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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역사 속에서 배우는 정치의 기술

by 엠에스

<권력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 역사 속에서 배우는 정치의 기술


권력은 단지 물리적 힘이나 정치적 직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유지되는 일종의 사회적 에너지이며, 지배와 복종, 설득과 동의, 통제와 협력이라는 복합적 구조 위에 존재한다.


누군가는 권력을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움직이는 능력’이라 말하지만, 역사 속 수많은 권력자의 흥망을 들여다보면, 단순한 힘이나 지위만으로는 권력을 지속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권력은 어디서 정당성을 얻는가?


고대 동양에서 권력의 정당성은 ‘천명(天命)’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되었다. 예컨대,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망시키고 등장했을 때, 주 무왕은 단순한 무력의 승리가 아닌 하늘이 새로운 왕조를 점지했다는 신성한 명분을 내세웠다. 하늘은 단지 종교적 존재가 아니라 통치의 정당성을 심판하는 초월적 기준이었다. 백성이 도탄에 빠지면 그것은 하늘이 분노했다는 신호였고, 이는 새로운 혁명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동했다.


오늘날의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하늘 대신 헌법, 국민 주권, 선거 제도 등이 권력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다수의 의사를 수렴한 합법적 절차를 통해 정권을 위임받는 자만이 정당한 권력자로 인정받는다.

시대는 변했지만, 권력을 정당화하는 공식적 근거는 여전히 필요하다. 권력은 ‘내가 가졌기 때문에’가 아니라, ‘사회가 동의했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다.


권력은 명분, 조직, 민심으로 지탱된다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군사력만으로 황제가 된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프린켑스(제1시민)라 칭하며 원로원과 협력했고, 제도와 민심 모두를 아우르며 로마를 안정시켰다. 그 결과 등장한 ‘팍스 로마나’는 단지 무력의 산물이 아닌 시민들의 승인과 신뢰 위에서 구축된 질서였다.


한편 진시황은 법가 사상을 바탕으로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도량형과 문자를 통일하는 등 강력한 통치 체계를 수립했다. 그러나 지나친 공포 정치와 억압은 민심을 이반 시켰고, 진나라의 붕괴는 그의 사후 불과 15년 만에 일어났다.


반대로 당 태종 이세민은 능력 있는 인재를 골고루 등용하고, 황제 스스로 정사에 참여하며 관료제 운영을 실용주의적으로 이끌었다. 그의 통치는 권력 유지에 있어 제도와 민심, 그리고 유연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두려움’과 ‘사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사랑받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를 택하되, 미움을 사지는 않아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이는 권력이 반드시 인기만을 좇아서는 안 되며, 때로는 기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결단력과 단호함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동시에, 두려움이 지나치면 반발과 저항을 불러오고, 호감만 추구하면 기강이 무너진다. 진정한 권력자는 이 두 지점을 절묘하게 조율하는 사람이다. 그는 무서워할 줄 아는 존재이면서도, 결국 신뢰받는 존재여야 한다.


견제받는 권력이 오래간다


조선왕조는 절대 군주제를 유지하면서도, 사헌부·사간원·홍문관 등 견제 기관을 마련해 왕권에 제동을 걸 수 있도록 제도화했다. 이것은 유교적 ‘덕치’ 이념의 실현이자, 정치적 안전판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도 민주국가는 입법부, 사법부, 언론, 시민사회의 감시 기능을 통해 권력을 통제한다. 권력자는 이를 귀찮은 장애물이 아닌 건강한 권력 유지를 위한 내적 장치로 인식해야 한다. 비판 없는 권력은 부패하고, 견제 없는 힘은 독선에 빠진다.


권력은 동맹과 네트워크로 확대된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유럽의 유력 왕실과 혼인 동맹을 맺으며 막대한 권력과 영토를 확보했다. 이처럼 권력은 외부의 연합과 동맹, 내부의 지지 기반 위에서 안정된다. 현대 정치에서 연립정부, 정당 간 제휴, 국제 동맹, 기업 간 M&A 등은 모두 권력 유지와 확장을 위한 네트워크 정치의 현대적 변형이다. 권력은 혼자 쥐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맞잡고 구성하는 구조물이다.


신뢰 없는 권력은 껍데기일 뿐이다


현대사회에서 권력은 단지 제도적 합법성이나 위신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신뢰’야말로 가장 강력하고도 취약한 권력의 자산이다. 뉴질랜드의 전 총리 저신다 아던은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강력한 통제를 시행하면서 높은 국민 지지를 유지했다. 그 핵심은 정책 그 자체가 아니라, 공감, 정직성, 투명성, 일관성으로 축적한 신뢰였다.


권력은 무력으로 복종시킬 수는 있어도, 신뢰 없이는 결코 존중받을 수 없다. 신뢰를 잃은 권력은 결국 내면이 텅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


변화에 적응하는 자만이 권력을 지속할 수 있다


청나라 말기 보수파들이 변화하는 세계 질서를 외면한 채 구제도에 집착한 결과, 결국 제국은 무너졌다. 반면 메이지 일본은 유연하게 서구 제도를 수용하고 변화에 적응함으로써, 근대국가로 재편될 수 있었다. 권력은 과거의 영광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미래에 자신을 맞추는 능력에서 살아남는다. 시대를 읽지 못하는 권력은 정체가 아니라 붕괴의 길을 걷게 된다.


현대 권력의 지속 조건: 다섯 가지 핵심


1. 정당성과 합법성

헌법과 법률, 그리고 국민의 승인이라는 기반 위에 설 때 비로소 권력은 도덕성과 정치적 정당성을 갖춘다.


2. 효율적인 조직 운영

강력한 리더십만큼 중요한 것은 유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조직 체계이다. 시스템이 없으면 어떤 지도자도 오래가지 못한다.


3. 투명성과 견제 장치

권력자는 자신의 권한이 감시와 피드백 속에서 운영될 때 오히려 더 안전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4. 협력과 유연성

권력은 특정 계층만의 지지로 유지되지 않는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지도자는 조정자이자 설득 자여야 한다.


5. 커뮤니케이션 능력

SNS와 미디어 시대의 권력자는 고립된 상징이 아닌 소통하는 인간이어야 한다. 말하는 힘이 곧 지배력이다.


맺음말: 권력은 기술이자 관계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권력은 사람들이 함께 행동할 때만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권력은 절대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구성되고 정당화되는 일종의 ‘살아 있는 기술’이다.

마키아벨리의 냉정한 통찰, 홉스의 권위 중심적 사유, 그리고 기번이 분석한 로마 제국의 흥망은 모두 우리에게 같은 교훈을 준다. 권력은 두려움으로 시작할 수 있지만, 신뢰로 유지되지 않으면 결국 붕괴한다.


오늘날에도 이 원리는 유효하다. 권력은 시대와 제도가 달라져도, 결국 사람의 마음 위에서 작동한다. 그 마음을 얻고, 설득하고, 함께할 수 있을 때만 권력은 비로소 의미 있는 지속성을 가진다. 역사는 우리에게 말한다. 권력을 유지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사람을 얻으라. 신뢰를 쌓고, 제도를 가꾸며, 시대의 언어로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치의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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