과 더불어 아밀로이드, 타우 단백질이 쌓이며 퇴행성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늙어서 병드는 것이 아니다, 고립되어 병드는 것이다


노년에 들어서면 문제는 더 복잡해집니다. 단순히 몸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끊기고, 사회적 자극이 줄어들고, 외로움이 마음을 잠식하면서 뇌까지 병들게 되는 구조입니다.


배우자의 사망, 자녀의 독립, 은퇴는 대부분의 노인에게 사회적 고립을 안겨줍니다. 연구에 따르면 고독은 치매 위험을 2배 이상 증가시키며, 그 영향력은 흡연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또한 대기오염과 미세먼지, 시력 저하, 저체중으로 인한 영양 불균형 역시 인지 기능 저하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디지털 기기 활용이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통해 온라인으로 사람들과 교류하거나 게임을 즐기는 노인은 뇌 자극이 더 활발하며, 고립감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연구도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뇌 건강은 ‘개인’만의 책임이 아니다


치매 예방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개인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도시 구조, 경제적 여건, 노인을 위한 공공 인프라, 교육 시스템, 사회 안전망 등 사회 전반의 구조가 함께 작동해야만 치매 예방이 현실화됩니다.

예를 들어,

공공 체육시설에서 노인 무료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건강 식단 지원이 마련되며

청력·시력 보조기기 구매에 대한 정부 지원이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치매를 예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전략입니다.


지금 시작하라: 뇌 건강을 위한 3권·3금·3행


대한치매학회가 권장하는 3권(勸), 3금(禁), 3행(行)은 다음과 같습니다.


3권(勸): 권장해야 할 것들

즐겁게 운동하라: 주 3회 이상 유산소 운동

뇌를 자극하라: 독서, 외국어 학습, 악기, 퍼즐

사회 활동을 하라: 모임, 자원봉사, 교류


3금(禁): 반드시 피해야 할 것들

흡연을 멈추라

절주 하라

머리를 다치지 말라


3행(行): 꼭 실천해야 할 것들

싱겁게 먹고 채소와 과일을 섭취하라 (지중해 식단)

건강검진을 정기적으로 받아라

치매 조기검진을 주저하지 말라

작은 습관 하나가, 큰 변화를 만든다. 당신의 뇌는 오늘의 선택을 내일 기억할 것이다.


기억을 지킨다는 것, 인간다움을 지키는 일


치매는 뇌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잃고, 삶의 목적과 의미를 잃게 만드는 병입니다. 그러나 치매 예방은 단순한 ‘건강관리’를 넘어, 존엄과 품위, 관계와 인간다움을 지키는 가장 근본적인 실천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치매를 두려워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걷기, 대화하기, 배우기, 관계 맺기 — 그 모든 일상이 곧 당신의 뇌를 지키는 든든한 울타리가 될 것입니다.


치매 예방은 선택이 아니라, 생애 전체를 위한 전략입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작은 행동들이, 침묵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더 밝고 건강한 미래로 이어질 것입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이 뇌 건강 여정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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