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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초상

오아시스 곁에서 목말라 죽다

by 엠에스

<현대인의 초상>


- 오아시스 곁에서 목말라 죽다


독일의 신학자 요하네스 찡크는 현대인을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진단했습니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합니다. 텐트, 지도, 장비, 식량, 그리고 무엇보다 생존에 필수적인 식수까지 챙겼습니다. 그러나 여정의 첫날밤, 식수가 모두 바닥났고, 탈진한 그는 모래 언덕에 쓰러져 실신합니다.


얼마 후 정신을 차린 그는 흐릿한 시야 속에 야자수를 보았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맑은 물소리, 새들의 지저귐까지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중열입니다.


"이제 죽을 때가 되었구나. 이건 분명 환각이야."


그리고는 다시 눈을 감고, 귀를 닫았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 물을 길으러 나온 베두인 부자(父子)는 청년의 시신을 발견합니다. 입술은 말라붙고, 몸은 축 늘어져 있었죠. 이상한 광경에 아이가 묻습니다.


“아버지, 이 사람은 왜 오아시스 곁에서 목말라 죽었나요?”


“얘야, 이 젊은이가 바로 현대인이란다. 눈앞의 행복을 보지 못하고, 환영이라 여기며 스스로를 파괴한 자지.”


***


오아시스를 지나치는 사람들


찡크의 우화는 그저 상징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도 행복의 오아시스 곁에서 목말라 죽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왜일까요?


풍요 속의 빈곤: 물질은 넘쳐나는데, 마음은 고립되어 있습니다. 집엔 가전제품이 가득하고, 냉장고는 음식으로 가득하지만 정작 따뜻한 대화와 사랑은 사라져 버린 공간. 이것이 바로 현대인의 집입니다.


미래 때문에 현재를 잃어버린 삶: ‘노후대비’, ‘은퇴 준비’, ‘집값 상승’이라는 단어에 얽매여 지금 이 순간 누릴 수 있는 소소한 기쁨을 외면합니다. 지금을 희생하면서 맞이한 미래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요?


행복은 가까이에 있는데: 더 멀리서 찾아 헤매는 이상한 병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진짜 행복’이 아니라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더 비싼 것, 더 화려한 것, 더 먼 곳을 원하죠. 그러다 지쳐 쓰러지고 맙니다.


나눔의 진리를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사회: “나누면 행복해진다”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실천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나눔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본능임에도 현대인은 ‘이기적 생존’이라는 이름 아래, 타인과 단절된 삶을 선택합니다.


사랑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꾸만 미루는 사람들: 가족에게, 친구에게, 연인에게 “사랑해”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하루를 끝냅니다. 죽음은 늘 예정일 없이 오건만, 우리는 늘 내일이 있을 것처럼 오늘을 흘려보냅니다.


지구가 아파도 멈추지 않는 문명: 산을 깎고 바다를 메우며 다음 세대를 위한 터전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모두가 파멸할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괜찮아, 아직은”이라는 자기기만 속에 살고 있습니다.


돈은 남겼으나 지혜는 남기지 못한 부모: 많은 부모들이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지만 그것이 오히려 형제 사이를 갈라놓고, 가족을 해체시키는 단초가 되기도 합니다. 진정한 유산은 돈이 아니라 ‘지혜와 사랑’이라는 사실을 잊고 살아갑니다.


떠나면 그만인 여행조차: 계산과 망설임으로 놓쳐버리는 사람들 삶에 쉼표 하나 찍는 것도 끝없는 고민과 계산으로 미루기 일쑤입니다. 진짜 소중한 경험은 ‘완벽한 타이밍’이 아니라 ‘과감한 선택’에서 만들어집니다.


끝없는 비교와 다툼: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남보다 앞서기 위해 서로를 짓누르고, 이기려 듭니다. 그러나 이런 경쟁은 결국 공허한 우열만 남깁니다. 우리는 협력하고 공감하며 살아가는 존재이지, 영원한 적이 아닙니다.


심리학적 고찰 ― 왜 오아시스를 못 보았을까?


이 청년은 왜 오아시스를 환각이라 생각했을까요?


심리학자 아론 벡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현실을 왜곡합니다. “행복은 없다”, “희망은 헛된 것이다”라는 부정적 인지 체계를 가진 사람은 행복한 순간조차 환상이라 여기고, 스스로 그것을 밀어냅니다. 그 청년은 어쩌면 ‘불행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었던 건 아닐까요?


철학적 통찰 ― 장자와 붓다의 가르침


동양의 고전도 같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장자는 말합니다.


“사람은 발밑에 보물을 두고도 하늘에서 금을 찾는다.”


불교의 ‘사성제’에 따르면, 모든 고통은 ‘갈애(渴愛)’, 즉 목마른 집착에서 비롯됩니다. 그 갈애는 만족하지 못하는 욕망이며, 오히려 현재의 충만함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통계로 보는 현대인의 자화상


2024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40~60대 성인 중 70% 이상이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라고 응답했습니다. OECD 자살률 1위, 노인빈곤율 1위 국가. 그만큼 삶의 목적과 의미에 대한 근본적 고민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에필로그 ― 당신 곁의 오아시스


우리 모두는 사막을 걷는 순례자입니다. 하지만 눈앞의 오아시스를 환각이라 믿는다면, 우리는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행복은 곁에 있습니다.”


그것은 가족의 미소, 친구의 위로, 한 모금의 따뜻한 차 속에 숨어 있습니다.


눈을 감지 마십시오. 귀를 닫지 마십시오.


당신의 오아시스를 지금,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그 물을, 마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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