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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경제의 빛과 어둠

주목의 시대, 소외된 인간

by 엠에스

<관심경제의 빛과 어둠>

- 주목의 시대, 소외된 인간


정보의 홍수, 관심의 가뭄


우리는 지금 '정보의 바다'에 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관심의 가뭄'에 허덕이고 있다. 누구나 손 안의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뉴스를 접하고, 소셜미디어 피드를 무한히 스크롤한다. 그러나 이 모든 흐름 속에서 가장 귀한 자원은 '금'도 '데이터'도 아닌 인간의 관심(Attention)이다. 197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Herbert A. Simon)은 이렇게 경고했다.


“정보가 풍부해질수록, 주의(attention)는 더욱 희소해진다.”


이 짧은 통찰은 오늘날 관심경제(Attention Economy) 개념의 출발점이 되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일수록, 그 속에서 ‘누구를 바라볼 것인가’라는 선택이 곧 권력이고 경쟁이다. 기업은 소비자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정치권은 유권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메시지를 파편화한다. 이처럼 ‘관심’은 이제 새로운 화폐가 되었고, 모든 권력 투쟁은 주목을 둘러싼 전장으로 바뀌었다.


관심경제란 무엇인가: 주의를 화폐로


관심경제는 인간의 ‘주의력’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개념이다. 산업사회가 물질을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정보가 넘치는 디지털 사회는 시선과 시간을 중심으로 작동한다.


제품의 질보다 '얼마나 눈에 띄느냐'가 중요해졌고, ‘노출’과 ‘클릭’이 곧 수익을 의미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플랫폼 기업은 사용자들의 관심을 잡아두기 위해 정교한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그 알고리즘은 사용자 취향을 파악해 더 많은 '체류 시간'을 이끌어낸다. 유튜브의 자동 추천, 틱톡의 무한 루프, 인스타그램의 스토리 기능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시간을 수익화하는 체계적 전략이다.


관심경제의 부상: 기술과 인간 심리의 만남


관심경제가 본격화된 배경에는 기술의 발전과 인간 심리의 구조가 맞물려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 참여형 SNS의 일상화는 누구나 콘텐츠 생산자가 되는 시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결과, 인간의 관심은 시장화된 경쟁 대상이 되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인간 사고를 두 가지 시스템으로 나눈다.

System 1: 직관적, 빠른 반응

System 2: 느리고 깊은 사고


현대 콘텐츠는 이 중 빠르고 즉각적인 반응을 유도하는 System 1을 겨냥한다. 자극적 영상, 짧은 문구, 밈 문화는 뇌의 도파민 보상을 자극하며, 사용자를 반복적인 노출에 빠지게 만든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감정, FOMO (Fear of missing out: 놓칠까 봐 두려운 마음) 도 있다. “지금 보지 않으면 손해”라는 불안은 우리를 플랫폼에 묶어두는 심리적 족쇄가 된다. 이러한 구조는 결국 인간을 콘텐츠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 즉 소비 가능한 ‘눈’으로 전락시킨다.


관심경제가 만든 새로운 질서와 역설


관심은 단지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사회를 재편하는 힘이다. 주목은 이슈를 만들고, 이슈는 정치, 문화, 산업을 움직인다.


① 정치: 감정의 경제가 된 민주주의

SNS는 ‘디지털 광장’ 역할을 하며 참여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키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슈는 단발성 해시태그 캠페인으로 소모되고, ‘분노의 알고리즘’은 극단적 의견을 확산시키며 이성적 토론을 파괴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이제 ‘정보의 질’보다 ‘주목의 양’에 흔들리는 정치 쇼가 되었다.


② 문화: 속도에 쫓기는 예술

밈과 바이럴 콘텐츠는 창의의 기회를 넓히기도 하지만, 속도 중심 구조는 예술의 깊이를 갉아먹는다. 진지함은 피곤하고, 사유는 클릭을 부르지 못한다. 그렇게 문화는 감동이 아닌 자극, 경험이 아닌 ‘소비재’로 전락한다.


③ 산업: 기술과 인간성 사이의 줄타기

기업들은 이제 '관심'을 중심에 둔 UI/UX 설계 전략을 앞세운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피드백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심리를 조작하고 데이터는 상업화된다. 관심경제는 이제 "데이터 자본주의"의 형태로 인간의 삶 전반에 침투하고 있다.


관심경제의 그늘: 중독, 분열, 피로


관심경제의 그림자는 명확하다. 인간은 더 많이 연결되었지만, 더 외롭고 피로해졌다.


① 정보의 편향성

개인의 취향을 강화하는 알고리즘은 필터 버블과 에코 챔버를 강화시켜, 다른 의견에 대한 배척과 혐오를 조장한다. 민주주의는 ‘다름의 공존’ 위에 서 있지만, 관심경제는 ‘확증 편향’을 키운다.


② 심리적 피로와 자기 소외

끊임없는 알림과 비교 중심 SNS 환경은 자존감을 침식시키고, ‘나는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박탈감을 증폭시킨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지만, 서로를 진정으로 보지 않는다.


③ 플랫폼 권력의 독점화

구글, 메타, 틱톡 등 빅테크 기업은 콘텐츠 유통, 수익 배분, 여론 형성 등 디지털 생태계의 모든 흐름을 통제한다. 그러나 그 막대한 영향력에 비해 책임 구조는 불분명하다. 기술은 민주주의를 확장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디지털 독점이라는 새로운 불평등을 낳는다.


대안과 과제: 인간 중심의 디지털 생태계로


관심경제의 폭주는 멈출 수 없다. 그러나 그 방향은 바꿀 수 있다.


① 비판적 시민의 힘: 미디어 리터러시

시민은 자신이 무엇을 보고, 왜 보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알고리즘이 나를 읽기 전에, 내가 나의 ‘관심’을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


② 윤리적 기업의 전환

기술은 인간의 핵심가치를 지키는 등 이롭게 할 때 의미가 있다. 사용자 중심의 설계, 사용 시간 조절, 알고리즘 투명성은 기업의 책임이다. 단기 광고 수익보다 장기 신뢰 자산이 더 큰 경쟁력임을 인식해야 한다.


③ 공정한 정책과 규제

플랫폼 독점을 견제할 공정거래 정책, 창작자 보호 제도, 사용자 데이터 주권은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인권 이슈다. 민주주의는 이제 ‘의사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의사 소비의 자유’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질문에 직면해 있다.


맺음말: 주목의 윤리학, 새로운 문화의 시작


관심경제는 단순한 기술적 진보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깊은 욕망—인정받고 싶고, 연결되고 싶고, 의미를 찾고 싶은 본능—이 디지털 플랫폼과 만났을 때 생겨난 결과다.


문제는 그 욕망이 수단화되고, 상품화되며, 조작될 때 발생한다. 인간이 ‘주목받기 위한 존재’로 전락하는 순간, 문명은 본질적 자기모순에 빠진다.


지속 가능한 관심경제란 무엇인가?

더 많은 클릭이 아닌, 더 깊은 연결

더 많은 소비가 아닌, 더 많은 성찰

더 빠른 반응이 아닌, 더 나은 관계


우리가 진정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를 바라보는 알고리즘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다.


“당신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당신의 삶이 머문다.” – 주목의 윤리학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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