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하지만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우주의 동물들
- 영리하지만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우주의 동물들
인간, ‘영리하지만 과대망상에 빠진 동물’
니체는 29세에 집필했으나 생전에 발표하지 않은 미발표 원고 「비도덕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관하여」 서두에서, 인간을 “우주의 한 구석에서 우연히 나타난 영리한 동물”로 묘사한다.
인간은 인식 능력을 발명해 스스로를 우주의 중심에 놓고, 자신이 만든 ‘진리’라는 개념을 경외하지만, 니체의 시선은 차갑다. 인간 지성이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사라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생산한 ‘진리’ 역시 절대적·영원불변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기중심적 파토스(정서)에 사로잡힌다. 니체는 “만약 우리가 모기와 소통할 수 있다면, 모기 또한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을 것”이라 말한다. 이는 인간의 ‘특권적 지위’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드러낸다. 그의 비판은 이성 중심주의가 지닌 과대망상을 폭로하려는 시도였다.
진화론적 관점과 인식의 한계
니체의 핵심 질문은 “과연 인간이 자기 자신과 객관적 실재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는가?”이다.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은 그는, 인간 인식 능력도 진화 과정에서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에’ 선택된 결과일 뿐, 우주적 진리에 도달하도록 설계된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달팽이가 달팽이식으로 세계를 인식하듯, 인간도 감각과 지각 능력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세계를 ‘모델링’한다. 수족관 속 물고기가 바깥세계를 상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벗어난 세계를 전면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니체의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한 번도 제대로 찾아 나선 적이 없다”는 말은, 진리 개념이 필연적으로 인간 조건의 한계 속에 묶여 있음을 함축한다.
서양 철학 전통 속 진리 개념의 전개
아리스토텔레스 : 진리를 ‘사태와 명제의 합치’(Correspondence)로 정의했다. 이는 중세 스콜라 철학의 핵심 정의가 되었고, 기독교 신학에서는 신의 존재가 그 합치를 보증한다고 보았다.
칸트 : 인간 인식이 객관적 세계와 합치하는 것이 가능한 조건을 ‘보편적·초월론적 인식 구조’에서 찾았다. 진리는 주관적 인식과 보편 조건의 합치 안에서만 성립한다.
헤겔 : 진리는 고립된 명제가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전개되는 전체 체계에서 실현된다. 진리는 역사와 정신의 자기 전개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
니체 : 이 전통을 전면 부정한다. 인간은 본능과 충동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며, ‘진리’는 생존을 위한 언어적·개념적 허구일 뿐이다.
진리와 권력 — ‘진리의 정치학’
니체 이후 푸코는 그의 계보학적 관점을 확장해 “진리는 언제나 권력과 결탁되어 있다”라고 분석했다.
전통 철학이 ‘진리는 해방, 오류는 예속’이라고 전제했다면, 푸코는 진리 규정 자체가 권력 작용의 산물임을 보여준다. 진리는 시대와 제도, 담론 권력이 구성한 사회적 산물이며, ‘객관적 사실’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작동한다.
20세기의 도전 — 논리실증주의와 비트겐슈타인
논리실증주의자들과 초기 비트겐슈타인은 진리를 ‘명제와 사실의 일치’라는 최소 정의로 환원했다. 세계를 이루는 모든 참·거짓 명제를 나열하면, 그것이 곧 세계의 완전한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니체의 시선에서 보면 생명과 의미의 장을 도려낸 차가운 기호 논리에 불과하다.
이후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게임’ 개념을 도입해 진리를 맥락·관습·언어 공동체의 합의 속에서 파악함으로써, 다시금 니체와 통하는 해체적 시각을 열었다.
완전한 객관성의 불가능성과 그 위험
니체는 ‘완전한 객관성’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설사 가능하더라도, 삶을 지탱하는 환상·열정·창조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그의 ‘초인’(Übermensch)은 냉철한 자기 인식과 더불어 생을 긍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존재다.
진리 탐구의 역설 — ‘길 위의 인간’
니체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제부터라도 찾아 나서야 한다”라고 했다. 그에게 진리란 완성된 목적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균열과 변화를 겪는 과정 속에서 얻게 되는 창조적 통찰이었다.
완전하고 불변하는 진리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 여정 속에서 인간은 자기 한계를 깨닫고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어낸다. 이것이야말로 진리 탐구가 주는 궁극적 가치다.
마무리
인간은 ‘영리하지만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동물’ 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세계와 자기 자신을 성찰하려는 노력,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진리의 단편들은 여전히 삶을 풍요롭게 한다.
니체의 통찰은 ‘진리’를 절대적 실체가 아니라 인간의 조건과 권력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것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따라서 중요한 질문은 “진리를 소유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로 변모하는가?”이다.