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탄핵 이후, 한국 사회에 보내는 성찰의 보고서
붕괴의 풍경 – 더 이상 ‘보수’가 아니다
2025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은 단순한 정권 교체 이상의 충격이었다. 그것은 지난 수십 년간 한국 정치의 한 축이었던 보수 진영의 붕괴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한때 보수는 체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고, 사회 질서와 국가 안보, 책임의 미덕을 강조했다. 하지만 지금의 보수는 철학 없는 기득권 정치, 정책 없는 충성 경쟁, 그리고 감정만 자극하는 극우의 대중 동원형 정치로 무너졌다.
더 이상 보수는 가치 지킴이가 아니다. 보수라는 이름 아래 쌓아 올린 것은 이념이 아닌 권력, 정당성이 아닌 인맥이었다. 그리고 국민은 그것이 진심이 아님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왜 무너졌는가 ― 근본 원인의 해부
(1) 철학 없는 정당, 표 없는 이념
보수는 원래 급진적인 변화로부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가치 있는 질서’를 중시했다. 그러나 지금의 보수는 질서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리를 지키는 데 급급한 잔존 권력 집단처럼 보인다.
공정, 책임, 공동체, 안전, 품격 — 보수주의의 핵심 덕목들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반대를 위한 반대,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 검증 없는 극우 선동뿐이었다.
정치 철학이 사라지자, 말은 크지만 삶과 연결되지 않는 정치가 되었고, 국민은 점점 보수 정당을 떠났다.
(2) 특정 지역 기반과 권력 의존의 고질적 구조
한국 보수 정치의 뿌리 깊은 병폐는 영남 중심의 지역 의존, 그리고 검찰·관료 중심의 권력 카르텔이다.
지역 독점의 폐해: 특정 지역에 정치적 안정을 의존한 결과, 전국 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는 내적 개혁 동력은 사라졌다. 정치인은 지역 구심점만 관리하고, 국민 전체를 위한 미래 설계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는 특정 지역 유권자조차 정치 소비자로 취급받게 만들었고, 젊은 세대는 고립된 지역 중심 정치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권력 카르텔의 한계: 검찰, 언론, 관료, 친위 정치 세력 등 힘 있는 권력기관과의 유착은 초기에는 정치적 방패가 되었지만, 결국 민심과 괴리된 구조를 고착시켰다. 권력의 자기 복제는 무능과 가족 부패를 감추는 데 사용되었고, 이는 결국 탄핵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3) 리더십의 실종, 인물 중심 정치의 파산
윤석열 정부는 친위 인물 의존 정치의 한계를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시스템이 아닌 '결기'에만 의존한 정치, 견제 없는 충성으로 둘러싸인 권력, 정책 없는 극우 홍보 정치… 이런 구조가 만들어낸 것은 국민의 실망과 분노였다.
리더십이란 신뢰와 책임으로 완성되는 것이지, 검찰 출신의 권위나 반대 세력 적폐청산이라는 구호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문화적 진단: 극단, 선동, 갈라 치기의 시대
(1) 정치는 이제 이념이 아닌 ‘감정’이 되었다
“너는 우리 편이냐, 아니냐”는 이분법은 정치판을 뒤덮었고, 정책은 사라지고 선동만 남았다. 정치인들은 국민을 ‘지지자’와 ‘적’으로 구분하면서, 갈등을 유발하고 이를 통해 세를 확장해 왔다. 그 결과, 이 나라의 공론장은 협소해지고, 감정만 남고 진실은 뒷전이 되었다.
(2) 언론과 SNS는 ‘선동의 엔진’이 되었다
특정 유튜버, 특정 채널, 특정 커뮤니티가 정치 전장의 전위대처럼 행동하며, 이념 중독, 편 가르기 중독, 분노 중독 사회를 만든다. 알고리즘은 공감이 아닌 분노에 반응하고, 정치인은 그 분노를 자산 삼아 승리하려 든다.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 한국 보수의 갱신과 민주 공화국의 복원
(1) 보수의 재건, 철학과 실용의 융합으로
철학 회복: 보수의 본령인 공동체, 공공 책임, 품격 있는 사회를 향한 진지한 복원이 필요하다.
정책 중심화: 지역과 계층을 아우르는 문제 해결형 정책으로 국민의 삶에 직접 다가서야 한다.
세대 포용: 청년과 여성, 다양성을 외면한 채 존재할 수 있는 정당은 없다. 보수적 가치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실용적 감각이 필요하다.
(2) 정치문화의 리셋
갈라 치기 종식: 이념을 넘어서 현실의 삶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진짜 보수는 다름을 악마화하지 않는다.
선거제 개편과 균형 인사: 지역 독점 구조는 해체돼야 한다. 전국적 지지를 얻기 위한 인재 다양성, 정책 연대가 필수다.
국민 개개인의 실천: 공화국은 시민의 손으로 세워진다
(1) 비판적 시민 되기
“누가 내 감정을 자극하는가?”보다 “누가 책임 있게 설계하는가?”를 묻자.
(2) 지역주의에서 벗어나기
'내 고향 정치인'이 아닌, '우리 모두의 내일을 만들 사람'을 보자. 지역주의는 결국 내 지역을 고립시킨다.
(3) 생활 정치 참여
정당 가입, 정책 제안, 지방 자치 참여… 민주주의는 구경이 아니라 참여로 완성되는 실천적 삶이다.
(4) 공정과 품격을 정치에 요구하자
잘못된 정치인의 막말과 선동을 “사이다”라며 손뼉 치지 말자. 그것은 민주주의의 자해 행위다.
철학적 결론: 보수는 진영이 아니라 정신이다
보수는 특정 지역도, 특정 인물도 아니다. 보수는 지켜야 할 삶의 가치에 대한 헌신이며, 공동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힘이다.
그 정신은 시대마다 변주되지만, 품격, 책임, 연대, 실용이라는 핵심은 결코 사라져선 안 된다. 그리고 그 보수의 정신은 정권을 위한 구호가 아니라, 시민의 삶 속에 뿌리내릴 철학으로 되살아나야 한다.
맺음말: 공화국은 정권이 아니라 ‘시민’의 이름으로 완성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이기는 보수’가 아니라 ‘믿을 수 있는 보수’다. 보수의 몰락은 곧 대한민국 정치의 반쪽이 무너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세울 수 있다. 정당이 먼저 바뀌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가 먼저, 시민이 먼저 바뀌면 정치도 바뀐다. 그 희망의 불씨는 오늘 나의 성찰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