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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더 잘살게 되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가?

스트레스와 진화의 역설

by 엠에스

<우리는 왜 더 잘살게 되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가?>

- 스트레스와 진화의 역설


인류는 과거보다 훨씬 풍요롭고 안전한 세상에 살고 있다. 수명은 길어졌고, 의료는 발전했으며,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도 확산되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현대인은 왜 점점 더 불안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걸까?


진화의 유산: 불안은 생존 전략이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초기 인류가 늘 불안하고 의심이 많았다고 본다. 이들은 환경과 타인에 대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했고, 이는 생존을 위한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다른 집단의 공격이나 맹수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계심이 높아야 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만약’이라는 질문이 절실했던 것이다.


“편안함”과 “낙관”을 즐기던 이들은 진화의 경쟁에서 탈락했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안해하며 더 많은 자원을 축적하려는 성향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 결과, 우리는 어느 정도 ‘불만족’과 ‘경계심’이라는 심리적 유전자를 물려받았고, 그것이 오늘날까지도 무의식적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유전적 경향이 곧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는 가능성이지, 필연이 아니다. 인간은 유전자에 의해 영향을 받되, 동시에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조절할 수 있는 존재다.


스트레스는 반드시 나쁜 것인가?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는 인간 조건이자 진화적 생존 장치였다. 록펠러 대학교의 신경내분비학자 브루스 맥웬(Bruce McEwen)은 “스트레스는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외부 자극이 감지되면 뇌의 아미그달라는 코티솔, 아드레날린 같은 호르몬을 분비하여 신체를 각성 상태로 만든다. 이는 과거의 맹수로부터 도망치거나 전투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했다.


오늘날에도 스트레스 반응은 우리를 보호한다. 예컨대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을 피해 횡단보도를 건너거나, 위기 상황에서 즉각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때, 적절한 긴장감이 생존의 열쇠가 된다.


현대 사회의 새로운 스트레스: 정보와 선택의 역설


하지만 현대의 스트레스는 과거와는 성격이 다르다. 오늘날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개의 뉴스를 스마트폰을 통해 접한다. 뉴욕대 신경과학자 조지프 르두(Joseph LeDoux)는 이를 "과장된 헤드라인에 의한 불안"이라 표현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발생한 테러나 기후 재앙조차 곧장 우리 손안에 도착한다. 이는 ‘정보의 폭증이 곧 걱정의 확장’이라는 새 스트레스 구조를 만든다.


또한 현대인은 역사상 가장 많은 선택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배우자, 직업, 주거지, 심지어 삶의 철학까지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는 이러한 자유가 오히려 ‘선택의 역설(paradox of choice)’을 낳는다고 말한다. 선택의 폭이 넓을수록 만족보다는 후회가 뒤따르고, 그 책임은 오롯이 개인에게 귀속된다. 이른바 ‘선택 형벌(choice penalty)’은 자기 검열과 후회, 불안의 순환을 만들어낸다.


특히 여성의 경우, 전통적으로 제한적 선택지 안에서 살아왔기에 실패에 대한 부담이 비교적 작았다. 그러나 현대 여성은 다양한 선택이 가능해지면서, 그만큼 실패와 후회에 대한 심리적 압박도 커졌다. 이는 현대 여성의 우울증 비율이 높은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된다. 남성들 역시 유사한 압박을 받지만, 상대적으로 오래전부터 선택의 부담에 익숙해져 있었던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풍요 속의 결핍: 왜 행복은 멀어졌는가


여가 시간은 늘었고, 편의시설도 넘쳐난다. 그럼에도 우리는 더 피곤하고 더 외롭다. 이유는 간단하다. ‘편안함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교통체증, 소음, 상사의 눈치, SNS의 비교 심리, 사소한 말 한마디가 모두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게다가 운동 부족, 고칼로리 식습관,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 수면의 질 저하 등은 서로 맞물려 스트레스를 강화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연구에 따르면 고지방 식사를 즐기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코티솔 수치가 높게 나타난다. 이는 현대의 식문화가 신경계와 감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행복은 쾌락이 아니라 ‘의미’다


진화가 불안을 낳았다면, 문화는 행복을 창조해 왔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은 행복을 ‘쾌락, 몰입, 의미’라는 세 가지 요소로 설명한다. 이는 단순한 쾌락의 축적이 아니라, 삶에서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행복이 깊어진다는 철학적 통찰을 담고 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몰입(flow)’ 개념을 통해, 인간은 과업에 깊이 빠질 때 가장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흥미와 능력이 적절히 맞아떨어지는 과제를 수행할 때, 인간은 외부 스트레스가 오히려 ‘긍정적 긴장감’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적절한 스트레스(eustress)’ 개념으로 이어진다. 삶을 완전히 스트레스 없는 상태로 만들기보다는, 적절한 수준의 긴장과 도전을 통해 오히려 성장과 만족을 이룰 수 있다는 발상이다.


죽음의 자각이 주는 철학적 힘


하이데거는 인간이 불안을 피할 수 없는 이유를 ‘존재의 유한성’에서 찾는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존재이며, 그 인식이 곧 삶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역설적으로, 죽음을 의식하는 태도야말로 삶을 더욱 진지하게, 더 의미 있게 살아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삶은 유한하기에 소중하다. 우리는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을 진지하게 마주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일상의 작고 평범한 기쁨에도 감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죽음은 단지 삶의 종착점이 아니라,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주는 철학적 거울이다.


결론: 불안 유전자와 행복 추구는 공존 가능한가?


우리는 과거로부터 불안이라는 유전자적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동시에 문화와 철학을 통해 ‘행복’을 창조해 낸 존재다. 인간은 불안을 제거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스트레스는 우리가 더 나은 전략을 고민하고, 변화에 적응하며, 삶의 방향을 성찰하게 만드는 자극이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를 무조건 피하려 하기보다, 적절히 관리하고 전환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 나가는 노력이다.


현대인은 수많은 선택 앞에 불안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 선택을 통해 더 자율적인 삶을 설계할 수도 있다. 행복은 궁극적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 불안은 삶의 짐일 수 있지만, 그것을 짊어진 채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깊은 만족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인간은, 불안과 행복이라는 두 날개로 균형을 잡으며, 유한한 삶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날아가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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