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시대에 ‘자발적 외로움’을 선택하는 사람들
– 고독의 시대에 ‘자발적 외로움’을 선택하는 사람들
유튜브와 SNS에는 “친구 없어도 괜찮다”, “혼자가 더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들이 넘쳐납니다. 언뜻 보기엔 관계 맺기를 강조하던 기존 사회 통념과 정면으로 배치되기에 이질적으로 보이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구조적 변화와 내면의 욕망이 교차한 필연적 산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혼자 지내는 법'을 배우려 하고, 또 그런 삶을 긍정하려는 걸까요? 이 현상을 우리는 고립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대인의 ‘존재 방식의 재설계’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여섯 가지 관점은 그러한 선택이 갖는 맥락과 의미를 복합적으로 설명합니다.
해체된 공동체와 일상의 고립감
도시화, 산업화, 정보화는 공동체를 해체하고 인간을 ‘개별화’시켰습니다. 전통사회에서 관계는 ‘주어진 것’이었지만, 현대사회에서 관계는 ‘선택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제 관계는 의무가 아닌 부담이며, 자칫 무책임과 피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1인 가구의 증가, 이웃과의 단절, 일과 거주의 분리 등은 현대인을 관계의 ‘부재’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관계망이 무너진 공간에서 사람들은 외로움을 경험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외로움을 다시 ‘자기 삶의 자산’으로 전환하려 합니다. “혼자여도 괜찮다”는 메시지는 그 전환의 언어입니다.
이는 에밀 뒤르켐(Émile Durkheim)이 말한 ‘아노미 상태(anomie)’—규범이 붕괴된 사회에서 개인이 방향을 잃는 상황—와도 연결됩니다. 혼자 있는 삶을 학습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는, 바로 이 아노미적 조건에 대한 주체적 대처로 볼 수 있습니다.
고령화와 ‘관계없는 노후’의 실재
한국을 포함한 많은 선진국에서는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더는 자식과 함께 사는 대가족 형태가 아니며, 노년기의 대부분은 ‘혼자’ 보내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노후에 접어든 많은 이들은 관계를 새로 만들기 어렵고, 기존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소멸합니다. 이때 ‘혼자 있는 삶’을 미리 수용하고, 준비하고, 긍정하려는 콘텐츠는 단순한 자기 위안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됩니다.
실제로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사는 법”이나 “노년에 친구 없어도 괜찮다”는 영상들은, 점점 더 고립되는 노년층에게 새로운 심리적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현대 복지국가의 한계를 보완하는 디지털 심리 인프라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관계의 피로와 ‘탈(脫) 관계 욕망’
친구가 있어도 피곤한 시대입니다. SNS는 인간관계를 확대시켰지만, 그만큼 비교와 눈치의 피로도 함께 커졌습니다. 피에르 부르디외(Bourdieu)가 말한 ‘상징 자본’ 경쟁은 이제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치열하게 펼쳐집니다. 관계는 위로의 수단이기보다는 ‘보여주기 경쟁’의 장이 되었습니다.
“이번 주말엔 누구와 시간을 보냈나”, “SNS에 올릴 만한 모임이 있었나” 같은 압박감은 인간관계를 의무로 전락시키고, 본래의 따뜻함을 빼앗아갑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관계에서 멀어지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혼자가 더 낫다”는 메시지는 이러한 탈관계 욕망에 해방감을 부여하며, ‘관계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권리’를 선언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가 감당하지 못한 심리적 피로에 대한 자구적 해결책인 셈입니다.
자기 중심성의 확산과 ‘혼자 문화’의 정당화
‘혼밥’, ‘혼영’, ‘혼행’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닙니다. 이는 자기 삶의 통제권을 남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누군가와 맞춰야 하는 삶”보다 “내 속도와 내 방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는 루소가 말한 ‘자연적 인간(natural man)’으로의 회귀일 수도 있습니다. 군중 속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가기보다, 혼자서 자신의 삶을 직접 설계하고 경험하는 것이 더욱 인간답다는 믿음 말입니다.
특히 MZ세대는 타인의 시선에 피로를 느끼는 동시에, 자기 삶의 주도권을 강하게 지향합니다. 그들에게 “혼자 있는 것”은 고립이 아니라 자기 효능감의 실현입니다.
불안한 세계와 ‘내적 자립’의 욕구
팬데믹, 기후위기, 전쟁, 실업, 부동산 불안, 노후 불안…. 현대 사회는 예측할 수 없는 변수로 가득합니다. 이런 시대에는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기대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낳습니다.
이럴수록 사람들은 “결국은 나 혼자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을 깨닫게 됩니다. ‘혼자여도 괜찮다’는 메시지는 외로움을 감추기 위한 위장이 아니라, 삶을 대비하기 위한 태도입니다. 고독을 회피하지 않고, 그것을 감내하는 능력은 오늘날 가장 중요한 생존 지능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야말로 삶의 의미를 구성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플랫폼 알고리즘과 콘텐츠 생태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은 인간의 심리를 빠르게 포착합니다. 사용자가 ‘혼자’에 관련된 콘텐츠를 몇 번 클릭하면, 유사한 영상이 연쇄적으로 추천되며 알고리즘은 ‘외로움 시장’을 확장시킵니다.
결국 콘텐츠 제작자들은 수익과 주목을 위해 혼자 삶의 긍정성만을 부각합니다. “혼자가 진짜 멋진 삶이다”, “친구는 필요 없다”는 식의 과장된 메시지는 조회수를 끌어올릴 수 있는 쉬운 도구가 됩니다. 디지털 환경은 ‘혼자’라는 메시지를 강화하고, 빠르게 퍼뜨리는 촉매제가 된 것입니다.
혼자의 삶이 주는 진짜 의미는?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혼자'를 다룬 콘텐츠 속 댓글 창에서는 사람들이 ‘나도 그렇다’, ‘혼자인 게 나만이 아니었구나’ 하며 정서적 연대를 형성한다는 점입니다. 즉, 혼자임을 공유함으로써 새로운 사회적 연결이 형성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죠.
이는 고독이 반드시 ‘단절’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중요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나와 비슷한 감정을 공유하는 타인을 ‘온라인’을 통해 만나는 방식은 물리적 관계보다 더 깊은 공감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결론: 혼자이되 고립되지 않는 삶을 위하여
“친구 없어도 괜찮다”, “혼자가 더 낫다”는 콘텐츠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대의 불안, 인간관계의 피로, 고령화 사회의 단면, 자기 결정권에 대한 갈망이 응축된 표현입니다.
그러나 모든 콘텐츠가 그러하듯, 그것이 지나치게 이상화될 경우 위험도 따릅니다. 인간은 본성상 사회적 존재입니다. 자기 돌봄은 중요하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성장과 위로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혼자 있는 삶을 선택하든, 관계 안에서 살아가든 중요한 건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기만의 고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건강하게 설 수 있습니다. 혼자임을 두려워하지 않되, 필요할 때는 기꺼이 누군가를 찾을 수 있는 용기—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